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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un 13. 2022

가볍게 쓰는 일기 04

오늘의 하루를 담다,

2022년 상반기 정산


늘 불안했다.


현재의 삶이 내가 바라고 꿈꾸던 삶이 맞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나는 늘 걱정에 시달려왔다. 어느 순간 주변을 둘러보니 안정적인 삶의 테두리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고 나는 남들보다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다. 그런데 답답할수록 몸엔 온갖 병이 생겼다. 원인 모를 두통과 구역질에 시달리며 몇 번이나 응급실 신세를 졌는지 모른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직장 그리고 단란한 가정.


그런 것들을 손에 쥐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내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는 혹시 절호의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다.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꼭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출처 Project Life Mastery


그런 내가 지금은 별 생각 없이 쉬고 있다. 일도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좋기만 해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억지로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싫은 사람들 때문에 괴로울 일 없이, 믿을 수 없을만큼 안정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애써 밝은 톤을 유지하지 않아도 조금 침울하고 힘든 모습을 보여도 괜찮느냐고 다독여줄 사람들이 곁에 있다. 전에는 숨을 쉬어도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참 오랜만에 가슴이 홀가분해졌다.


사주 보시는 분이 그랬는데 근 몇 년만에 내게 '휴식운'이 찾아왔다고 했다. 한가롭게 살아본 게 드물어 어색할 수 있겠지만 그냥 이런 때는 맘껏 쉬면서 다음에 쓸 에너지를 충전해두어야 한다고 했다. 괜히 답답하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평소에 도전해본 적이 없었던 것을 해보라고 했다. 신기한 것은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작은 도전들을 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전거를 탔던 것이나 발레를 시작한 것.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고 거기에서 성취감을 얻는 일.


그렇게 삶을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나가는 것


안타깝게도 이 휴식운이 곧 끝날 거라고 했다. 7월까지가 끝이라고. 이 휴식운이 4월에 들어와서 4월부터 7월까지 4달 동안 편안한 운의 흐름이 있는데 8월부터 다시 바빠지기 시작해서 그 정신없는 운이 내년 1월까지 갈 거라고 했다. 그러니깐 쉬었던 기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힘들 예정이라 지금 안 쉬어주면 앞으로 쓸 에너지가 없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비로소 지금의 삶에 더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삶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항상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조금 안정을 찾았다.


걱정이 가득했던 2월이 지나 6월이 된 지금은 얼굴에 가득했던 독기가 전부 빠져 있다.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까지 봄이 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 지금의 난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롭고 조용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행복이 금방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마저 잠재울만큼 강력한 편안함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이 다가왔다. 강렬한 태양빛에 흥이 절로 오르는 요즘이다.


출처 DB블로그


트라우마에 관한 글을 남긴 그 날


옆에서 항상 내 웃음을 책임지고(?) 계시는 주무관님께 처음으로 과거의 일을 털어놓았다. 이곳에 오기 전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 동안 조금씩 주변에 과거의 불행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있었지만, 상세한 내용을 얘기한 건 정말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곤 처음이었다. 내 얘기를 듣고 나서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그저 참고만 있었느냐고 물으시는데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다행히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아주 밝게 웃으며 대답했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숙주가 약해질 때쯤 되살아나 마음을 휘젓는다. 물론 고통과 후회 속에 얻은 깨달음은 내가 곁에 두어야  사람과 흘려보내야  인연을 구분하게 했지만 한편으론 밤잠을 설치게 만들기도 했다. 감정을 갈무리한다고 글을 쓰고 잠에 들었지만 얼마   깨고 말았다. 악몽을 꾸다가 일어났다. 목이 말라서 혹은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깼던 거라면 금방 잠이   같은데 마음이 추워서 일어난 것이라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날 아침. 평소보다 수면 시간이 부족해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일어나 룸메와 인사를 나누었다. 다정한 그 애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잘 잤냐며 내게 아침 인사를 건넸고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잠을 설쳤다고 털어놨다. 그러자 그 애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그럼 저 깨우지 그랬어요. OO야, 일어나! 언니 심심하니깐 같이 놀자! 일어나!


다음 날 똑같이 출근을 해야하는 입장이면서 새벽에 자신을 깨우라니. 가볍게 뱉었을 말이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다정하게 들리던지. 내가 참 좋은 동거인을 만났다는 생각에 감동해 또 울컥했다. 그 한마디가 너무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다. 지난 1월만 해도 내 잘못으로 모든 걸 망쳐버린 것 같아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모든 걸 꽁꽁 얼려버릴 듯한 세상이 너무 차가워 이대로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새 내 삶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고 꽃이 피었다. 사람 때문에 괴로웠지만 사람 때문에 또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된 아이러니. 그 때 그 사람들은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내게 이런 얘기를 해준다.


그 때 그 일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https://keepthinkingbig.com/yesterday-is-gone/


새로운 취미와 관심사가 생겼다.


요즘은 인테리어에 새로운 취미가 생겨 매일 방을 어떻게 데코할지 고민하곤 한다. 전에는 방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눕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제 청소하랴 검색하랴 바쁘다. 내 취향의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를 사 본 게 처음이라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처음엔 뭘 어떻게 골라야할지 몰라서 한참을 고민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하다보니 그럴듯하게 방을 완성할 줄 알게 됐다. 비싸고 좋은 가구들을 들이는 대신 싼 가격에 일일이 조립해야 하는 가구 아닌 가구들이지만 나만의 분위기로 채워진 방 안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이제 웬만한 건 조립할 줄 안다. 물론 조립하는 건 귀찮고 힘들다. 하지만 돈을 더 들이자니 망설여졌다. 그래도 괜찮아 보이는 걸 고르겠다고 열심히 검색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제품들이 있었고 그 동안 그걸 모르고 살았다. 그러니 더욱 신기하고 재밌었다. 생각만 해왔던 로망들도 머릿 속에 다시 떠올려봤다. 그래서 빔 프로젝터를 샀고 화분을 들였다. 모두 가성비를 고려한 것들이다. 볕이 잘 드는 방이라 썬캐쳐도 샀다. 기대했던 오색찬란한 빛을 볼 순 없었으나 그런대로 꾸민 느낌은 난다.


감성 한 스푼을 제대로 담기 위해 사진찍어 놓은 방 사진을 이리보고 저리본다. 머릿 속으로 방 배치를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며 마음에 드는 걸 찾을 때까지 상품 찜하기가 계속된다. 어떻게 꾸미는 게 좋을지 답이 안 나올 땐 유투브를 켠다. 더 멋지게 그리고 깔끔하게 꾸며놓은 방들을 보면 내 방이 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미래에 저런 방의 주인이 되길 꿈꾸며 인테리어 감각을 길러본다. 그렇게 하나씩 빈 공간을 채워가면서 나의 허전했던 마음도 채운다. 이번엔 빈 틈이 아주 많게 여백을 두면서 채웠다.


언젠가는 정말 마음껏 꿈을 꾸고 그 꿈을 펼칠 날이 오지 않을까. 아니 사실 꿈이랄 게 거창한 게 아니라 원하던 방향의 삶에 가까워지는 일인데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비슷하게 가지 않을까. 한 때 나는 포기하는 게 지름길이란 생각도 했었지만 새로운 환경은 내게 미래를 꿈꾸게 한다.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불어넣고 있다. 물론 현실의 나는 공부와 자기계발에 매달리기보다 매일같이 집안 청소하느라 바쁘고 어설픈 솜씨로 주방을 기웃거리고 있긴 하지만.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Moment is yet to come


https://www.unhcr.org/innovation/art-fabulation-and-practicing-the-worlds-we-w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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