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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y 17. 2021

가볍게 쓰는 일기 _17

끄적이는 오늘의 생각,

나의 어제와 오늘을 가끔 기록한다.


유투브에 가끔 뭔가를 올린다. 딱히 시도할 만한 콘텐츠가 없어 일상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는 영상이다. 조회수는 형편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을 제작해 올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먼 미래에 지금의 시기가 어떠했는지 궁금할 나를 위해, 대단할 건 없지만 소소한 나의 일상을 남기고 있다.


남들처럼 어딘가에 재능이 있고 끈기가 있면 기획할만   있을테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모든  평범하기 그지 없다. 재능은 신이 주시는 것이고 기회는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내가 노려볼 것은 그나마 노력하는 것이지만 그조차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하는 일이라 결코 쉽지 않다. ‘There’s no free lunch라는 경제학의 어느 명언처,  입이라도 먹고자 하면 필사의 노력을 다해야한다.  덩이가  몫으로 주어지진 않더라도, 아예 굶주려선 안되니깐.



사실 기록할 결심을 한 건 오래 전 후회스러운 기억 때문이다. 스무살, 대학생이 된 이후로 처음 맞은 여름방학.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노력을 했다거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다. 그 때의 일기 속에 나는 무얼 해야할지 몰라 고민만 가득했다. 자기계발이라도 해야할텐데, 아니면 재밌게 보내기라도 해야할텐데. 그런 생각만 하다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 뒤로 계획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너무나도 싫었다. 뭐라도 해야지만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세월아 네월아 하며 다음 변주를 기다리기보단 변화를 향해 먼저 발을 내디디는 편이었다.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나와 비슷하게 내게 주어진 역할이 크지 않아 시간을 채울 일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하는 환경에 처해있다. 그래서 줄곧 안달이 나있었다. 내가 속한 환경과 나의 의지는 결코 조화롭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의 분노가 치밀거나 크게 낙담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삶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다. 발전을 기대하며 앞으로 먼저 나아가고자 하면 또 그에 따른 고통이 있다. 제자리 멈춰 있든 아니면 전진을 위해 아등바등하든 삶은 내게 축복이기보다 고통인 순간들이 더 많았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우선 그렇다.



극도의 우울함에선 벗어났다.


아, 괜찮은척 한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도 그냥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나는 수차례 극한의 어둠을 맞이했다. 그런데도 나는 희망적인 결론으로 글을 끝맺기 위해 필사적이었고, 부정적인 말들을 내뱉지 않기 위해 대화를 삼갔다. 마음이 수십 번 무너져내린 뒤에,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가까스로 안정을 찾았다. 혼자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상태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의학적 도움을 받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선택에는 두려움이 따랐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지냈다.


스무살 문턱을 힘겹게 넘으며 겪은 우울증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 때만큼 신체적 증세가 심하진 않았다. 물론 매 순간이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건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내면 깊은 곳엔 극복할 힘이 깃들어 있었던 것 같다. 오래 전 겪은 상처가 치유되면서 단단한 자국을 남겼던거다. 그래서 서른이란 문턱을 넘기도 마찬가지로 힘든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겨우 한 고비를 넘겼다 싶으면 더 큰 고비가 오는 삶.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란 시의 한 구절처럼, 정말 지상에 소풍왔다고 여겨도 되는 걸까 싶다. 소풍 온 걸로 치기엔 애쓰거나 투닥거릴 일이 너무 많다.


photo by. Rojoy


공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잘 안되고 있다


공시생이었을 땐 적어도 내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직장동료의 안부를 묻거나 시시콜콜한 잡담에 끼거나 갑자기 주어진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일 따윈 없었다. 그 때는 비록 불안정한 지위였지만 남들과 더불어 엉덩이 싸움하는 재미가 있었다. 한 문제 더 맞히면 그렇게 뿌듯한 하루일 수가 없었다. 그냥 상쾌한 컨디션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산 집이 얼마나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개인의 노력으로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세상엔 대체 기댈만한 곳이 없다. 그렇게 나는 소소한 행복 따위가 결코 기쁨이 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혼잡한 출퇴근길 안에서 토익문제를 들여다보거나 경제학 공부를 하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다. 내 트레이닝복 차림이 어떻든 상관없었던 것과 달리 내 이미지에도 신경써야하는 지금은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단순히 자기계발을 넘어서 새로운 시험에 도전한다는 건 마음의 무게가 다른 문제다. 맘 편히 공부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다짐에 걸맞는 성과를 내야한단 압박감에 시달린다. 우울함을 겨우 물리치고 나니 엄청난 불안감이 찾아온 것이다.


photo by. Rojoy


그럴수록 생각을 버리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행복해진다는 게 말이다. 행복이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게 가지각색이겠지만,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걸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그 외 나머지 것들은 운명이 적당히 맡기려고 한다. 열정이 불태워지지 않는다면 그냥 생각없이 이런저런 것들을 보고 멍때리고, 그렇게 지낸다. 압박감이야 말로 나를 좀먹는 것이 되기에. 좋아요수와 조회수도 무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걸 지표로 삼아 나의 현재를 평가하고 싶지 않다.


글이 써질랑말랑하다가 겨우 시작했고 다행히 끝을 맺는다. 나의 남은 시간들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고 담담히 받으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다만 다음을 준비를 하는 것이든, 쉬는 것이든 미래에 돌아봤을 때 후회없는 시간이 되도록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것.


그게 바로 여전히 알 수 없이
깜깜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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