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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Jul 13. 2021

아들은 부모의 주택연금 가입신청을 적극 만류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이들과 돈과 경제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연봉이나 자산총액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많다. 자신들이 먹고 살아가는 집의 경제적 상황을 잘 이해하려고 하려는 건지 몰라도.... 이런저런 대화중에 셋째인 큰아들이 아빠에게 물었다. 그것도 단도직입적으로.

"아빠, 나중에 이 집 누구 줄 거야?"

아빠는 아들의 느닷없는 황당한 질문에 신중한 해석 모드로 접근했다.

"대개는 큰아들 주던데. 우리 집은 내가 큰아들이니까 나한테 주면 되겠네."(아들은 자문자답 후 무엇이 그리 흡족한지 불필요하게 크게 웃고 있었다.)


뒤편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작은 누나가 발끈하며 한마디를 보탠다.

"짜식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를 하고 있어. 엄마 아빠 꺼는 엄마 아빠가 다 쓰고 살아야지. 왜 쓸데없이 너를 주냐고!!! 혹시 쓰다가 남는 것이 있으면 우리들이 골고루 나눠갔던지...."

작은딸의 극히 합리적인 발언에도 역시나 아빠는 할 말이 없었다. 가끔은 침묵이 가장 좋은 답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지금이 그때였다.


아들에게 스스로 어떤 깨달음이 생기기를 기다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아빠의 침묵이 아이들 간의 대화의 물꼬나 문제의 실마리를 잡는 데는 성공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경제적 관념을 만들어내는 경제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막상 어른들조차 부동산이나 주식을 빼놓고는 경제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세태가 아니던가.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이나 교훈을 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고루한 재산에 관한 관습을 끄집어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말하는 문장이 있다.

"자식은 부모에게 아홉을 받고도 하나를 더 바라고, 부모는 자식에게 열을 다 주고도 하나를 더 못해줘 안타까워한다." 

어느 부모던지 자식들에게 경제적 부를 나눠주거나 물려줄 생각을 한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본능에 가까운 부모의 마음이다. 생각은 그렇더라도 막상 현실은 마음 같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은 한정된 재화의 문제이고, 부모 자식 간 재화의 배분은 제로섬의 법칙이 정확히 적용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주위에 있는 어느 안타까운(?) 집의 얘기다. 이 집의 아빠는 공공기관에 근무하다 정년퇴직 예정이고, 엄마는 계속 전업주부였다. 자산이라곤 전혀 똘똘하지 않은 서울 외곽의 아파트 하나와 국민연금이 전부였다. 외벌이로 아들 둘을 대학원까지 보내다 보니 저축한 현금자산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 두 아들이 아빠의 재직 중에 결혼을 해서 앞으로 목돈 들어갈 일은 없을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는 매달 150만 원 정도의 국민연금만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힘들어 부모가 주택연금을 신청하고자 하는데서 시작됐다. 어떻게 알았는지 큰 아들이 주택연금을 신청하려는 부모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다는 얘기였다. 처음에 부모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을 아들이 아끼고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고 한다.

혹여라도 아들들이 합심하여 부모의 생활비를 약간이라도 추렴하려나 생각했지만, 곧 그것이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고 한다. 큰 아들이 당당하게 하는 말.


"엄마 아빠, 나중에 이 집은 저에게 물려주세요.... 주택연금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주택금융공사에서 처분하는 걸로 알고 있어서요...."(아들은 자신들이 특별히 용돈을 드릴 여유나 생각은 없고, 가능하면 연금(+알파)을 최대한 아껴서 생활하시라는 말을 다른 톤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의 말에 부모는 일순간이나마 섣부른 기대를 했던 자신들을 책망하고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도대체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권리로 부모의 자산 처분의 기회와 노후생활비 늘리는 계획을 못하게 했을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잖아도 아내랑 퇴직 후 연금 얘기를 하면서 여차하면 우리도 주택연금을 신청해야 되지 않을까를 말하고 있던 터였는데. 혹시라도 우리 아이들도...

 

주택연금은 가입조건이 까다로운 제도다.

