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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Feb 20. 2021

어제와 오늘에 대한 기록

내일의 나는 행복하길

한 때 일이 너무 지겨워서 도망치고 싶을 만큼 지쳐있었다.


  벌써 몇 달 전부터 같은 업무만 반복해 왔다. 한 쪽 눈을 감고 보아도 알 만할 정도로 업무가 손에 익은 상태다. 새로움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힘들어 했지만 업무를 바꾸는 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 조직에서 사사로운 이해관계 보다 더 중요한 건 '전체 구조의 안정'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인사이동 시에 중요시 여기는 원칙 역시 '흔들림 없이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팀의 업무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인원 변경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대부분의 관리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 원칙에 따라 지원근무가 해제되어 원래의 자리로 복귀가 예정되어 있었던 다른 팀원들과 달리 이미 해당 팀의 팀원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던 나는 떠날 수 없었다. 팀에 적정 인원이 남아 있어야만 전과 유사하게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사권한을 쥔 관리자는 나의 고충을 알기엔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직원들과 개별적으로 마주치는 일도 드물지만 마주칠 때마다 간단히 인사만 드릴 뿐 서로의 속사정을 알기엔 너무 어려운 사이다. 때문에 나는 더욱 체념한 채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혼이 갉아 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종종 업무를 하다가도 밀려드는 허무함을 감지했던 나는 결국 다른 곳에서 흥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기서 긋게 될 '한 획'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에 설렜지만 지금은 애사심이 소멸에 가까운 수준이다. 희한하게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칭찬과 보상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 때때로 내 노력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더 이상 업무능력을 통해 인정받겠다는 계획을 포기했다.


  대신에 나는 '결핍된 성취감'을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들에 기웃거렸다. 사람을 통해서든 공부를 통해서든 회사 밖에서 나에 대한 의미를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일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았던 때부터 나는 닥치는 대로 하고 싶은 걸 찾아다녔다. 다들 그런 모습이 '나답다'고 했지만 마음대로 할 걸 다 해본 건 생애 처음이었다. 그런 이유로 내 통장 잔고는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후회없이 이십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시도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진 못했지만 그 동안 생각만 해오던 것들을 시작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작년 말부터 드디어 글쓰기와 영상제작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실 괜히 했나 싶은 생각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종종 찾아왔지만 꾸역꾸역 버텼다. '한 달만 해보자, 삼 개월만 해보자' 하는 식의 작은 목표를 세우며 동기부여를 해왔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확신이 없어 시작한 일을 지속하기 힘들었지만 자신을 달래며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운 것 같다.


photo by. Rojoy


지금은 1분1초가 빠듯하게 흘러가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직원들을 맞았다. 기존 직원들이 나간 빈 자리를 새로운 사람이 대신하게 되면서 팀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이번에 우리 팀엔 나이가 많은 신입들이 오게 되었다. 그들의 첫인상이 좋았기에 그 외 별다른 정보는 잘 알지 못했지만 팀원으로 기꺼이 맞을 채비를 했었다. 이전에 사회생활을 경험해 본 이들이니 훨씬 업무에 빠르게 적응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지나치게 긴장한 데다가 전혀 모르는 업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패닉 상태에 빠진 바람에 내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아무리 차분하게 설명을 해줘도 그들에겐 주어진 업무가 극복할 수 없는 난관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더군다나 매사에 허락을 받지 않으면 행동에 옮기는 걸 심히 주저했고 실수에 대한 걱정이 컸는지 너무 신중하려고 한 탓에 업무처리 속도도 느렸다. 누구나 신입 때는 실수도 하고 느리기도 하고 모든 상황이 눈에 훤히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화 통화에 긴장해서 땀을 뻘뻘 흘리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는 부담감에 제 행동이 얼마나 신경쓰일까. 나도 한 때 완벽에 가까운 영특한 막내를 꿈 꿨으니 충분히 그 심정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들에겐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신입다운 패기가 없는 반면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감을 느꼈고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부족하고 확신이 없더라도 한 번 해보겠다는 열정과 의지가 그들에겐 많이 부족했다. 덩달아 팀 분위기도 축 쳐져서 엉망으로 변했다. 모두 그들의 잘못으로만 돌릴 것은 아니지만 기대와 달리 그들이 팀에 잘 녹아들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만큼 내 어깨도 무거워졌다.


  아직은 여러모로 부족한 이들과 팀을 이룬 만큼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 크게 늘어났다. 그런 탓에 어느 정도 여유있었던 내 삶 또한 정신없이 흘러갔다. 요 며칠 새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즐길 새도 없었다. 잠을 줄일라 치면 다음 날 피곤에 절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게 뻔해 그럴 수도 없었다. 깨어 있는 시간동안 최대한의 효율로 쌓인 업무를 처리해 내야한다. 내가 기댈 수 있는 이들은 별로 없는 반면 내게 기대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연히 글 쓰는 데도 지장이 생겼다. 업무 외적인 것에 관심을 가질 만한 여유를 빼앗겼다 보니 생각나는 일화도 없었다. 예전과 달리 글 하나 남기는 데 시간이 더 걸리게 된 까닭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에 치여 멍하게 흘러간 하루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신규 때만 해도 야근하고 들어가는 밤이 왠지 뿌듯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혹사당한 기분이 썩 달갑지가 않다. 일하는 삶이 곧 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일의 나는 여전히 희망을 좇는다.


  숨 가쁘게 지나간 일주일이었지만 한편으론 무사히 제 할 일을 끝마친 것에 대한 뿌듯함과 안도감을 느낀다. 물론 한숨 나오는 순간들을 견뎌야 해 힘들기도 했고 체력적으로도 부족함을 느꼈지만 돌이켜 보면 그리 울상 지을 일은 없었다. 홀로 외로운 고립무원의 상황도 아니었고 작게나마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곧 다가올 새로운 일주일엔 한숨 쉬는 일보다 웃을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갑자기 환경이 바뀌거나 기대 이상의 일이 벌어지는 행운 따윈 없겠지만 후회없는 매일을 보내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물론 안간힘을 쓰며 에너지를 소진할 생각은 없지만 틀림없이 한 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 찾아올 '빛나는 별'을 만날지도 모르니까. 걱정에 매여있기만 한 내가 아니라 생각하며,


내일의 나도 파이팅.


photo by. Jund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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