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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r 10. 2022

가볍게 쓰는 일기 03

오늘의 하루를 담다,

편도로 약 2시간 거리


주말이면 경기에서 서울로, 월요일엔 다시 서울에서 경기로. 두 집을 오가며 살고 있다. 멀기도 참 멀다. 지하철에 자리라도 없으면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하는데 서 있기엔 꽤 다리가 아픈 거리다. 처음엔 이 모든 게 낯설었고 잘 적응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에 잠을 설치기도 했었다. 변화가 주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집을 떠나 사는 것도, 온통 모르는 사람들 틈에 둘러쌓여 있어야 한다는 것도 퍽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이곳을 오기로 한 선택이 옳았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1지망은 집에서 조금 더 가까운 곳이었지만 희망사항으로 남았다. 서울에서 가야하니, 2지망이라도 보내달라 했던 게 지금의 선택이다. 문득 갈림길에서 엉뚱한 길을 선택한 게 아닐까 싶어 불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것도, 잘못될 것도 없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이제 비로소 마음에 조급함이 가셨다.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은 갈증도 해갈된 기분이다. 하루하루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굳이 반추하지 않아도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이 나쁘지 않다.


https://www.successconsciousness.com/blog/inner-peace/10-reasons-why-you-need-a-peaceful-mind/


짜증날 일이 없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한 때는 감정조절이 잘 안 됐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일렁이는 기분을 컨트롤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엉망인 내면의 상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보니 멀쩡하게 생겨서는 잘 욱하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었다. 내 심경을 읽어주는 이보다 내 외양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바라보는 잣대에 맞추어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졌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자 의욕이 사그라들었다. 마치 이름에 빨간줄이 그어진 기분이었다. 누가 새겼는지 출처가 불분명한 이 낯선 줄은 나를 옥죄었다. 스스로가 '구제불능'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삐뚤어진 시선은 내 마음 속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출처 the guardian


그런 지금은 웃지 않는 날이 없을 만큼 잘 지낸다.


힘에 부치는 상황 같은 게 없다. 억지로 견뎌야 한다든가 원하지 않는 일 또한 없다. 부딪히는 사람도, 답답한 상황도 없다. 아침이면 숨이 턱턱 막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의 나는 아주 사소한 게 다 즐거움이다. 그냥 볕이 좋은 날 한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새콤한 커피향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도, 아무런 생각 없이 누워 있는 시간조차도 너무 평온해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쳇바퀴 굴러가는 삶이 고역이라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친 마음이 편안히 숨쉴 곳을 찾았다. 창밖에 비치는 햇살만 봐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별 것 아닌 일에 웃고, 매일 보는 사이임에도 반갑게 인사하고 지나치다 보니 반복되는 일상도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회사에는 반갑게 인사할 사람들이 있고 같이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을 이들이 있어 더 이상 우울한 감정에 시달리지 않는다. 나보다 더 묵묵히 힘들고 귀찮은 일을 견디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에게 밝게 미소지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꽤 살만해졌다.


이 사소한 감정들이
내 삶을 안정적으로 지지해준다.


출처 the guardian


그 동안 나는 아무런 생각과 걱정 없이도 굴러가는 삶을 바랐다.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어지럽히던 것들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 요즘의 일상은 거창한 게 없다. 이불 안에 갇혀 있는 게 그냥 그 자체로 포근하고 좋아서, 두 다리를 뻗고 누워서 해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본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여유를 부리는 게 얼마 만에 누리는 사치인가 생각하며 별 고민 없이 하루를 보낸다. 이 평화로운 순간이 가급적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안온한 하루가 지나간다.


가벼운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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