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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un 07. 2022

무례했던 당신에게

트라우마 극복 일기 no.2

꿈에도 몰랐어.


  TV나 뉴스 같은 곳에 나오는 몇몇 불쌍한 인간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피해자들. 나는 먼 발치에서 그 소식을 접하면서 미처 그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리지 못했거든. 그저 불행한 사람의 불운한 일로 여기거나 혹은 피해자가 문제 있는건 아닐까 하는 그런 가벼운 생각들로 지나쳐 버렸어. 정말 안일한 생각이었지. 그 피해자가 바로 내가 되기 전까진 알지 못했어. 


사실 그런 일은 예고없이 내 삶을 두드리고
내 숨통을 조인다는 것을.


  고통에 대한 면역도 없었고 헤쳐나가리라는 각오조차 없었던 내게 어느 날 불행은 말도 없이 들이닥쳤어. 특히나 예상하지 못했어. 원만하게 잘 지내던 관계도 뒤돌아서면 언제든 칼을 꽂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풍문으로만 들었지 실제하는 일이라곤 생각지 못했거든. 나와 한 때 웃고 떠들며 잠시나마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털어놓는 관계라고 생각했던 당신이 매몰차게 내게 등 돌릴 줄이야. 당신이 했던 말이 맞았어. 나더러 사람 너무 믿지 말라고 했잖아. 그건 당신 같은 사람을 조심하란 얘기였던 건데 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네. 말귀를 못알아들은 내 탓이지.


  그래도 나는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다 생각했는데 당신은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게 당연했나 봐. 아직도 당신의 그 마지막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 나를 보는 눈빛엔 석별의 정은커녕 불쾌함이 가득 담겨 있었지. 그 오만한 표정이 잊히지를 않아. 내게 어떤 걸 바라고 그 따위 표정을 짓고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 같은 건 말살된 얼굴이었다는 건 알 수 있었어. 동시에 깨달았지. 아, 당신은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딱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 언젠가 당신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그 순간을 후회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내가 당신 때문에 괴로웠던만큼도 당신도 괴로움에 몸부림칠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출처 sleeping at last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잖아.


  내가 전생에 말도 안 되는 죄를 지었나, 아니면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았나. 내 행한 선행이 너무 적었던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어. 뭐 때문에 나는 이 괴로움을 감당해야 하는걸까. 대놓고 보이진 않았지만 나를 손가락질하는 당신을 볼 때마다 고통에 시달렸어.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말에 공감해? 속이 썩어문드러져 가는데 내가 살아 숨쉰다는 것 자체가 이질적으로 느껴졌어. 내게 불행은 마치 이게 시작인 것처럼 느껴졌어. 언제 어디서 변사체로 발견되도 놀랍지 않았을만큼 나는 피폐해져갔어. 내가 그런 극단적인 생각에 내몰렸을 때 당신은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까?


  속이 썩어가면 썩어갈수록 몸에는 악밖에 남질 않아. 쉬어도 쉰 것 같지가 않고 얼굴을 비롯한 전신이 염증으로 뒤덮이지. 어떤 좋은 약을 먹고 바르고 해도 병이 낫지를 않아. 악순환의 고리가 끊이기 전까지 말이지. 지금의 나는 말이야, 여전히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 두 번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를 가슴 깊이 끌어 안고 살아. 여전히 그 기억들을 마주하는 게 어렵고 불편한 일이야. 오래지 않은 기억이라 바로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거든. 그래서 아직도 눈물이 줄줄 흘러. 과거를 회상한다는 게 나에겐 여전히 고통이야. 


그 참담한 고통 속에서 나는 꽃을 피우기는커녕 피를 철철 흘렸어.


  그런 당신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 전보다 더 많이 웃고 지내? 나는 그래.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내 삶에도 변화가 일어났고 숨 가쁘게 흘러갔던 하루는 이제 여유가 생겼어. 아직도 과거의 순간들이 나를 괴롭힐 때가 있지만 그래도 행복하단 생각이 들 만큼 잘 지내. 앞으로도 한 동안 당신은 내게 큰 트라우마겠지만 더 연한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더 단단한 껍데기로 내 자신을 무장하려 해. 당신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운 사람들 곁에서 좀 더 편안한 삶을 살고 있어. 두려움에 맞서는 법을 배우면서. 서툴지만 한 걸음씩 잘 나아가고 있어. 자전거를 타는 모습과 똑같아.


  사주쟁이가 그러는데 작년같은 운이 계속되면 빨리 죽는대. 그러니깐 그런 운은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거랬어. 겪어야 할 업보라고 생각하는 게 나으려나. 그 만큼 작년이란 시간 동안 내 생명이 갉아먹히고 있었거든. 그렇게 살다간 단명할 운이었을거야. 다행히 내게 주어진 명이 조금 더 길었나 봐. 지금은 아주 많이 상황이 나아진 걸 보면. 내게 너무 최악이었던 당신, 어디서든 내가 당신의 뇌리에서 잊히지 않길 바라. 그리고 더 이상 내 삶에 침범하지 않기를 바라.


그리고 부디 당신의 과거를 후회할 날을 맞길 바라.
출처 seg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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