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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Aug 03. 2021

비탈길

힘든 하루의 끝을 적다

불행은 예고 없이, 기척 없이
그리고 난데 없이 등장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전날 비가 와서인지 지면의 공기는 어제보다는 뜨거움이 덜했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만큼 화창한 날씨였다. 수많은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1호선 급행 열차에 웬일로 사람이 적었다. 평소와 다르게 널널한 지하철 안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문득 '평화롭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여유로움을 머금고 시작했던 하루 끝을 어두운 생각으로 가득 채우게 된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https://jixifox.me/2016/08/27/happy-mood/


저기요. 그 쪽 이름이 뭐예요? 신문고 넣게요!


  흔하지 않지만 심심찮게 들리는 소리. 고용센터의 수많은 직원들이 철저히 을이 되는 순간. 집요하게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직원의 이름을 묻는 상대방은 어떠한 것도 안중에 없다. 그저 저 빌어먹을 인간의 이름을 알아내 어떻게든 복수하겠다는 희열에 차 있을 뿐. 그 복수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평소엔 울며 겨자먹기로 남의 말을 수용하는 입장이었던 탓에 울분이 많이 쌓였던 걸까. 제 처지에 비하면 편히 앉아만 있는 것 같은 직원의 모습이 아니꼽게 보였던 걸까. 아니면 그저 '손님이 왕'이라는 고루한 생각에 젖은 우월감일지도 모른다.


  ‘신문고’라는 단어는 그렇게 오늘도 누군가의 자존심을 짓밟는데 쓰인다. 누군가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 선의의 제도는 누군가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얼마든지 변질된다. 단순 질의나 문제 해결을 요청하는 내용은 차라리 업무에 관련된 것이니 괜찮다. 하지만 특정 직원을 겨냥해 들어오는 신문고는 그렇지 않다. 분풀이에 불과한 그 글을 마주해야 하는 직원은 저만 잘못한 것 같은 억울함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자에게 남의 사정을 헤아릴 여유가 남아있을까.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사람을 단죄하겠다는 감정에 사로잡힌 탓에 다른 이의 서러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심기를 거스른 당신을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어.


  그런 말과 행동에 스러져 우는 사람은 생각도 못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 나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자신의 고통만 알아주길 바라는 그 이기적인 생각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세상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니 적당히 타협해 받아들이는 게 맞지만, 가끔은 내 신념을 앞세우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내가 바뀌어야 할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하는 게 맞다고 우기는 것이다. 물론 여태껏 그런 싸움에서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세상의 벽은 그만큼 냉혹하고 두터웠다.


https://www.convoconnection.com/blog/how-to-recover-when-friends-disappoint-you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며칠  어느 민원인과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규정이 이러하니 오늘 제출하실 수 없다 방문객을 돌려보냈다. 뭐든 제출할 때에는 정해진 기한이 있는 법이다.  기한에  맞추어 제출하면 좋겠지만 업무 편의상 일찌감치 제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법칙으로만 돌아가는  아니란  너무나도  알기에  역시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알지만 규정을 지키는 데서는 그게 발휘가   된다.


  그래서 그 날도 원칙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원칙을 무시하고 일찌감치 서류를 제출하러 들렀던 그는 내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 전에는 문제없이 봐줬는데 왜 이번엔 안 되냐며 억울해했다. 그 표정을 마주하는 게 사실 떨렸으면서도 나는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이번에는 봐 드리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 말씀드렸다. 그리고 오늘 또 다시 그가 찾아왔다. 전보다 더 씩씩거리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그는 협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충분히 상황을 감안할 수 있으면서 안 된다고만 했다. 태도가 기분 나쁘고 자질이 부족하다. 저 직원은 분명 문제가 있다.


  '안 된다'는 한 마디에 붙는 갖가지 꼬리표다. 저런 말들에 자괴감이 든다면 이 험난한 공직 생활을 버틸 수 없는 노릇. 애써 태연하게 상황을 넘긴다. 듣는 내내 속에서 울컥 무언가 쏟아져 나올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사회생활은 그렇게 '버티는 거'라고 배웠다. 무슨 쓴소리든 그게 합당하지 않은 비난의 화살일지라도 '견디는 거'라고 배웠다. 다들 그렇게 살아왔노라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억울하고 화가 나서 신문고를 넣을까 했다는 그를 달랜 건 다른 동료였다. 그는 능숙하게 성을 내는 민원을 달래 돌려 보냈다. 그 동료의 말처럼 분명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오늘 내겐 유독 아프게 꽂힌 화살이었다.


TanyaJoy/iStock, Getty Images


문득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의 설렘이 떠올랐다.


  입사하기  나의 직장생활에 대한 로망은 사원증, 명함,  이름 석자가 적힌 명패 같은 것들이었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거다. 처음으로 임시직 신세를 벗어나  자리를 갖게 되었을 때의  뿌듯함. 그리고  명패가 자리에 걸렸을 때의 설렘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름 석자를 남에게 알리는  두려운 일이 됐다. 이름을 불리는 대신 '저기요'라는 호칭 정도면 족하다. 내가 누군가에게로  꽃이  일은 없기에,  이상 이름을 알리고 싶지 않아졌다.  상대방도  이름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를 향해 불만을 표출할 때를 제외하고.


  달갑지 않은 그 방문에, 상처가 된 그 말들에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 앉았다. 그래, 또 나는 잘못을 한 거구나. 오늘도 그렇게 홀로 잘못을 뉘우치며 쓰라린 속을 달래야 했다. 뭘로도 달래지지 않을 그 속상함을 나는 마음 속 깊이에 눌러 담으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는 작은 비탈길과 같았다고,
비켜갔으면 더 좋았을 길이었다고 말이다.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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