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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un 03. 2021

꾸준함의 미학

내가 가진 평범한 재능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더라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것이다.


  앤디 워홀이 남긴 명언이라며 인터넷 상에 떠도는 가짜 명언. 하지만 이보다 더 우리가 처한 현실을 아주 정확하게 꼬집고 있는 말은 없다. 뭐든 잘나고 봐야, 성공하고 봐야 한다는 논리로 노력을 부추기는 말. 실제로 유명한 사람의 작품 그리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사람들의 관심거리이자 눈요깃거리가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주목 한 번 받기가 어렵다. 한 번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면 비난이든 감탄이든 감당해야할 게 생기지만, 관심이 목마른 누군가에게는 그조차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과 달리 현실에선 원하는 일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되는 기적은 누구에게나 일어나지 않는다. 또 무지하게 애를 쓴들 운명이란 게 원하는 대로 흘러가 주질 않는다. 노력을 열심히 했지만 기회가 오지 않거나 운이 따르지 않아 허탕을 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결실을 맺으려면 노력과 운이 짝짜꿍으로 따라줘야 한다. 단순히 유명한 사람들의 행적을 좇으려 해도 그들의 삶을 흉내내긴 쉽지 않다.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다거나 똑같은 재능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남이 가진 건 내가 바랄 수 없는 남의 것일 뿐이다.


출처: 모비인사이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뭘 하든 그걸 남들이 좀 봤으면 좋겠고, 나를 좀 알아줬으면 좋겠고, 나의 정성과 노력을 인정받기’를 원한다. 성공이나 성과에 대한 욕심이란 게 그렇다. 남들의 평가가 내 행동의 기준이 되고 그게 내 기분을 얽매지만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심을 받는 이가 돈을 버는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을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고 돈을 쓸어담을 확률도 올라간다. ‘좋아요’의 개수가 부의 사다리로 올라갈 수 있느냐를 가르는 척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독자나 좋아요 수가 많을수록 기쁨의 크기가 커진다. 그 과정에서 내 창작물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감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사회는 개인의 행복을 묻지 않는다. 성공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재산을 모았느냐가 된지 오래다. 이제 사람들은 돈은 곧 행복이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믿고 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 그리고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이 만들어낸 거대한 환상이다.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야 말로 삶의 이유가 되는 세상. 그래서 누군가는 떨어져야만 하고, 내 자리를 지킥 위해서 떨어지는 사람을 외면하게 되는 그런 싸움. 우리 사회가 벗어날 수없는 개미지옥이 되어버린 건 그 경쟁구조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다들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다.


image credit: Mary Delany


처음 내 목표도 그랬다.


  처음엔 그저 글 쓰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전에는 종종 혼자서 끄적이던 내용을 열심히 가다듬어 한 편의 글로 내놓는 과정 자체가 뿌듯한 일이었다. 완성도라든가 이 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떠나 그냥 글쓴다는 행위 자체가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분을 다스리는 데 최고의 명약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나는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만났고 나를 만났고 사람에 대한 마음을 키웠다. 유투브도 마찬가지로 처음엔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줄 용도로 몇 번 제작했었다. 순수하게 스스로가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너무 재미있어서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남들을 의식하게 됐다. 좋아요 수가 적거나 조회수가 적으면 제아무리 스스로가 만족했던 결과물이었어도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주는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 외부의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내 생각을 좌우했다. 내가 왜 관심받지도 못할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가 싶어서 우울한 기분이 든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의무감에 매여서 그리고 관심에 목말라서 무언가를 계속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잠시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초조함이 더해질 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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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에 묶이기 전에 새가 되어 날아가리


  한 동안 유투브에 열심히 브이로그를 편집해 올리다가 제풀에 지쳐 그만뒀었다. 그런데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건 남을 위한 게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한 생각 때문이었다. 먼 훗 날 내 젊은 날이 어땠는가를 떠올린다면 나는 아마 드문드문 행복했던 때와 불행했던 때를 기억해 낼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수많은 평범한 하루들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 때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 있을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많은 일들 뒤엔 단편적인 것들만 기록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문득 그 평범한 나날에 어떤 게 새겨져 있었을까 궁금한 때가 온다면, 그 때의 나를 위해 남겨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지금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을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만큼은 의미를 가지고 추억이 될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러다 운이 좋게 뭇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면 감사한 일이고, 그렇지 못한다 해도 난 변함없이 어딘가에서 나답게 살고 있을것이니. 남들의 평가 따위는 신경쓸 게 아니라는 점이 내겐 중요했다. 그저 지금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그 시작이 분명 먼 미래를 내다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면, 그건 내게 절대로 맞는 답이라고 생각했다.


미래의 내가 돌아보길 기다리는
과거가 지금이라면,
나는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면, 작은 걸음에도 만족하며 꿋꿋이 나아간다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누군가의  보폭을 따라잡기 위해 종종 걸음을 한다면 온몸의 균형이 틀어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겠지. 그런 고통은  삶을 갉아먹고  영혼을 상처입히는 것일 테지. 아무리 바쁘고 힘이 들어도 작은 행복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오늘도 영상을 찍었다.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답게, 완벽하지 않지만 매번 조금씩 새로운 생각들을 담으며, 언젠가 완성될 나만의 기록과 작품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을 스스로와 약속했다.


  이미 인생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과 유명세를 등에 업고 잘나가는 사람들 틈에 구태여 위축될 필요도 없고, 멈춰설 필요도 없이 그저 나의 마라톤을 완주한다는 생각을 했다. 남의 아름다운 한 순간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현재를 추하다 여기는 어리석음에선 벗어나야 한다고 자신에게 되뇌었다. 내가 다른 누군가에 비해 아주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꾸준함만큼은 내세울 만한 작은 능력이니까. 괜히 주눅들거나 누군가의 희소식에 멈칫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했다.


출처 elearning industry


그렇게 지금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어쩌면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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