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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29. 2020

결혼을 반대하셨던 전국의 장모님들께

존경하는 전국의 장모님들께


먼저 장모님의 따님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원했던 사람으로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인사드리고자 처음 방문했던 그날. 많은 사위들이 받았던 어쩔 수 없었던 불편부당함이 있었답니다. 장모님 눈에 돋아난 쌍심지가 그렇게 커 보일 줄 몰랐습니다.  무슨 괴인류의 출현도 아닌데 말이죠... 뭘 훔치거나 무슨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방방 뛰었죠. 오히려 사위들의 마음을 훔친 것은 따님인데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딸에 대한 불만이 생면부지의 예비사위에게 투영된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래인지 그날의  커피는 그리도 쓰고, 냉수를 달랬더니 뜨거운 보리차를 주시고. 알지도 못하는 잘난 옆집 사위와는 왜 비교를 하시는지... 아무튼 남의 귀한 아들이 또 다른 남의 집에서 된서리 맞은 낙엽처럼 고개를 푹 숙여야 했습니다. 가뜩이나 입맛도 없는데... 왜 밥만 그리 많이 주시는지. 적응이 잘 안되었던 그날의 상황은 보통 남자들의 숙명쯤으로 봐도 될까요?


거실에서 주방으로 왔다 갔다 하는 딸에게 조용히 하시는 말씀이 크게 들려왔습니다. 보청기를 장만한 것도 아닌데도 속삭이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는 말하는 것처럼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키는 큰데 왜 말랐냐. 키는 작고 통통한 것은 먼 놈의 밸런스냐. 피부 톤은 왜 저 모양이어서 피부과 의사들은 굶어 죽으란 말이냐. 저 나이에 연봉은 왜 쥐꼬리를 닮았냐. 혹시 머리숱을 보아하니 대머리가 되는 것은 아니냐. 학교 다닐 때 남들 다하는 공부는 안 하고 뭐했냐. 얼굴도 모르는 사돈네는 남 다 있는 변변한 집도 없냐. 신혼집을 월세로 들어가는 것이 말이냐 막걸리냐. 남자가 밥을 잘 먹어야지 깨작거리는 저것은 먹는 거냐 마는 거냐. 혹시 자랑할 거리가 있기는 하냐.(도대체 어떤 조건을 갖춰야 만족하실는지)

그날. 따님에게 사랑고백을 거절당했던 기억보다 장모님에게 비교당하거나 디스 당했던 사실이 더 기분 나빴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안 하시는 말씀을 하셔서...



예전에 들었던 어떤 일화가 떠오릅니다.


어떤 어머님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대학생과 연애하는 딸(의 연애)을 결사반대했더랍니다. 집이라도 나가겠다는 딸을 어떻게 구워삶으셨는지(그 따님도 의지가 약하셨는지)... 딸의 결혼 후 안녕을 우려한 엄마의 사생결단의 의지 때문에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답니다. 세월이 흐른 후 그 찌질해 보이던 그 남자는 고생 끝에 고시에 붙었고.... 다시 또 세월이 흘러 고향 지역구에서 금배지를 달고 가끔씩 티브이에 나오기 시작했다죠.(어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스토리 같죠!)


과거의 엄마 나이가 된 딸이 엄마에게 물어보았답니다.

"엄마, 저기.... 저 국회의원이 옛날에 하마터면 나랑 결혼할뻔했던 그 사람이야! 000이라고."

그랬더니 엄마는 처음에는 별말씀도 안 하시다가  중에 이렇게 한마디 하셨답니다.

"글쎄... 왜 그런 사람을 놓쳐가지고... 너도 옆집 딸처럼 좀 우기고 그러지 그랬냐!"(그 집 딸 이혼한 얘기는 쏙 빼놓고요...)


오히려 딸을 책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웃고 말았습니다. 물론 웃자고 한 에피소드일 수 있지만. 사람 인생 아무도 모르고, 특히 젊은 청춘들의 인생은 여러 번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셨나 봅니다. 그렇다고 잘살고 있는 현재의 따님이 딱하거나 그렇지는 않겠지만요.


살다 보면. 사람의 인연이 다들 거기서 거기인 거는 다 압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나 운명이라는 것도 다 압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할 정도로 후회할 일이 되면 안 되겠죠. 다행히 지금 장모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따님께서 후회할 일은 없겠네요.


cbs 레인보우에서 이런 사연이 흘러나옵니다. 어떤 장모님의 사위 자랑 사연입니다. 혼자 사시는 당신을 위해 한동네에서 살면서 아들보다 더 알뜰살뜰히 찾아온다는 사위에 대한 자랑. 사위가 솜씨 좋으신 안사돈 음식을 좋아하지만. (음식 솜씨 없으신) 당신의 애호박 칼국수가 제일 맛있다고 말하는 사위가 있어서 든든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사위 자랑을 마구마구 하신다고...


