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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Apr 13. 2021

고단함을 짊어진 하루

어느 수험생의 고백

꺄르르. 깔깔깔. 아하하. 꺄하하.


  돌고래 소리처럼 높은 웃음소리가 시원하게 터졌다. 조용했던 공간이 삽시간에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제자리를 벗어나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느새 지친 안색을 지우고 웃음꽃이 만발한 채로.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에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그 기쁨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비록 한순간 그들을 덮친 기쁨었을지라도 들려오는 웃음소리엔 즐거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늦은 오후, 해가 많이 기울었으니 몸이 찌뿌둥할 시간이다. 온종일 의자에 앉아만 있느라 잔뜩 굳은 팔다리를 일으키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다. 좀처럼 느리게 가는 시간을 빠르게 흘려보내기에 적당한 핑곗거리를 마련할 때다. 사람들 사이에 시시콜콜한 잡담은 그런 용도로 쓰인다. 여태껏 집중하느라 고생한 보람으로 얻은 잠시간의 여유. 제 할 일 하랴 앉아 있는 동안엔 이곳저곳 아프고 쑤신 곳도 많더니 쉴 때는 아무 이상도 없이 멀쩡하기만 하다. 방금 전까지 일더미에 파묻힌 스스로가 불행하다 여겼더라도 어느새 그런 기분은 잊고 웃는다. 힘든 가운데 사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그런 하루를 위하여.



그렇게 남들이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걸 들으며 내 마음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어깨 너머로 해맑게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더욱 고개를 파묻었다. 그들의 잡담에 끼지 못할 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행복한 듯 터져나오는 웃음소리를 듣는 게 못내 괴로웠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 웃음소리에 더욱 움츠러들었다. 마치 환한 빛 뒤편에 숨겨진 어둠처럼. 같이 웃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생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마음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지금의 내 모습이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는 끝없는 불행함에 빠진 뒤로 나의 행복시계는 멈춰버렸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 못 박힌 채로 어서 마음이 평안해지길 빌고 또 빌었다. 나는 온갖 걱정과 불행을 짊어진 채로 앉아 있는데 모든 상념을 떨어낸 채로 즐거운듯 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들이 참 얄미워 보였다. 비교되어 보이는 내 자신 때문에 잔뜩 굳어진 얼굴은 풀릴 줄을 몰랐다. 하지만 애써 일순간에 내 마음을 뒤흔들어 버린 깔깔대는 소리를 외면하는 한편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것이라고 되뇌며 마음 속 성난 파도를 달래고 있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단 이유로 시작한 새로운 도전 앞에서 씩씩하게 나아가지 못하고 쭈뼛쭈뼛거리는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자기연민에 빠지면 뭐든 저주하게 되기 마련이라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는 걸 행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 전진할 때엔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희로애락을 지나쳐야 하건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에도 칼에 베인듯 아픈 눈물이 났다.


주위를 둘러보면 웃고 있는 사람들 틈에
나 홀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무표정한 사람들 가운데서 마음이 다시 가라앉았다.


  슬픔도 기쁨도 없는 공간에 이르러서야 일렁이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해질녘의 노을빛을 가득 담은 지하철 안에서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남들 보는 데서는 답답한 숨소리조차 들키기 싫어 소리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비로소 혼자가 되었으니 잔뜩 구겨진 마음을 좀 펴볼 때다. 오늘 하루도 굳세게 버티었노라 생각하며 남은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겠다 하는 작은 계획을 세웠다. 뜻대로 실현될는지 알 수 없는 앞으로의 계획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갖가지 감정과 생각을 마음 깊숙한 곳으로 힘주어 욱여넣었다. 눈에 띄지 않도록 기억 저편으로 밀어버렸다.


  고개를 떨구기도 지쳐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각자 핸드폰을 손에 쥐고 그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들썩임도 없이 모두 덜컹이는 콩나물 시루 같은 전철 안에 콩나물처럼 담겨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곤히 잠에 든 사람도 있었다. 눈을 돌려 창 밖을 바라봤다. 땅 아래로 자취를 감추어 가는 태양빛을 멍하니 바라봤다. 미소 지을 힘도 없는 얼굴엔 잔뜩 속상함이 어려있었다. 붉어진 태양만큼이나 붉어져 오는 눈시울에 화들짝 놀랐다. 눈물방울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개를 치켜들었다. 금세 슬픔이 잦아드는 걸 느끼며 참 씁쓸했다.


그토록 웃고자 노력했던 삶이
울상이 되어버린 게 말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삶이 참 허무해졌다.


  잘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했던 때엔 사소하게나마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미래에 대한 어떠한 바람도 없다. 내 욕심만으로 이룰 수 있는 꿈과 희망 같은 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통에 제각각의 의미를 부여하며 버텨냈지만 결국 도착지점에 이르러서는 허무함만이 남게 됐다.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그런 수고는 들이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에 쓴웃음이 났다. 웃음만이 남을 거라 자신했던 미래가 현실이 되고 보니 상상과는 퍽 달랐다. 내 인생에 더 이상 공부할 일은 없겠구나 했던 생각이 그 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욕심이 떠난 자리에 불행함이 찾아오리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불현듯 찾아온 허무함을 달래는 건 혹 예기치 못한 행운이 선물하는 기쁨이 아닐까. 그런저런 생각들을 무심한듯 곱씹으며 나는 매일같이 허무함과 싸우고 있다.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다가도 이내 '포기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는다. ‘존버가 답이다’라는 세간의 말처럼 나도 꾸역꾸역 살아남으리라 다짐했다. 그런 각오를 잊어버릴까 싶어 눈에 띄는 곳마다 써붙여 놓았다.


  그런 한편 누군가가 걱정 없이 누리는 것만 같은 행운을 부러운듯 바라보며 역전의 주인공이 될 내일을 꿈꾸었다. 희망이 잠들어 있는 땅에 잠시 고단한 몸을 누이고 먼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지금은 전혀 와닿지 않는 발칙한 미래를 상상하며 피식 웃었다.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아직은 꿈에만 머물러 있는 그런 일들을 떠올리며 지친 마음을 달랬다. 그러자 나만 바보 멍청이 같아서 한껏 우울했던 제법 기분이 나아졌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작가의 TMI: 슬픔이란 감정을 카카오 99% 초콜릿맛이라고 상상하며 제가 느낀 쓰라림을 극대화하려고 애썼습니다. 밝고 위로가 되는 내용이 아닐지라도 이 감정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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