영화 <아이>(2021) 리뷰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낯선 두 여자의 이야기

by 흔한여신

*본 글에는 영화 '아이'의 내용에 대한 줄거리(결말 포함)가 들어 있습니다.


사회의 안전망 바깥으로 밀려난 외로운 청춘, 아영


주인공인 아영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보육원에서 자랐다. 그녀는 한창 어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다른 아이들처럼 응석 한번 부리지 못하고 세상살이의 혹독함을 먼저 깨우쳤다. 하지만 일찌감치 철이 든 탓에 똑부러지게 알아서 제 밥벌이 하는데 능숙하다. 또한 같은 보육원 출신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사고치지 않고 모범적으로 처신했던 덕분에 후원을 받을 수 있었고 대학에도 진학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누구보다도 바쁘고 성실하게 사는 청춘. 성인이 되어 더 이상 보호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부지인 다른 아이들이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녀는 비슷한 처지의 보육원 출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부모 없는 설움을 겪으며 성장한 탓에 제 감정 표현엔 서툴지만 싹싹하면서도 성숙한 면모를 지녔다. 곁에서 챙겨주는 부모 없이도 알아서 척척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이들까지 돌보며 자랐다. 부모가 없다는 사실이 성장기의 아영에겐 얼마나 절절한 괴로움으로 다가왔을까. 돌봐주는 이 없이 그 어떤 어려움도 홀로 감당해야 했기에 그녀는 크게 감정을 내색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렇게 오랜 세월 그녀는 묵묵히 주어진 시련을 견뎌오며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아등바등해왔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험난한 세상 속에서 그녀는 청춘이란 낭만적인 이름표를 붙이는 대신 보육원 출신이란 꼬리표를 떼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그런 그녀는 (기초생활)수급비 지원이 중단 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다시 자격요건을 갖추려면 월 소득이 지금보다 적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다만 월 80만원 가량의 소득 정도면 수급자격에 해당한다는 말에 아영은 기존의 아르바이트를 관둔다. 하지만 당장 알바를 하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어려운 탓에 다시 알바자리를 구해야 했고 같은 보육원 출신인 친구의 소개로 알바자리를 얻게 된다. 바로 영채가 사람을 구하던 '베이비시터' 자리였다.



어쩌다 엄마가 된 여자, 영채


사랑하는 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릴 생각이었지만 그가 '명이 짧았던 탓'에 영채는 미혼모가 됐다. 그녀 역시 아영과 비슷하게 부모로부터 충분히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왜였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10대때부터 그녀는 술집에서 일했다. 밤늦도록 술에 취한 손님들 곁에서 함께 마시고 여흥을 돋우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밤낮이 뒤바뀌는 데다가 술까지 많이 마셔야 하니 몸에 해가 가는 일이었지만 달리 할 줄 아는 일이 없어 긴 시간 화류계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아이를 갖게 됐다. 그렇게 그녀는 지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 가정을 꾸리고자 했다. 그녀의 곁에 삶을 지지해 줄 만한 제대로 된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꿈에 부풀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밋빛 같던 미래의 희망은 곧 깨어졌고 그녀만이 홀로 아이와 남았다. 결국 자신과 아들을 책임져 줄 남편이 없는 영채는 다시 삶의 터전으로 내몰렸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영채에겐 제 몸 상태를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서로 다른 우주에서 맞닿은 인연


젖이 채 마르기도 전이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된 영채는 베이비시터를 구했다. 그러다가 마침 알바자리를 구하던 아영을 소개받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퍼즐조각이었다. 영채는 생각보다 어려보이는 아영이 미심쩍게 느껴져 그녀가 재학 중인 학교로 전화해 학적에 오른 사람이 맞는지 신분 확인을 할 만큼 철두철미하지만 육아에 서툰 초보 엄마다. 그녀는 아들 혁을 사랑하지만 어르고 달래는 데는 한껏 서툴다. 반면 아영은 유아교육과에 진학해 체계적으로 공부한 데다가 보육원에서 동생들을 돌보곤 해서 육아 베테랑이다. 그저 애는 알아서 크는 게 아닌가 여기는 영채와 달리 아영은 육아일지까지 기록하겠다고 나선다.


그런 아영을 만난 영채는 비록 처음엔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긴다는 게 걱정스럽긴 했지만 제 품에 안겼을 때보다 더 평온해 보이는 아들 혁을 바라보며 결국 아영에게 혁이를 맡기기로 결심한다. 성격과 취향 등 많은 것들이 다른 두 사람이지만 혁이를 돌보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여전히 제 깊은 속내를 한껏 드러내진 않지만 아영과 영채는 서로에게 조금씩 의지하며 살아간다. 각자의 삶에서 받아 온 상처들이 제법 비슷한 까닭에 애써 숨기고 있는 서로의 아픔들을 어렴풋이 공유하는 그들이다.


“넌 나 왜 술집에서 일하는지 안 궁금해?”
“저는 질문받는 거 싫어해요. 답을 할 때 내가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는지 떠올려야 되잖아요.”



하지만 그도 잠시 혁이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사건으로 평화가 깨졌다. 새벽녘이 되어 술에 잔뜩 취해 돌아온 영채가 아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침대의 안전바를 내려두었다가 다시 올려놓는 것을 깜빡했던 탓이었다. 하지만 제 삶과 육아의 고단함에 지칠 대로 지친 영채는 제 손으로 아이를 다치게 했다는 자괴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고의 책임을 아영에게 돌린다. 아영은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영채는 애써 그런 아영을 밀어냈다.


