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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y 30. 2021

잔소리

그리운 그 시절 위로와 격려의 말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힘이 되고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던 시기는 수험생때였던 것 같다. 그 때는 쉽게 들었고 뻔하게 여겨졌던 말들을 이제는 아무도 해주지 않아서 이렇게 직접 들으러 온다.  
- 유투브 채널 '이다지도'에 달린 'HAN HAN'님의 댓글


이십대가 되어 졸업한 잔소리


  고등학교까지의 정규교육 과정을 마치고 스무살이 된 이후 주변에서 잔소리가 멎었다. 드디어 잔소리로부터 해방되어 어른으로서의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 지나버린 나의 학창시절, 공부도 공부였지만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다. 잔소리는 수업의 일부였고 교사로서 전달해야 할 삶의 지혜였으며 학생으로서 나는 그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대부분은 공부하라는 잔소리였지만 그 외에도 수험생활에서의 마음가짐이나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것 등 주제는 참 다양했다. 세부적인 내용이 뭐였는지 정확히 다 기억나진 않지만 수업 대신 듣는 그 잔소리가 때론 반가웠고 때론 지겨웠다. '또 시작이다' 싶은 레파토리가 있는 선생님도 있었고 매번 새로운 이야기로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었던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교육과정을 졸업함과 동시에 잔소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제 그 누구도 내게 간섭하지 않는 때가 온 것이었다.


  물론 집 안에서의 잔소리는 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이십대 중반 쯤 되어서는 취업하라는 잔소리를, 취업하고 나서는 흥청망청 쓰지말고 잘 저축해야한다는 잔소리를. 그리고 지금은 언제 결혼하느냐는 잔소리를 듣는다. 아마도 부모님에게는 그 자식이 언제나 물가에 내놓은 아이같기 때문일 것이다. 내 나이였을 무렵 나의 부모님은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거친 세상의 풍파를 견뎌야 했던 어른이었다. 그와는 달리 여전히 부모 품에 안겨 있는 나는 그냥 두기 불안한 존재일 것이다. 휘청이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켜봐야만 하는 사랑스럽고도 부담스러운 존재. 그래서 여전히 부모님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출처 Media SK


공시생이었을 무렵 들었던 따끔한 소리는 수험생활을 버티는 동력이었다.


  한 동안 끊겼던 잔소리를 다시 듣게 된 건 수험생활을 하면서였다. 비록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 대다수의 강사들을 만났지만, '인강 선생님'들은 내 수험생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수업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재밌는가 여부를 떠나서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잔소리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들은 '독하게 수험생활을 버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잘못된 준비자세를 지적하는 등 다양한 잔소리를 했다. '군중 속 고독'에 익숙해져야 하는 지루한 수험생활에서 강사들의 입담이나 잔소리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물론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렬한 지적도 있었지만 잔소리들은 대체로 수험생활에 적절한 자극제가 되었다. 초심을 잃고 나태해진 순간이나 불안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를 때, 그들의 응원 메시지 혹은 동기부여가 되는 따끔한 지적을 듣고 나면 긴장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었다. 또 강사들의 마치 뼈를 때리는 듯한 '팩트폭행'을 듣고나면 비로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나태해진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종종 자기연민에 빠졌다가도 정신을 차리자며 스스로를 붙들었다. 당시 수험생이었던 내가 마음을 다잡고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잔소리 덕도 분명 있었다.


출처 S20 블로그


사회로 나아간 뒤 명실상부한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성숙한 어른이라고 칭하기엔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어른이다. 경제생활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가 아직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다. 내 역할이 무엇인지 내 삶의 방향은 올바른 것인지 그 답을 알 수가 없다. 아직도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게 많다.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도 많다. 어릴 적엔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그릇이 커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그 크기를 늘리려 애를 쓰고 모양을 바꿔보려 애를 써도 그릇이 내 마음대로 빚어지는 게 아니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비슷한 출발선상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나 홀로 덩그러니 길 위에 남겨져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것은 그럭저럭 해답이 있었는데 앞으로 남은 길은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떻게 앞으로 남은 인생이란 경주를 나아가야 할지, 어떤 게 의미 있는 마무리가 될지 물어보고 싶어도 대답해 줄 이가 없다. 스스로 찾아야 하는 답이기 때문이다. 언제쯤 쉬어야 하는지 또 언제쯤 달려 나지야 하는지 확신이 없더라도 스스로 방향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결정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전에는 누군가의 잔소리를 들으며 내 문제를 고민해보기도 했고 시련을 극복할 용기를 얻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참 외로운 일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잔소리 들을 때가 행복한 거'라는 어른들의 말은 결코 틀린 게 아니었다. 스스로의 문제를 오롯이 혼자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어른이 되는 게 참 어렵다는 걸 깨닫고 나니
서러움이 몰려왔다.



다시, 잔소리가 그리워졌다.


  그런 어느 날 나는 우울한 마음을 추스르며 유투브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수능 인강 강사들의 유투브를 보게 됐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공부나 삶과 관련된 잔소리 영상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호기심에 그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고 곧 내용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아주 뻔한 주제의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지만 답이 마땅히 없다고 생각해 막막하던 차였다. 그런데 뻔한 문제에 정해진 답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 잔소리가 참 반가웠다. 그 동안 그런 뻔한 답을 들을 기회조차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이 외로운 건 서로가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해 서로를 위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옆에 있다한들 동료로서의 관계를 넘어 나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지금은 '걱정은 사실 별 게 아니라고, 모두 지나갈 일'이라고 위로해주는 이가 마땅히 없다. 때문에 그 잔소리 영상들은 나의 유일한 해우소가 됐다. 그래서 몇 번이나 울컥하면서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살면서 자꾸 잊어버리는 내용이기에, 다시금 스스로에게 되뇌었어야 할 그 말들을 곱씹으며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한편 영상을 보며 옛 생각도 많이 났다. 아직도 기억나는 몇몇 잔소리들, 그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공부했던 시절. 뻔한 이야기에 코웃음을 치던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 소중한 추억들이었다. 어릴적 나를 어르고 달랜 건 잔소리였다. 물론 잔소리를 들으며 귀찮기도 했지만, 그 때의 나는 현재의 아픔을 잊고 미래의 변화를 기대하곤 했다. 별 것 아닌 말들조차도 희망을 심어주는 효과가 상당했다. 뻔한 답일지라도 몇 번을 반복해 들으면 나만의 답으로 나아가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인강 강사들의 유투브 채널들을 둘러보며 다양한 '쓴소리 영상'들을 보던 중 한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느끼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내용이었다. 잔소리로부터 독립한지 10년이 되어서야 나는 다시 잔소리가 그리워졌다. 여전히 완전한 어른이 되었다기보다 '어른이(어른+어린이)'로 살아가는 내게는 잔소리가 필요하다. 나의 언행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아닌 걱정에 잠긴 밤을 위로해줄 그런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잔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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