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피어나야 할 꽃들은 개화시기를 잊었다. 개개인의 일상이 비일상으로 바뀌고 "사회적 거리두기"란 이름으로 서로가 멀어져 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일으킨 우리 일상의 변화다. 이 변화는 일면 웃지 못할 긍정적인 면도 있다.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밥을 함께 먹으며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반면 일상의 억제는 개인의 공간을 축소시키고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어쩔수없는 부대낌에서 오는 가족 간의 갈등이 그렇다.
우리 모두는 예측불허의 불안한 상황이 주는 미증유의 고통을 마주하고 있다.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해도 문제이거니와 사회 정치적인 불만 표출로 인한 사회적 불안의 증가도 큰 문제다. 대표적으로 <마스크 대란>의 문제는 정부의 위기 대처능력, 민간의 생산 및 공급 능력, 국민들의 수용능력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이러한 사태의 불씨를 키우는 편견과 의혹만을 생산하는 언론까지... 이 모든 능력에 대한 회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세상이 물질적으로 풍족해질수록 그로 인한 고통 또한 늘어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딜레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세상의 많은 문제와 고민이 사라질 줄 알았지만.... 그것이 거대한 착각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난재해, 환경오염으로 인한 각종 피해, 신종 바이러스 등의 공격은 인간 생존의 조건에 관해 새로운 숙제를 내주고 있다.
한 사회의 유복함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먹을거리가 풍부해지고 즐길거리가 다양함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양지의 영역에 나타나는 외형적인 성장과 부유함은 필연적으로 어둡고 차가운 음지에 약자로 통칭되는 "누군가"를 남긴다. 이들 양자는 하나의 차원에 두 개의 세상으로 나눠져 존재한다. 이들 사이에 욕망과 편견의 강이 끝없이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일상의 민낯이다.
바람직한 일상의 이상향은 성장과 분배의 밸런스에서 만들어진다. 그 균형은 현실정치에서 정책의 이름으로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혜택을 부여할 때 개인의 일상은 소소하게 살아난다. 하지만 그런 고민이 철학적이거나정치적인 어젠다에만 머물러 있을 때 우리 주변의 빈자들과 소수자들은 음지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늘 이상과 현실의 벽은 높고 기득권의 세계는 철옹성 안에서 보호받는다. 가진 것이 없거나 부족한 이들의 처지는 능력 부족이나 노력 부족으로 치환되고 만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지금도 그런 현실을 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속사정이다.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사회 속에도 늘 "누군가의 아픔"은 존재한다.
자연재해나 예측할 수 없는 사건사고는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로 인해 평범한 이들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고통의 영역으로 바뀌기도 한다. 또한 과학기술이 고도화된 위험사회에서조차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위기상황이 뜻밖의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처럼...
대부분의 사회적 고통은 구조적인 모순이나 개인적인 문제의 모습을 띤다. 고통이 사회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개인화될 때 그 불행은 특별한 이들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서로는 늘 "예외적 존재"라는 의식 아래 도처의 불행을 그냥 타인들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사고로만 여긴다. 그 시점에서 우리의 불행이 시작될수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타인의 고통을 배려의 눈길과 따뜻한 가슴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조롱과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도 많다. 자식을 잃고 단식하는 부모들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었던 이들처럼.... 시선과 시선의 간극 사이에서 누군가의 일상 혹은 인생은 비참해지거나 소외된다.
우리는 타인들의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슬픔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혹은 그 속사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을까? 그 고통이 보여주는 현실의 단면에 대해서 나도 모르게 날선 의혹이나 조롱 따위를 가볍게 날리며 일상을 소비하지는 않을까?
어떤 고통은 우리에게 좀 더 인간적인 길을 요구하고, 서로에게 따뜻해지고 배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금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위기상황을 바람직한 사회발전의 기회로 이끌어야 하는 까닭이다.
현재의 고통이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내어준다면.... 좀 더 성숙한 사회나 개인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면... 우리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우리의 관심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타자의 슬픔을 적절한 수준에서 우리에게 감정이입하는 것.
개인의 고통을 공공의 관점으로 치환시켜 개인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
이것들로부터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올바른 시선은 시작될 것이다. 그로 인해 다시 봄이 오고 우리의 일상이 꽃을 피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