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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un 13. 2021

서른의 삼십춘기

사회인 그리고 어른이라는 삶의 무게

마음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짐덩어리 하나가 떨어졌다.


  며칠 전 나는 꽤 긴 시간 붙들고 있던 짐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건 나에 대한 솔직한 고백, 그 동안 참 많이 힘들었더라는 얘기였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겨우 입 밖으로 터져나온 말이었다.


  마음의 방황이 시작된  작년 가을 무렵이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2년이 넘은 시점, 3년차가  무렵 겪게 된다는 '퇴사병' 스멀스멀 피어오를 때쯤. 나는 스스로가 철창 안에 갇힌 원숭이가   같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의지대로 되는 일은 없었고 지내면 지낼수록 기대감보다 좌절감이  짙어졌다. 그렇게 사회생활이란 '좋든 싫든 견디는 '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게  때였다. 남들 기대에 발맞추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내게 분담된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아직 인생의 경험이 다양하지 않은 내겐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나는 과도기에 있었다.


  지난 1 동안 나는 스스로가 ‘젊은 꼰대 아닐까라는 생각에 전전긍긍했다. 신입사원 시절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후배가 들어와 어설픈 선배노릇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업무를 배웠던 기존의 선배들과 지금의 후배들은 서로 많은 부분에서 상충되는 점이 있었다. 개인이 최우선이고 개인의 목표만 달성하면 업무는 끝났다고 여기는 요즘 세대와 팀의 목표 달성과 구성원간 화합이 우선시되는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기성세대의 서로 다른 이상. 나는  중간에 애매하게 끼어있는 존재였다. 어떤  맞다고 딱잘라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입장을 딱부러지게 정하기 어려운 위치 탓에 종종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한편 평생 먹고 살 직업으로 선택한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인생의 의미는 어떤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들이 눈앞에 닥쳤는데 하나도 답을 내지 못하겠는 거다. 일도 사람도 만족스럽지 못한 가운데 파고든 생각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들은 평안한듯 보였다. 어느새 다들 저 멀리로 나아간것 같은데 나는 풀지 못한 문제 앞에 멈춰 있단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걱정도 없이 행복한데 나는 왜 어두운 고민 속에 갇혀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목청껏 웃는 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엔 시린 바람이 불었다.


그 차가운 바람에 마음이 얼어붙을 때면
서러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출처 edutopia.org/


선배와의 대화의 시간


  오랜 고민 끝에 어느 선배에게  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선배에게 나는 뭐랄까, 햇살같은 아이였다. 햇살처럼 밝고 배시시  웃는 명랑한 아이. 그리고  선배는 차가운듯 다정한 사람이었다. 외면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지만 내면엔 세상 따뜻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온기에 이끌려 선배를 따르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나를 훑는 눈빛이 너무 매서웠기 때문에, 내게  던지는  마디가  날카로웠기 때문에 나는 종종  앞에서 긴장을 했었다. 그의 웃음기 뒤엔 분명  있는 말이 숨어 있었다.  한마디도 결코 허투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선배에게 나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 몇 가지 있었다. 그가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입을 떼기 더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 사이 멀어질까 두려워’라는 어느 노랫말처럼, 나는 함부로 건넨 말이 관계에 독이 될까 두려웠다. 내 이야기가 별 구미가 당기지 않는 내용이면 어쩌지, 내게 그닥 관심이 없어 시큰둥하면 어쩌나 하는 상상을 했다. 그만큼 가까이 가기에 왠지 모를 두려움이 따르는 이였다. 기대고 싶다는 편안함보단 경외심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그에게 다가가는 게 어려웠다. 실수투성이인 모습으로 실망을 안겨줄 일이 많지 않을까 생각했던 까닭이다.


  그런 그에게 지난 1년 간 남몰래 끙끙대왔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울러 무엇이 그토록 내 마음을 붙들고 늘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스스로가 가진 불안감 그리고 주위 환경에 억눌려 지냈던 일들을 담담히 꺼냈다. 또한 고민하다 내렸던 결론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그 동안 느꼈던 문제점들을 얘기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기보다 웃느라 정신 없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와 대화가 잘 통할까, 그가 공감해줄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로가 잘 몰랐던 점이 그토록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 문제가 있음에도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단 것도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무거웠던 마음이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웃다보니 그 무게감도 잊혀졌다. 고민이 영 사라지진 않았어도 답답함은 좀 지워진 상태였다. 속 안에 맺혀 있던 응어리도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나에겐 딱 그런 게 필요했다. 내가 가진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것이.


출처 https://greatergood.berkeley.edu/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그 밑바닥엔 빠져 나가지 못한 희망만이 남았다.


  어릴적 사춘기를 겪는 동안엔 마음이 불안해 괴로웠지만 지나고 나니 한뼘 성장한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엔 그런 불안한 시기도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삶은 내게 물음을 던져온다. 이미 해결한 문제에 대한 질문은 얼마든지 다시 답을 낼 수 있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질문들이 주어진다. 그 앞에서 또 한참을 고민하기도, 남의 답안지를 들여다 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기도, 영영 풀지 못하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답도   찾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남들과 비교한  위치가 고민이 되고,  선택이 옳았는가를 걱정하고, 내가 과연 행복한 건가 하는 불안이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항해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만 한다. 나는  인생을 손에  나라는 배를 조종하는 선장이기 때문에, 거친 풍랑에 휩싸인 배가 전복되지 않으려면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요동치며 나를 밀어올리는 파도를 잠재울  있다.


  돈이 주는 달콤함에 젖어 있는 사람, 지금의 자리에 충분히 만족해 행복한 사람, 안정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사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아 들뜬 사람 그리고 연쇄적인 불행의 고리에 갇혀 버린 사람. 여러 사람들 가운데 나는 끊임없이 나만의 답을 찾아 헤매고 있다. 여전히 삶이  숙제는 풀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기필코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그래서 언젠가 시간이 흘러 지금을 돌아보아도 후회 없도록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나아갈 생각이다. 미래에 생각만큼   되진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할  있도록, 스스로의 기대를 아예 저버리지 않도록.


희망의 등불이 비추는 아래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아가는 중이다.


https://hopegrows.net/news/why-is-hope-so-impor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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