사연 듣다가 그분 신청곡이 뭐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따님도 어머니도 행복하시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다정다감한 사위 한 사람으로 인해 듣는 이들까지 따뜻했었답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도 정겨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떤 장모님들은 사위를 아들처럼 여기신다고 말씀하시지만.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 말에 혹해서 그 집 아들보다 더 고생하는 사위를 여러 명 봤거든요. 물론 사위도 자식의 일종(?)이어서 성심성의껏 부모님을 모시는 게 극히 타당합니다. 다만 며느리도 딸이 될 수 없듯이 사위도 아들이 아닙니다. 개(?)처럼 부리다가 막상 재산 문제에 관해서는 금지옥엽 딸마저도 쏙  빼놓고 아들하고만 상의하신다는 수상한 소문도 들립니다. 속상한 딸들이 친정 식구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는 불편한 소문도 있더군요. 그래서인지 시어머니에게 더 살갑게 대하는 며느리들많아 보입니다. 이쪽 라운드에서는 재산 문제에 관해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들과 딸을 구분하시는 것은 잘못된 관습에 불과할 텐데도 많이 아쉽습니다.


전히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합니다. 정확히는 뭔 뜻인지 모르겠지만. 잘하면 <우리 귀한  사위>로 취급받지만 아차 싶으면 여지없이 <사위 자식 개자식>이 되어버리는 부당한 현실을 고발합니다. 라디오 사연도 잘 들어보면. 당신의 아들은 멀리서 살고 고생도 많이 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위의 손을 빌린다고 하시는 걸로 봐서는. 그 집 사위분 말도 들어봐야 장모님의 진실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도 <사위사랑은 장모님>이라고 이 세상의 많은 사위들이 장모님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장모님 덕분에 따님과의 크고 작은 불화도 넘어가게 됩니다. 때로는 당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 어쩔 수 없이 비굴해지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혹시 연극이나 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장모님의 고도의 지능적인 전략에 낚여서 평생을 살아가는 순진한 사위들도 많아 보입니다. 장가 잘 갔다고 처갓집 앞에 있는 장승한테도 절을 한다 이상한 사위들도 눈에 띕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위에게 씨암탉까지는 아니어도 처갓집 치킨에서 두 마리나 시켜주셨던 통 큰 배려를 기억합니다. 그 분위기에 취해 소주병과 맥주병이 여러 병 쓰러졌고, 장인어른과 함께 방바닥에 뒹굴었던 그날의 환대를 기억합니다. 그냥 집에 가자고 하던 따님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날밤을 새던 날. 장모님 흉을 보시던 장인어른 장단을 맞추다가 남자들은 다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아내 앞에서는 주눅 든 존재감이랄까. 그놈의 동질감 때문에 아껴두었던 귀한 술 한 병이 더 비어졌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딸 시집보내고 당신 집 <보물단지>가 빠져나가서 가세가 기울었다고 엄살 피우시는 장모님도 계십니다. 문제는 그 집의 보물인지 뭔지를 곱게 모셔왔더니 이쪽 집에서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웃지 못할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애당초 애물단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은... 꼭 수사를 해봐야 밝혀질 사안인지도 의문스럽습니다. 장모님들의 양심 고백 내지 자백을 청원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라도 올릴까 싶네요. 억울한 사위들의 모임 명의로요. 결혼식 당일 장모님께서 서운해서 우신 게 아니라 시원해서 울지 않았을까요? 똥차 치웠다고.... 결혼식 비디오 영상 다시 한번 돌려보겠습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따님과의 결혼에 대해 조금만 반대하시고...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게 해 주신 것은 고맙습니다. 대부분의 사위들이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지 않고 결혼에 골인한 것도 대부분 장모님들 덕분입니다. 좀 부족해 보여도 내 아들도 그려려니 하시는 너그러운 마음에 그러신 것 다 압니다. 결혼해보니 처남들도 어느 집의 사위가 되면서 장인 장모님 흉보는 거는 똑같더라고요. 특히 말씀 많으신 장모님 흉을 더 보게 되죠. 물론 장모님 흉을 보는 따님의 넋두리를 밤새 들어주는 사위들도 생각보다 많답니다.


어찌 됐건 이쁜 딸을 낳아주시고 잘 키워주셔서 우리 아이들의 엄마로 만들어주신 것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딸 고생할까 봐 좀 더 좋은 조건의 남자를 고르고, 더 자상한 남자를 선택하게 할 수밖에 없는 장모님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왜냐고요? 곧 저희도 딸들을 결혼시켜야 할 나이가 되어가니까요.


장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자면 하룻밤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딸과 사위가 아이 키우는데 힘들까 봐서 가까운 동네로 이사오셔서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돌봐주신 것.
입맛 까다롭고 음식 솜씨 없는 따님 때문에 가족들이 고통받을까 봐 사시사철 틈틈이 온갖 음식으로 AS 해주신 것.
없는 용돈 아끼셔서 사위 기력 딸린다고 장어즙과 보약 지어주신 것.(오히려 장인어른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지만.)
부부싸움이라도 했던 기색이 보이면 딸 편을 들기보다는 사위 걱정을 많이 해주신 것.
사위 입맛 돋우느라 무수히 잡아버린 불쌍한 영혼의 닭과 오리들.(물론 치킨집에서 주문한 음식도 많았지만요.)
...........
감사의 말씀을 드리자면 끝이 없을 겁니다.


어쩌면 처음에 결혼 반대하셨던 장모님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우리 딸들이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 결혼이 되기를 바라니까요... 부모 마음도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느낍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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