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쫓기고 지칠 때면 그리운 것
무더운 여름 날 오후. 더위를 피해 찾은 동네의 작은 카페. 재즈풍의 음악과 더불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맞아주는 조용한 공간. 잠시 뒤 다른 손님들이 더 올 때까지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다른 데 괜히 신경쓸 일 없이 혼자 오롯이 자유로워지는 시간. 뭘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강박도,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잠시 내려놓고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동네 어귀라 비치는 풍경이 단조롭기 그지 없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다.
시원한 음료를 쪽 빨아 마시며 잠시 여유로움을 누린다. 전에는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이 작은 순간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에서 나는 모든 걱정들을 내려놓고 한 없이 가벼워졌다. 남들 틈에 섞여 있느라 고단한 하루에선 놓치고야 마는 혼자만의 평화. 치열한 싸움 끝에 얻을 수 있었던 짧지만 소중한 시간. 여유 한 스푼으로 한껏 달달해진 하루였다.
무언가에 늘 쫓기던 삶
일을 할 때면 화장실 한 번 가는 게 그렇게 번거로울 수가 없었다. 눈 앞에 놓인 과업이 있으면 거기에 매달리느라 정신이 쏙 빠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당장 내 몸부터 편해야한다는 생각조차 잊고 물 한 모금 안 마신 채로 그렇게 몇 시간을 버틴 게 한 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과한 텐션을 이기지 못한 몸은 자주 골골댔다. 남들 보는 데서 아팠으면 차라리 억울하지라도 않은데 꼭 쉬는 날이면 몸 여기저기가 아프곤 했다. 그럼에도 일에 반쯤 미쳐 있는 듯한 내 자신이 맘에 들었다. 그게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었단 걸 깨닫기 전까지 말이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야 좀 쉬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잠시라도 쉬면 낙오자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 동안 몸이 달아 있었다. 하지만 일이 줄어들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쉬는 시간이 생겼고 그 틈을 파고든 건 숨 막히도록 갑갑하다는 생각이었다. 왜 이렇게 남을 앞지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을까 하는 부담감. 어느 순간 여유롭게 걸을 새도 없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사람들에 떠밀려 지하철을 타고 남들에게 뒤질새라 퇴근길에 걸음을 재촉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 느껴졌다. 한 때 별 생각 없이 오가던 길이 고통스러운 과정처럼 여겨졌다.
바쁠 때일수록 그리운 여유 한 모금
한창 바쁠 때 가장 그리웠던 건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었다. 활달한 성격 때문에 어딘가를 쏘다니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몸도 마음도 지치고 나면 그마저도 싫증이 났다. 그냥 아무런 움직임 없이 누워 있는 게 소원이다 싶었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누워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저 그런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작년까지는 그걸 실천에 잘 옮기지 못했다. 쉬는 날에도 이것저것 다 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으로 빼곡히 스케줄을 채워놨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으면 스스로가 너무 불안했다.
세상이 전부 멈추더라도
나는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요즘은 그냥 멍 때리는 게 제일 편하고 행복하다. 물론 내 안에는 여전히 달려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가치관은 늘 내 안에서 부딪힌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매 순간 적절한 답지를 골라야 하는 문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어느 쪽이 우세한지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이 둘이 균형을 이루며 살아갈 때 가장 나다운 모습이다.
사실 나는 번민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남들처럼 악착같이 정상을 향해 오르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또 뛰어오르는데 급급해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한 스스로가 안타깝다는 생각의 줄다기리는 여전하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분명한 건 있다. 앞으로는 더 확실하게 여유로움을 좇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 여유로운 내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 나라는 걸 알게 된 까닭이다. 물론 사람과 일에 쫓기고 치이는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도망칠 거다.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들을 향하여. 혼자만이 누리는 고독을 즐기기 위하여.
그리고 그건 내 삶의 가장자리가 아닌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