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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Sep 19. 2021

가볍게 쓰는 일기 _20

끄적이는 오늘의 생각,

게으름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사고가 자리한 뒤로 마음과 몸은 고장난 것처럼 뜻대로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멍하니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계절의 변화에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며.


날씨가 참 좋다.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빛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지만 두 볼을 스치는 바람은 제법 선선해졌다. 늦여름 그리고 초가을의 날씨. 한풀 꺾인 더위에 더 없이 푸른 하늘. 습기를 머금지 않은 공기에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때. 바로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해가 뜨는 시간도 짧아질 테고, 나무에 매달려 있던 녹음도 땅으로 떨어져 바스라질 테다. 낮이면 울어대던 매미소리와 밤이면 들리던 귀뚜라미 소리가 그리워질 테다. 여름이란 계절을 추억하기 더 없이 완벽한 소리들. 누군가에겐 달갑지 않은 소음이었을지 모르지만, 물소리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다. 한편 1년이란 시간이 이렇게나 금방 갔나 싶은 마음에 점점 아쉬움이 커질 것이고, 또 한 살의 나이를 먹겠구나 싶어 기분이 좀 나빠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겨울을 맞아 제법 두꺼워진 옷 차림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겠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조금 더 기온이 내려가면 입지 못할 여름옷들을 보니 못내 아쉽다. 외투를 걸쳐 입을 날도 머지 않았구나 싶다. 아무리 반복되어 온 일이라 해도 변해가는 모든 것들에 드는 서운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 말도 안 되는 욕심이지만 찬란했던 한 때를 오래도록 붙잡고 싶고, 단란했던 그 날의 추억이 영원히 이어지길 바란다. 그런 반면 변하지 않는 답답한 환경을 벗어나고 싶어 하고, 늘 그대로인 생각과 편견들을 저주한다. 변하는 게 싫으면서도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좋은 것과 싫은 것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아주 가볍게 흐르는 말이 좋다.


이제는 입 밖으로 무언가를 꺼낸다는 게 망설여진다. 요즘엔 특히 고독한 가운데 혼자 하루의 일과 동안 든 생각을 곱씹어 보는 게 더 편안하다. 내 생각이나 행동이 남의 귀에 들어가고 눈에 띄는 순간 거북함이 밀려온다. 학습효과다. 함부로 입을 열었다간 무슨 큰 코를 다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 행동이 눈에 띄는 순간 어떤 질타를 받을 수 있다는 걱정. 전에는 필요한 것이라 여겼던 남들의 응원과 관심도 지금은 꽤나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느껴진다. 나만 알면 됐지 하는 생각.


세상에 수만가지의 위로가 있고 건넬 수 있는 좋은 말들이 있지만, 웃음보다 더한 위로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괜찮다는 말보다 그냥 별 거 아닌 일에도 함께 웃고 떠드는 게 더 큰 힘이 된다. 걱정 말라 한들 걱정이 쉽게 지워지는 게 아니라서, 의미 없이 던지는 것 같은 우스갯소리에 사실 진심어린 위로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더 이상 위로 같은 게 필요치 않아졌다. 진득한 말 같은게 오가지 않아도 그냥 적당한 농담, 가벼운 인사말 정도면 충분하다. 안녕하든 말든 그냥 ‘안녕’이라 인사했으면 됐다. 매 순간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가볍게 넘기는 법을 배운 거다.


여의도 공원, photo by. Rojoy


'언젠가' 라는 말이 참 좋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분명 지금과 다를 거야'라는 말엔 무지막지한 힘이 담겨 있다. 바로 '희망'이라는 거. 그게 내가 가쁜 숨을 몰아 쉬어도 내달리는 이유가 된다. 지금의 나는 비록 아주 작고 여린 존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고치 안을 벗어나 유유자적 세상을 날아다닐 '나비'가 될 거라는 작은 믿음. 그래서 나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 우울한 상황에 '언젠가'라는 단어를 붙이곤 한다. 언젠가는 분명 더 나아질 거야. 그러니까 지금도 괜찮아. 그런 생각으로 슬픔을 갈무리한다. 나만의 빛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방법이다.


오늘도 나는 그 마법의 주문과 함께 다가올 내일을 그려본다. 아마 오늘의 나는 틀렸지만, 내일의 나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내일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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