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 어려운 가장 마지막 순간
나는 싫은 것을 잘 참지 못한다.
그 반대로 좋은 것도 잘 참지 못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하지만 어릴적 나의 어머니는 감정을 분출하는 걸 '나쁜 행동'이라 지칭했기 때문에 참고 넘긴 답답한 순간들이 많았다. 물론 어머니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모진 세상에서 나의 솔직함이 당차다며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염려한 말이었으니깐. 덕분에 그 동안 구설수에 오르는 일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좋고 싫음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인마냥 있는듯 없는듯 조용하게. 하지만 그 평화로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억누를 수 없었던 감정은 잘못된 방법으로 분출되었다. 대상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나는 종종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 상대방에게 큰 생채기를 남겼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되바라진 모습'이 도드라지게 표출되었다. 부모님의 훈계에도 악착같이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남자친구에게도 험한 말을 쏟아부었다. 사실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리고 상처받았기에 복수심에 더욱 불타라올랐다. 스스로가 무척 불안정한 상태였던 것이다.
예컨대 부모님이 늦은 귀가를 걱정해 어서 들어오라는 말에도 금방 화가 치밀어 왜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며 그런 자격이 있느냐 쏘아 붙였고, 통화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남자친구가 연락이 되지 않으면 나를 뭘로 알기에 멋대로 행동하느냐며 쏘아붙였다. 일방적으로 억울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된것 마냥 분노를 표출했다
이와 같은 모습을 학창 시절엔 사춘기를 겪는 평범한 과정이라고 치부해버렸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변함없이 성미를 누르지 못하는 것은 문제행동임이 분명했다.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은듯 조용히 속으로 눈물을 삼키다가도 가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 가끔 존재감을 내비치던 내면의 어두운 감정은 환경적 변화와 맞물려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그렇게 나는 일찌감치 '슬럼프' 혹은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스물 둘, 처음으로 내 자신의 민낯을 대면했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밑바닥은 생각보다 더 추하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처음엔 무작정 많이 울었다. 숨기지 못하고 터져나온 눈물을 남들 앞에서 토해냈다. 처음엔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 그조차도 감당이 안 되었지만 차츰 속내를 털어놓고 나니 익숙해졌다. 내 얘기를 꺼내는 게 이렇게 목 메는 일이었나 새삼스러웠다.
감정을 토해내면서 억울하단 심정도 들었지만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고통이었고 저마다 아름답게 피어난 사람들을 보며 우울했다. 나는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인가 하는 절망에 수시로 휩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의 동년배의 친구들 중 큰 시름거리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저 연애고민, 진로고민을 하다가 저녁 식사에 파스타가 어울릴지 다른 메뉴를 먹을지 결정하면 되는 그런 평범한 일상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왜 이모양일까 하며 자조를 하는 건 나뿐이었다.
그 다음 든 생각은 그 동안 참 '애썼다'는 것이다.
분명 휘청거리는 가운데서도 나는 하늘을 향해 꼿꼿이 피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스스로 용돈도 벌어야 했고 장학금을 받아야 했던 내 삶은 치열했다. 부모님이 경제적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나는 내 밥벌이를 해야했다. 물론 당시에는 그걸 감당해 낼 만한 열정이 사그라들 만큼 짙은 회의감에 사로잡혀있지만 이내 소일거리를 찾아 헤맸다. 악착같이 살기엔 에너지가 부족했지만 떠밀린 이상 어쩔 수 없이 해내야 했다.
우선 학교를 잠시 떠나있기로 했다. 한 학기의 휴학을 결정했고 아르바이트와 사무보조 일을 시작했다. 머릿 속에 뒤엉킨 생각을 정리하고자 사회생활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낯선 환경에서 나는 비로소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회사생활은 오히려 자존감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일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어른들 눈에 그저 예뻐보였던 덕분이었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지극한 관심을 받으며 나는 비로소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 의미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던 생각에서 탈피해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남이든 자신이든 추켜세우기보다 질타하는 데 익숙했던 스스로가 가엾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씩 나는 어두운 터널을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마침내 만나게 된 아름다운 비밀정원을 바라보며 비로소 인생을 조금 알게 되었다. 참는다는 것은 내 자신을 틀에 가두는 행위가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발휘하는 용기라는 것을. 어려움을 극복하고 난 뒤 달라진 것은 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스테이지에서 퀘스트를 깨트린 것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도 변화가 일었다. 새롭게 맺은 열매는 전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