그렇게 둘 사이는 반 발자국 가까워졌다가
다시 두 발자국 멀어졌다.


아영을 떠나 보낸 뒤로 영채는 홀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가정을 책임지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았다. 베이비시터를 새로 구하기엔 지불해야 하는 인건비가 그녀의 수입 대비 비쌌다. 아영만 한 조건의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결국 독박 육아에 나섰다. 하지만 육아에 서투른 데다가 이미 대출금 상환 등 경제적으로도 압박을 받고 있던 상황이라 그녀의 마음은 더욱 심란해졌다. 결국 그녀는 모든 걸 놓아버리기에 이른다. 그런 영채는 그녀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아동 불법거래업자가 건넨 서류에 사인하고 혁이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다. 제 손에서 불행을 함께 느끼며 사는 게 더 아이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무연고자'라는 씁쓸한 이름표


성과 본을 물려줄 부모가 없기에 아영을 비롯한 보육원 출신자들은 호적 상 가족이 없다. 출생신고는 간신히 되어 있지만 법적으로 관계된 이가 없는 상태. 같이 자란 이들과 가족처럼 지내왔다고 한들 그들 관계는 법적으로 가족으로 인정받진 못한다. 현행제도가 '정상가족'만을 법제화하고 있기 때문에 더불어 지내는 이들이라도 엄연한 남으로 간주된다. 그 때문에 그들은 가족 같은 친구 경수의 장례식 조차 챙기지 못한다. 우리가 그의 친구이자 가족이라며 제 아무리 울부짖어봐도 서로가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이라는 점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결국 경수의 죽음은 '무연고자의 자살'로 치부되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시신은 화장터로 향했다.


그 전까지 영채에게 고소를 당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데에 지친 내색은 했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아영은 이 사건을 계기로 크게 흔들린다. 열심히 밥벌이하며 살다보면 누가 대견하게 봐주지 않아도 그럭저럭 제 생계를 책임지고 살겠거니 하고 마음을 다잡아 왔는데 친구의 허망한 죽음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는 건 가족뿐이라는데 법적으로 못 박아진 것과 달리 그의 곁에 남은 건 서류 상 남남인 친구들이었다.


그 동안 떼 쓸 부모가 없이 살아와 제 것이 아닌 것을 탐내지 않고 살아왔던 아영. 제 분수에 맞는 삶에 수긍하고 고아라고 놀림받는 수모를 숱하게 겪으면서도 인내심으로 버텨온 그녀였다. 그런데 문득 상처받았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리고 혹시 혁이도 그런 전철을 밟게 될까 두려워졌다. 부모 없이 자란 설움보다 차라리 부모가 욕을 듣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겪었던 괴로움을 혁이도 겪게 할 수는 없다는 절실함이 그녀를 움직였다. 결국 그녀는 혁이를 불법업자로부터 구출해 낸 뒤 아이를 안고 영채에게 간다.


각자의 아픔과 사연을 간직한 이들이 삶의 가장자리에서 만났다.


아영이 혁이를 구출해 왔던 불법업자의 집엔 반송장이 되어 누워있는 노모가 있었다. 한편 아영의 집엔 오래되어 고장났지만 새로 사서 쓸 돈이 없어 바꾸지 못하는 세탁기가 있다. 그리고 영채의 집엔 혼란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는 작고 소중한 생명체, 혁이가 있다. 각자의 집엔 남모르게 홀로 분투해 온 삶의 흔적들이 배어 있었다. 저마다 시련을 견디는 방식은 달랐지만 크고 작은 불행을 감내하면서 살아온 것은 분명했다.


결국 혁이는 영채의 품에 돌아왔다. 혁이를 본 채 만 채 하지 않을까 했던 우려와 달리 영채는 뒤돌아 서서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런 영채를 위로하는 건 아영이다. 제 몫을 다 하고 살기도 바쁜 아영이지만 영채와 혁이에겐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런 아영은 영채에게 반복해서 말한다.


내가 도와줄게요.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미약하나마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 슬픈 사연을 안고 있었기에 불쌍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바라보며 그들의 불안한 삶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한편 그 가장자리가 온전히 그들의 잘못만으로 주어진 게 아님에도 제 처지에 대해 불평불만 늘어놓을 곳이 없다는 사실도 슬픈 일이었다. 사회의 안전망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이 탈선의 유혹에 빠질 길을 무궁무진한 반면 성실하게 살아가는 데 대한 보상은 턱 없이 적었다. 그에 비해 잘 나가는 윗 동네만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저들을 따라잡아 볼 수 있으려나 생각했던 나는 그들에 비해 참 배부른 자였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 동안 미처 간과했던 우리 사회의 변두리를 지켜봤던 시간이었다. 소외된 우리의 이웃들은 아마도 머지 않은 거리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와닿는지와 상관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다. 살아남기 위해 매정한 현실을 버티기 위해 쉴 틈 없는 그들의 하루. 하지만 팍팍한 그들의 일상에 조금이나마 미소지을 여유가 생기길.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서로를 보듬을 가족이 된 그들의 미래엔 보다 행복이 가득하길 바란다.


출처 맘스 매거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