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진 곳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희망을 찾아서
내 방엔 묵은 때가 많이 쌓여 있었다.
긴긴 겨울 동안 집에 있는 날이면 나는 내 방 침대에 꿈쩍도 안하고 누워만 지냈다. 바깥은 너무 추웠고 이불 안은 참 아늑했다. 이불 밖으로 나가면 디디는 걸음마다 발끝이 시렸지만 이불 속에선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혼자만의 편안함에 취해 뭇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듣기 싫었고 어떤 것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끔은 방문을 열고 나서는 게 두렵다 느낀 적도 있었다. 그래서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 동안 나는 손 안의 작은 세상 안에 갇혀 있었다.
움직이는 게 싫었던 탓에 겨우내 방 안을 전혀 치우지 않아 주변 사물들은 온통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개중에는 인터넷 서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고른 책도 몇 권 있었고 혼자라도 분위기 내볼까 싶어 산 맥주 거품기도 있었다. 또 방 안에 무드가 중요하지 않겠나 하며 들여놓은 캔들과 캔들워머가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을 다니며 받아온 약봉지가 쌓여 있었다. 그것들은 엉망인 채로 한데 뒤엉켜있거나 구석 어딘가에 처박혀서 빛조차 보지 못하고 있었다.
집 안에서의 나와 집 밖에서의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이었다.
방 안에 마구잡이로 놓인 것들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나는 곧장 침대로 다이빙하곤 했다. 더러운 게 좋다거나 하는 특이한 취향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을 만한 특별한 사유도 없었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귀가하고 나면 집에선 어떤 것도 신경쓰기 싫었다. 방 안에 들어서면 나는 무기력한 채로 침대에 눕곤 했다. 바깥에선 앞으로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행복한 듯이 밝게 웃곤 했지만, 집에 돌아와 핏기 없는 얼굴로 침대에 몸을 뉘이고 나면 몇 시간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외향형이라고 자부했던 내가 이토록 내향적인 면이 있는 사람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지냈다.
반면 사회생활을 하는 나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혼자 있을 때 음침하게 되는 것과 달리 밖에선 누구에게나 밝게 인사했고 거의 매일같이 주변을 쓸고 닦았다. 특별히 내 일터를 신성시 여겼던 것도 아닌데 늘 자못 경건한 태도로 주변을 정리하곤 했다. 때문에 겉보기에 나는 너무나 단정하고 깔끔한 상태였다. 특히 코로나 시국을 맞은 뒤로 청결과 위생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며 주변에 먼지 한 톨 쌓이지 않도록 열심히 주변을 정리정돈했다. 둔 물건이 많아 책상엔 온갖 사물이 가득했지만 결코 어질러져 있는 법이 없었다. 소독제까지 써가며 닦았기에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살기 힘든 환경이었다.
하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내가 침대 안에 꼼짝 없이 누워있는 동안 내 방의 모든 사물들은 먼지 쌓인 채 방치되고 있었다. 하지만 방치된 건 내 주위에 놓인 물건만이 아니었다.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내 마음이 방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침대 주변을 둘러싼 사물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던 것처럼 내 마음도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외면하는 사이 아무렇지 않은 줄로만 알았던 마음엔 생채기로 가득했다. 왜인지를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이대로 계단에서 구르면 회사에 안 갈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힘들고 지쳐도 티내지 못하고 그 마음을 숨겨야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또 사람들과 맞장구쳐주면서도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에 불편했던 순간들 그리고 내가 지금의 삶에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한편으로 같이 웃고 떠들었기에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던 이들과의 관계는 사실 내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걸 깨닫고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 모든 깨달음이 가슴을 내리친 순간,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그 전까지 아무렇지 않다고 믿었는데, 순식간에 생각도 마음도 고장나버렸다.
마침내 알게 되었다.
최근에 내가 진짜로 행복했던 순간이 없었다는 것을.
내게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사랑하지 않은 잘못이 있었다.
남들은 그럭저럭 행복해보이는데 어째서 나는 불행하다 생각하고 있는 건지. 어쩌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부러워하며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게 아닌가를 생각하며 자책하고 있었던 요즘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한편 남들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자신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남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다짐에 가려 상처받고 있었던 자신을 미처 돌아보지 못했기에. 성실하고 꿋꿋하게 웃으면서 버틴 것만으로도 기특할 따름이었던 스스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에.
마침내 새로운 결심을 하고 다시 책을 샀다. 전처럼 구석에 장식품처럼 세워두려는 게 아니다. 이번엔 열심히 책을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책장과 화장대 등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을 집어들었다. 한데 뒤엉켜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낸 다음 쓰레기를 치우고 먼지를 닦았다. 먼지를 털어내며 해묵은 슬픔이 다시 터져나왔지만 굴하지 않고 닦았다. 겨우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았고 내 방도 오랜만에 제 매무새를 갖추었다. 그렇게 방 안 곳곳을 쓸고 닦으면서 다짐을 했다. 아무에게나 함부로 다정하지 않기로, 나의 상처에 대해 둔감하지 않기로 그리고 항상 꿈을 꾸며 살아가기로.
빛이 들지 않던 공간에 따뜻한 볕이 들 수 있도록 방 안을 잘 정돈해두었다. 또 어느 순간 물건들이 제자리를 잃은 채 위치가 뒤바뀌어 있을지 모르지만 해묵은 때를 지워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록 흉터로 남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된 어린 시절 다친 상처들처럼, 지금의 어려움도 지나고나면 과거의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한 때의 아픔이 기억 속에 남아 있더라도 영원히 나를 괴롭히진 못할테니 미래의 나는 분명 괜찮겠지. 지금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그렇게 나아가기로 했다.
날 기다리는 행운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미래로.
약속된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발견할지도 모르는 희망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