<주택연금>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일정 연령 이후에 연금을 지급받고, 대출자가 사망하면 금융기관이 주택을 팔아 대출금을 상환받는 제도다. 이는 연금제도의 형식을 갖지만 역모기지의 일종이다. 국가가 보증하는 제도이다 보니 주택 가격이 일정 수준(현재는 공시지가 9억 원) 이상이 되는 경우에는 신청자격이 제한된다. 이는 주택연금이 보편적 복지의 문제가 아닌 생계형 노후비용을 위한 제도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소정의 금액을 생활비로 쓰고자 하는 것은 현재나 향후의 생계비용이 넉넉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아들이 어쩌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부모의 마지막 보루인 주택을 마치 '자신의 상속재산'으로 미리 확정해버리는 것은 큰 착각이 아니었을까. 대학원까지 교육받은 그 집 아들의 속내가 진정 궁금하다.



일정 나이가 되면 모두 노후(비용)에 대한 얘기를 한다. 현재의 중년층은 칠십 대 이상의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노후복지에 대한 관심이 큰 까닭이다. 기존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교육이나 양육에 과도한 지출을 하다 보니 정작 본인들의 노후에는 무대책인 경우가 많았다. 이는 자식을 잘 키우는 것 자체가 노후준비라는 잘못된 인식도 한몫했을 것이다. 현재까지도 40~50대들 중 많은 이들이 적게나마 부모님의 생활비나 용돈을 위해 형제들이 갹출하고 있다. 하지만 제사 모시기나 부모의 봉양 문제를 구습으로 생각하는 현실을 보면. 이제는 부모들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고  그 비용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왔다.


노후대비 중 가장 실효성이 큰 게 각종의 연금제도다. 공무원연금이나 국민연금 등 공적인 연금부터 금융기관을 통한 사적연금은 개인이 젊은 시절부터 스스로 일정 금액을 납입해서 장래의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고액 연금수급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충분치 않은 연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따라서 다른 직업을 갖거나 소득이 없으면 노후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저 집 아들의 말처럼 적은 연금을 아껴서 생활한다고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생활비의 절대적 액수를 늘리지 못한다면 노후의 가난이 목을 내밀어 손짓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세대처럼 아이들에게 의존할 수도 없는 문제다.


부모의 주택연금 신청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던 아들은 부모가 살고 있던 집을 자신의 '상속재산'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들이 상속재산의 '법률적 개념'에 대해 무지한 것은 아니었을까. 상속은 피상속인의 사후에 상속인인 가족들의 권리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권리를 미리 주장하거나 그에 대한 보전처분 등을 할 수는 없다. 상속재산은 피상속인의 사후에 그 사망 시를 기준으로 확정되기 때문이다.


성리학적 관념이 지배하는 구관습이나 구민법에 의하면 부모의 사후에 남겨진 재산을 장자가 독식하던 시대도 있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큰 아들이 모든 재산을 차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행히 현행 민법이나 우리의 시민의식은 남녀 구분 없이 균분을 택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고공 행진하는 부동산 가격과 교육비 등 과도한 양육비 때문에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별로 없는 시대다.(물론 물려줄 자산이 많은 일부는 예외이지만)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부모의 재산과 현실에 존재하는 부모의 재산은 큰 차이가 있다. 현실 속에서 부모의 가처분 재산이 많아야 물려줄 재산 개념이 생길터인데... 대부분 부모들의 재무제표상 자산은 노후 생활비에 충당하기에도 빠듯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 아들의 머릿속에는 부모의 최후의 자산인 아파트가 자신의 '예비 상속재산'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 집 이야기가 전혀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우리 집 작은 딸의 생각이 가장 현실적인 답이 될 것이다.

어찌 되었건 부모의 재산은 부모의 고유한 몫이다.

부모들 스스로 쓰고 남은 것의 처분에 대해서도 부모에게 선택권이 있다.

생각해보면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교육기회의 제공과 보통의 가정환경에 관한 정도면 족하다.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도 물질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정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이에 대해서는 여러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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