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휴가를 내고 늦가을의 오후를 즐기던 금요일 오후였다. 거실에서 만추의 햇볕을 반가워하며 책을 읽었다. 독서와 최고의 친구는 라디오(혹은 라디오 + 맥주)다. 부담 없이 음악이 흐르고 중간중간 진행자의 소소한 일상 얘기들이 듣는 이들을 편하게 한다. 평일 날 하루 휴가가 주는 여유는 예가체프나 케냐 AA 커피 한잔에서 시작된다. 우유를 뜨겁게 데워 거품기로 풍성한 거품을 내고 라떼로 만들어 마시는 커피는 일품이다. 틈틈이 셔츠나 운동복 등 밀린 손빨래를 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읽고 때로는 글도 쓴다. 온전히 나만의 평화로운 시간이다. 누구의 방해도 없는.
잠시 책 읽기가 지루해질 무렵. 라디오에서 느린 자막처럼 어떤 사연이 흘러나온다. 어떤 남편의 거짓말로 인한 스토리였다. 사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승진에서 누락되자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승진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내는 가뜩이나 경제상황도 안 좋은 상황에서 남편이 승진했다고 하니 동네방네 자랑을 했고... 친구 아무개 남편은 승진이 문제가 아니라 조기퇴직을 했다고 하면서 남편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남편은 잠시나마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그것도 그야말로 잠시.
승진은 통상 회사 내 직급과 연봉의 상승을 불러온다. 남편은 예상 가능한 승진 발 연봉 인상액을 채우기 위해 세차장 알바를 했다. 사정을 모르는 아내는 승진이 되니까 책임감이 무거워져 초과근무까지 하게 됐다면서 남편을 더 치켜세웠다는 얘기다. 남편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것은 당연지사. 속으로는 내년에는 반드시 승진하자는 맹세를 수십 번이나 되새겼다는 얘기.
남들이 어려워하는 승진을 한 남편을 자랑으로 여기는 아내 앞에서 남편의 거짓말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새끼로 낳는다. 당사자는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다른 경로 선택을 하여야 한다. 자신의 거짓말과 아내의 남편 자랑이 콜라보를 이뤄 한 편의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이다. 무슨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소재이긴 한데, 아내를 위해 그런 무리수를 둔 남편의 속마음에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마냥 칭찬을 해드릴 수는 없고~~)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인지라 역시 청취자들의 댓글도 실시간으로 달린다. 진행자도 그 댓글 중 인상적인 여러 개를 읽었다. "굳이 그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었느냐. 왜 타인의 자랑으로 살려고 하느냐. 자신의 능력대로 살면 되지. 승진이 거짓말을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냐.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지 않았을까.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며 남편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댓글도 있었다.
날선 비난보다는 따뜻한 위로와 안타까움이 담긴 댓글이 많았다. 아직은 여러모로 살만한 세상이다. 그 댓글 중 하나가 순간을 사로잡았다.
"왜 다른 누구의 자랑으로 살려고 하시는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삶보다는 나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다면. 타인의 바람보다는 내가 진실로 믿는 바대로 살 수 있다면.
어쩌면 자랑(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무리 겸손한 이라 할지라도 자랑할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최소한 그 겸손함 마저도 자랑이 된다. 스스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 지인들의 사돈네 팔촌까지 자랑의 대상에 포함된다. 흔히들 말하는 "내가 자~알 아는 친구(동생, 동기동창, 아는 형, 선배 등등)가 말이야~" 류의 문장 속에는 그 타인으로 인한 내 자랑이 깨알처럼 숨어있다.(실제로 그리 큰 도움은 안되고, 대화 상대방도 그 사실을 잘 안다.) 특히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거나 취업을 잘하면 부모의 입은 전자동 모터를 탑재한다. 공부를 잘해 앞날이 창창한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거다.
고생하는 부모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살아가는 자식들도많다. 적성에도 맞지 않은 전공을 부모의 바람대로 선택했다가 평생 고생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숨기고 가족의 소망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이들에 관한 얘기는 드라마 소재로도 현실 속에서도 많이 존재한다. 물론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 나름의 속사정도 있을 것이고, 가정 내의 의사결정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타인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불필요한 양보를 해야 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부모 입장이든 자식의 입장이든 같다.
반면 누군가의 자랑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자발적인 선택 혹은 어쩔 수 없는 관계로. 그러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가기 싫은 길도 가야 한다.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욕구 이상의 것을 위해 죽어라 애쓰기도 한다. 정상적인 궤도에서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 동기 이상의 것을 요구하다 보니 삶은 쉽게 지치고 피곤해진다. 이는 마치 체형이나 기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같다. 자칫하면 타인의 환호에 호응하는 피에로의 옷을 입을 수도 있다.
"누구의 남편이 국회의원으로 잘 나간다. 가족이나 친구가 행정부나 사법부 고위직에 있다. 선배가 대기업 임원으로 고연봉에 주식 부자다. 누구의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전문직에 종사한다. 지인이 티브이에 자주 나오고 돈 잘 버는 연예인이다." 이런 류의 얘기는 그냥 듣기 좋은 남의 얘기다. 그쪽은 나름대로의 삶을 살기 위해 절치부심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고, 그 대가로 살고 있는 거다. 진심 어린 박수 한 번이면 족하다.(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에도 현혹되지 말자. 그냥 헛소리다.)
나는 나대로, 생긴 대로, 능력대로, 나의 바람대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힘들까?
타인의 삶과 내 자신의 삶을 비교하고 부러워는 하되, 딱 삶의 동기부여를 하는 그 정도까지만 하자.설사 중요한 타인이 바라는 삶이 있더라도 나의 바람대로 살자. 그 이상은 내 자신의 외투를 걸치는 것이 아닌 어색한 타인의 옷을 입는 것과 같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애정이나 관계 문제가 아닌... 적절한 수준 이상의 자랑이 되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 자신의 성취로 가족이나 주위에 보람이나 자랑거리를 일부 줄 수는 있지만. 억지 노력을 통해 그들의 자랑거리로 부상할 필요는 없다.어쩌면 우리의 존재나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 자랑일 수 있으니까. 더욱이 나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가족의 자랑 부심을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얼굴이나 다른 신체를 성형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삶을 성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부자연스러움은 어떡할 것인가? 또한 뒷수습은 어떻게 하고... 아무튼 라디오 사연 주인공인 남편분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