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살기에 살아낼 수 있는 삶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외롭지 않다.
혼자만 사는 집이 아니라 지내기 불편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삶의 영역을 생판 모르는 남과 공유해야한다는 사실이 결코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살 룸메이트를 실제로 마주하기 전까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파묻혀 있었다. 잘 못 지낼 게 너무 걱정됐다. 그 때만 해도 '남'이란 존재는 내게 어려웠다. 다가가면 너무 뜨겁고 멀어지면 또 너무 차가워지는 관계 속에서 한 동안 갈팡질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이와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의 일상을 공유한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순서대로 씻고 출근준비해서 함께 버스를 타러 나선다.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지만 적응이 되니 서로의 온기 덕분에 쌀쌀한 아침공기도 춥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이 늘 고되기만 했는데 함께라 그런지 발걸음이 꽤 가볍게 느껴진다. 버스 정류장까지 그리고 내린 뒤에도 서로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는 건 아니지만 그냥 함께 하는 순간엔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이 있다.
아주 밀접하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관계. 조금 아쉬운 듯한 거리에서 우리는 하루에 있었던 기분 나쁜 일들을 공유하고 서로를 토닥인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다고, 내일은 괜찮을 거란 이야기들을 나누며 힘들었던 각자의 하루를 위로한다. 그것만으로 잔뜩 침울했던 기분이 풀리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일일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힘들었던 하루를 다시 곱씹어보지 않더라도 왠지 괜찮다는 기분이 든다. 정말 혼자였더라면 내내 잠 못 이룰 법한 고민거리도 어딘가로 날려버린 채로 잠자리에 든다. 우울했던 감정도 스르륵 사라지고 고요함만이 방에 남아있다.
회사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주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소음 같았던 전과 달리 지금은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던 지난 날과 달리 발을 디디는 모든 곳이 다 따스하다. 좀 짜증나는 일이 생기면 토로할 상대가 있고, 실수나 잘못에도 개의치 않고 '그럴 수 있지'하며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눈치보지 말고 행동하라는 말이, 버벅거리던 통화내용을 듣던 동료가 조용히 보내준 메신저 내용이 얼마나 의지가 되던지. 누군가가 내게 가지는 사소한 관심과 배려가 큰 버팀목이 되어준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싶다는 의지는 그런 것들에서 비롯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웃으며 대하려고, 착실하게 인사를 잘 하려고 노력한 덕분이었는지 사람들은 금세 정을 나눠주었다. 그냥 머리부터 발 끝까지 너무 귀엽다며 예뻐해주시는 분, 지금도 너무 잘하는데 뭐가 걱정이느냐는 분까지. 그런 말을 들어본 지가 오래라 그 사소한 칭찬에 얼마나 벅차올랐는지 모른다. 자리를 비우게 되더라도 어떠한 이유도 묻지 않고 걱정말고 쉬고 오라는 팀원들의 배려 덕분에 오히려 나는 회사에 가고 싶어졌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너무 좋은 까닭이다. 그들과 함께라면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점심도 배불리 먹었다.
요즘엔 회사 식당을 이용하는 대신 먹을거리를 직접 싸 온다. 그런데 아무래도 반쯤은 자취를 하는 셈이니 점심 때 싸오는 반찬이 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서울에서 내려올 때 엄마가 반찬을 두둑이 싸주시지만 며칠이면 동 난다. 짐이 무거워서 가짓수를 늘려 가져오기도 부담스럽다. 보통은 몇 가지 찬에 밥을 조금 먹거나 컵라면이나 샐러드 같은 걸로 떼우는 편인데 오늘은 별로 먹을 게 없던 참이었다. 언뜻 부실해 보이는 내 식사거리를 보더니 어느 분이 본인의 집에서 챙겨온 반찬을 늘어놓고는 든든히 먹으라며 밥까지 챙겨주셨다.
따뜻한 밥에 종류도 다양한 반찬들을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눈치 보지 말고 필요하면 언제든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꺼내먹으라는 말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제대로 밥값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는다.
내 하루의 날씨는 오늘도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