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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r 20. 2021

가볍게 쓰는 일기 _15

끄적이는 오늘의 생각,

며칠을 고민하다가 오랜 만에 끄적이는 나의 사소한 이야기. 작가의 서랍을 오랜 시간 차지하고 있던 먼지 쌓인 글들을 해치우고 있는 중이다.


# 춤


  춤을 배운지 4달 정도 됐다. K-pop댄스다. 레드벨벳이 됐다가 오마이걸이 됐다가 BTS가 됐다가 하는 중이다. 학창시절부터 무척 하고 싶었지만 도전하지 못해 이제라도 시작하게 된 취미생활이다. 아프기만 하고 재미가 없는 필라테스나 요가 대신 춤을 배우는 게 더 재밌어서 운동을 겸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략 4주 수업에 1곡씩 진도를 나갔다. 언뜻 보기엔 어려운 동작도 그럭저럭 따라하는듯 보이지만 춤선이 어설프고 디테일이 부족하다. 완벽하려면 멀었기에 아직도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집 주변의 댄스 연습실을 다니며 추가적인 연습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겐 그 어떤 것보다도 재밌는 일이다. 특히 안 되던 동작을 결국 해냈을 때 엄청난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지금 내 상황에서 성취감을 느낄 일이 없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왠지 나는 절대 안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잘 움직여지지 않던 몸이 드디어 턴을 제대로 하게 됐을 때! 결국 내가 해냈다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항상 옆에서 물개박수로 응원해주는 선생님과 끊임없이 잘하려고 노력하는 의지 덕분에 조금씩 어려움을 이겨내고 실력이 늘고 있다.


  그런데 이번주는 레슨을 못하게 됐다. 요즘 들어 춤 선생님이 많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사실 선생님은 재즈댄서이면서 어느 걸그룹의 백업 댄서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 걸그룹이 바로 요즘 한창 흥하고 있는 '브레이브걸스'. 내 선생님은 작년에 '운전만 해'로 활동하던 때에도 백업 댄서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브레이브걸스가 별다른 방송활동을 하지 않아 무대에 설 일이 없어 역주행 전까지만 해도 개인 레슨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에는 내 스케줄에 맞춰서 수업하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선생님 스케줄에 내가 맞춰야 하게 됐다. 이번주엔 롤린 1위 기념으로(?) 롤린을 배우려 했는데 아쉽게도 일정이 미뤄졌다.


TMI: 머리 잘랐다! 머리 잘 됐다!!


# 공허함


요즘 밀려드는 공허함에 애써 무너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부터 시작해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수시로 밀려든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혼란스러운 시기다. 누군가는 투자로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는데 거기에 무심했던 나는 멍청하게 제자리만 지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일하고 하던 대로 노력하는 내 삶의 방식이 오류라는 생각이 든다. 헛된 노력을 퍼붓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면 내내 지켜오던 나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던 게 한 두번이 아니다.


  더욱이 지금 몸 담고 있는 팀이 원래 임시 조직으로 발족해 1년 가까이 유지된 터라 반복되는 업무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다. 하던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게 낫다는 효율성에 대한 판단 때문에 다른 팀으로 옮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불만을 토로할 곳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다양한 업무를 접하며 지금의 단조로움과 권태로움을 이겨냈으면 좋겠는데 이렇다 할 묘수가 없어 난감하다. 일할 때의 내가 같은 것만 반복하는 멍청한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면에선 서러움이 치밀어 오른다.


출처 원더풀마인드
주변 지인들이 미친 영향이 이 모든 헛헛함의 시작이었다.


  사실 이게   주변에 주식하고 코인하는 놈들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주변에도 투자 광풍이 불어닥쳤다. '우리가 일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해봐야 집이라도   사겠느냐' 주변의 남자 지인들이 하나둘 투자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관찰자로서 그냥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과 같이 투자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느껴졌다. 수익을 봤노라는 자랑을 수시로 들을 때마다 내가 중요한  놓치고 있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가격이 내리기만 하니 재미를 못 본다던 내 주변 개미들은 이제 코인 투자에 빠져들었다. 다들 그렇게 해서 돈 버는 거라며 당연한듯 얘기한다. 뉴스에선 '투자 중독'이 문제라고 떠들어대는데 들어보니 정말 그랬다. 코인의 경우 거래소가 24시간 운영이 되는 거라 매수, 매도 시점이 새벽에도 올 수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새벽에도 못 자거나 안 자거나 하면서 코인 가격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이 벌기만 하면 퇴사하겠다는 그들을 부러워해야 하는 건지 단꿈에 부풀어 정신 나간 것들이라고 혀를 차야 하는 건지 이젠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슨 수로 빚 갚을 돈을 마련하고 집을 사겠는가 말이다. 정부에 대책이 없다면 개인이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는 게 맞다는 생각마저 든다. 열심히 일해도 가진 게 없어 궁지에 몰린 청년 세대에겐 일확천금을 마련할 기회는 이런 투자뿐이라는 게 씁쓸한 현실이다.


출처 이투데이


# 그 외의 것들


  신규 직원들의 회사생활 적응기는 생각 이상으로 험난했다. 여러번 반복해 알려줘도 다시 묻고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한편 그들의 입장만 옹호하기엔 사무실 직원들 모두가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게 명백한 사실이다. 직원들이 입사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은 지금 나는 전보다 훨씬 사무적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다. 사회는 학교와 달리 가르침을 주고 성장하기를 차근히 기다려주는 배움의 공간이 아닌 만큼 스스로 일어서는 건 그들의 몫. 같이 월급받고 일하는 입장에서 필요 이상의 걱정과 개입은 지나치다. 또 개인적인 고민만으로도 머릿 속이 복잡한 내가 더 이상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3월 초. 가만히만 있어도 졸음이 쏟아지고 몸이 쳐지는 것 같아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진 걸 보니, 아마도 춘곤증 혹은 계절에 적응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든 겪는 동안엔 견디기 힘든 고통인것처럼 느껴지지만 지나고나면 별 일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피부 고민은 몇 달 째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얼굴 전체가 여드름으로 뒤덮였다. 열심히 병원에서 처방한 약도 먹고 있고 바르는 것과 먹는 음식도 주의하고 있지만 별로 나아지는 게 없다. 매주 피부과에 갈 때마다 압출하느라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어서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ㅠㅠ)


photo by. Rojoy




  한 동안 글이 써지지 않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아 힘들었다.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게 너무나도 버겁게 느껴졌다. 이전부터 오랜 시간 책을 사고 글을 끄적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완전히 그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수시로 들고 뭐든 한들 의미없을 거라는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나쁜 생각들에서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주변엔 투자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벌었다는 쾌재를 부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휑한 기분이겠지. 내 삶의 방식이 결코 '틀린 게 아니다'라는 증명을 스스로 해낼 때까지 아마도 나는 흔들리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까지 사실 별 일이 없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다. 자주 내 일상과 내 주변을 들여다보고 글로 옮기다 보니 그런것 같다. 전에 같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순간들이 새롭게 보이고 기록되면서 오랫동안 그 잔상이 남는다. 글이란 그런 힘이 있는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도 특별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힘. 사진만이 그런 순간의 특별함을 잘 포착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글 또한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야흐로 봄이 왔으니, 앞으론 따뜻하고 즐겁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일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지금 내 삶엔 아주 따뜻한 봄볕이 필요하다.


photo by. Jund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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