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거나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위기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의 말을 빌자면 미증유의 위기와 고통 아래 놓여있는 것이다. 세상살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것이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국가도 이념도 정치도 사랑마저도, 먹고사는 것이 불충분해지면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만다. 지금 우리중 누군가는 먹고사는 문제가 간절한 바람이 되고 있다. 결국 먹고사는 것의 핵심은 돈이다.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현상황을 미증유의 비상경제 시국이라 규정하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유례없는 비상상황이므로 대책도 전례가 없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 대책 중 하나가 <재난기본소득>이다. 재난기본소득은 재난 상황에서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일정 금액의 돈을 나눠주는 것이다. 미국의 보수적인 경제학자인 맨큐(맨큐의 경제학 저자)도 전국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수의 학자나 지자체에서도 재난기본소득의 지급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의 입장이다.
막상 재난기본소득의 지급을 결정하고 집행해야 할 청와대와 정책관료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대통령은 정책참모나 행정부 관료들의 정책 결정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다. 그냥 본능이나 직감으로 결정할수도, 결정해서도 안된다. 직감이나 이상한 기운 등으로 국가정책을 결정하다 보면 저번 정권처럼 된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국가예산을 책임지는 기재부 관료들은 국가재정건전성을 고려하고 예산의 집행범위 내 국가채무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세계에서 10번째 안에 들 정도로 건전하다. 오죽하면 OECD에서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돈을 더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겠는가. 국회에서는 하나로 입을 모아 재난기본소득의 지급을 요구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당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알것 같지만 그들의 진심은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의 답답한 현실이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므로 결정 과정도 짧아야 하고 집행도 즉시적이어야 한다. 일반적인 정책결정 과정을 통한 선별적 정책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나 가능하다. 현상황에서 수령 계층을 구분하고 지급하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근로소득장려금이나 아동수당 지급의 전례에서 그랬듯이 선별적 지급대상을 결정하는데만 엄청난 인력과 시간과 비용이 든다. 이번에도 그렇게 한다면 그 작업이 마무리될 때면 그 돈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당장 인공호흡이 필요한 이에게 인공호흡 절차와 관련 법령을 따져보기 위해 책을 찾고 법전을 뒤적이는 것과 같다. 차분한 준비를 통해 인공호흡이 가능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정작그 환자는 인공호흡이 필요 없는 세상에 가있을 수도 있다.
물론 재난기본소득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찬반 대립이 있다. 재난기본소득의 지급이 취약계층에 도움을 주고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실질적으로 돈을 쓸 수 있는 환경 미조성이나 막대한 재정지출을 이유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이 있다. 긍정적인 입장에서도 현금지급 방식이 아닌 세금 감면 등의 조치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순간에 누가 답을 정해주겠는가.
대통령의 진중한 말씀이 정책관료들에게 의미 있게 전달되는지도 의문이다. 누군가의 일상은 타인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데, 막상 그 일상 속에 평온하게 살고 있는 이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우리의 정책관료들이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재난을 불러올수도 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것은 관료들의 전문성에서 기인한다. 그 관료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서 여러 상황을 세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다. 이 상황에서 정상적인 정책결정 과정을 거쳐 예산을 배분하고 집행하는 것은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지는 일일 수도 있다. 가장 급한 쪽에 먼저 물길을 틀어막고 차후를 보는 것이다. 전시상황에 적당히 싸우고자 상당한 시간을 기울여 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전쟁에 지고자 하는 것과 같다.
국내 상황과 세계경제 상황의 이모저모를 모두 따져보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특단의 대책과 조치가 신속하게 결정되고 시민들의 삶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국가도 대통령도 공무원들도 스스로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모든 정책은 타이밍이다. 좌고우면 할 시간이 필요한 정책도 있고 그런 때도 있지만, 지금은 토론이나 탁상공론으로 재난기본소득의 유효성 여부를 따져보고 실행할 계제가 아니다.
지급대상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하지만 이것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대부분의 차상위계층이나 선별적 복지가 필요한 이들은 현재의 우리의 복지시스템 안에서 해결되고 있어서 당장 큰 문제가 없다. 시급한 것은 복지시스템 밖에 있는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과 일용직 근로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다. 언제 모든 국민의 직업을 구분하고 가진 재산을 따져서 이들에게 밥과 국을 먹을 수 있게 할 것인가. 가장 급한 불부터 끄고 보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일단 전 국민에게 일정 금액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라.
*여유 있는 시민들이 그것을 정부나 지자체에 반납하고 다시 재분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장기화는 어느 나라도 피해 갈 수 없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마저도 현재의 상황을 전시상황으로 이해하고 본인을 전시 대통령으로 부르고 있다.
버스도 도착하기 전에 기다리고 있다 타야 하고... 떠나가는 버스를 보고 아무리 손을 흔들어대도 그 버스가 놓친 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현실에서야 다시 오는 버스를 기다리면 되겠지만. 그 버스가 마지막 버스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쟁도 코로나로 인한 위기상황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