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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Apr 29. 2021

급식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학교생활, 누가 만들어갈까?

2016년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실의 역할을 돌아보며...

국가는 국민에게 이익을 주고 보호하는 영원한 선이며,
정부는 국가의 도구로서 국가의 가치에 충실한 존재 의의를 갖는다.
- 중국의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

우리의 국가와 정부는 량치차오의 정의대로 존재하고 있을까?
그 구성원인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을까?



학교에 다녀온 막내가 아빠에게 자랑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친구랑 대화나 놀이고, 다른 하나는 맛있게 먹었던 점심메뉴다. 가끔씩 손가락을 세면서 반찬의 개수를 말해주곤 한다.

"아빠, 오늘은 치킨가스랑 파인애플. 또 뭐더라. 그러니까... 아, 짬뽕수제비랑 작은 새송이버섯볶음... 깍두기까지"

"어제 나온 설렁탕 하고 제육김치볶음인가, 배추무침보다는 오늘이 훨씬 더 맛있던데...."


막내의 얘기를 들으면서 '저 정도 메뉴면 집밥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막내에게 학교에서 먹는 점심 급식은 큰 즐거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먹을게 풍부한 시대긴 하지만 친구들과 눈 맞추며 깔깔거리며 먹는 학교급식만의 특별한 맛이 존재하는가 보다. 지금은 식사 중 대화 금지 상황이라 서로 눈으로 대화한다고 한다.


'너, 맛있냐. 오늘 메뉴 중 뭐가 제일 맛있어? ㅎㅎ"

'ㅎㅎ.. 나는 치킨가스. 꼭 중국요리 같은데... 탕수육은 아니고 유린기인지 뭐인지... 이름이 이상하긴 하네. ㅎㅎ"

'그래도 건강에 좋은 미니새송이버섯도 꼭 먹어라. 꼭꼭 씹어서... 짬뽕수제비에 저 해물 좀 봐봐..."

아마도 이런 대화를 눈으로 나누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막내가 다니는 초등학교 실제 급식 사진이다(아빠네 구내식 당보다 더 맛있어 보인다.). 잘 익은 알타리김치는 진짜 밥도둑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막내는 학교 급식을 좋아한다. 2주일에 닷새 정도 학교에 가는 지금도 급식 메뉴표를 뽑아달라며 성화다. 아빠가 보기에는 별거 없는 초등학생 입맛의 메뉴지만 아이 눈에는 뷔페요리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딱히 집밥이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먹고 메뉴가 매일 바뀐다는 장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끔씩 언론에 급식으로 인한 식중독이나 식자재 불량 문제를 보면 부모 입장에서 마음이 편치는 않다. 또한 지역이나 학교마다 급식의 양과 질의 차이가 다는 얘기를 듣고 보면 이러한 문제 상황을 개선할 여지는 없을까 고민해본다.


학창 시절의 즐거움을 단지 '공부'에서 찾는 이들은 없다(혹시 주위에 있다면 이번 기회에 기필코 손절하자.). 아이들은 친구들과 같이 생활하고 공감하는 시공간 속에서 자신들만의 낙원(樂園)을 만들고 추억한다. 우리 부모들의 학창 시절이 그러했듯이 요즘 아이들도 경쟁시대에 걸맞은 학교생활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여러모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아침부터 카톡을 통해 모여서 등교하기도 하고 방과 후의 놀이 일정을 짜기도 한다.


아이들이 걱정 없이 학교에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학교라는 물적 시설과 선생님들을 비롯한 인적 구성원들의 종합적인 지원 덕분이다. 수많은 고마운 분들이 존재한다. 아이들이 즐거움과 좋은 기억을 얻어가야 할 공간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제도나 인적 자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즐거움과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은 누가 만들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공부하고 생활하는 것은 어느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거다.


대통령이나 교육감 등의 교육철학이 현장에 그대로 반영되면 좋겠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에 정치적인 색깔까지 난마처럼 얽히다 보면 산으로 가기 일쑤다. 결국 바람직한 환경의 조성은 각급 학교와 교육행정지원 과정에서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할 수 있겠다. 



량치차오의 국가와 정부에 대한 정의가 현대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양자의 관계를 확실하게 한 것은 분명하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이익을 위한 존재라는 것 또한 명확하다. 정부를 구성하는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공무원들이 국가가 지향하는 유일무이한 목표를 위한 도구인 것도 명백하다. 공무원은 국가가 그에게 위임한 권한 범위 내에서 국가 대신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헌신하여야 함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우리 앞의 현실은 어떠한가?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면서도 되돌이표에 불과한 제도 변경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교육분야는 거시적인 철학과 미시적인 실천 사이에서 가장 간극이 큰 국가정책이다. 그 이유는 단순한 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사람의 변화까지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결과물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특히 사교육 시장의 과도한 팽창과 공교육의 부실은 그 궤를 같이한다.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던 수많은 "누군가들"이 만들어낸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교육현장에 바람직한 권한 행사를 통한 헌신의 흔적이 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누군가에게 아로새겨진 고통의 흔적이 있다. 

2016년도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실의 노력과 성과다. 


이들은 아이들 급식과 관련하여(이 문제는 사립유치원의 회계부정 사건과 같은 맥락이다.)...

2016년도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실(감사관 김거성)은 학교급식 관련 특정분야 감사(감사담당관 오종민)를 통해 그동안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로 경기도 내 각급 학교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운영하는 학교급식 전자조달 시스템(eaT시스템) 사용하도록 전면 의무화하였다. 이 시스템 활용의 장점은 국가예산 및 회계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급식 식자재 수요공급의 투명성을 제고하며 바른 먹거리 문화 혁신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 개선은 감사 사후 조치의 일부에 해당하지만,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었다.


또한, 사립유치원 개혁 3법을 통해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를 가능케 한 것도 이들의 족적이다. 만약 이들마저 과거의 형식에 불과한 실지감사 관행과 구태(舊態)에 얽매어 현실과 타협하였다면... 교육현장에 대한 특별한 문제 인식과 사명감이 없었다면 이러한 논의는 여전히 탁상공론의 대상일 수도 있겠다.


당시의 김거성 감사관(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역임)은 자리에서 물러난 후 감사대상자가 보낸 ('금괴배달사건'으로 소문이 났던) 감사패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이들과 뇌물공여에 관한 지난한 재판절차를 거쳤고, 현재도 사건이 대법원에 계속 중이다.

감사담당자였던 오종민 사무관은 사립유치원 감사 당시에 제기되었던 각종 재판과 고발사건에 당사자나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참여하는 등 개인으로 겪기 힘든 고통을 참아내며 묵묵히 직무를 수행 중이다.



사립유치원의 방만한 경영, 회계비리와 각급 학교단위의 급식 관련한 부조리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교육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나 부정적 상황은 관행과 온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교실과 급식식당에 퍼져있었다. 교육행정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소명의식 없는 이들에게 맡긴 결과였다.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실의 성과는 정의롭지 못한 실태를 파헤친 것 중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당시의 감사담당자들이 자신의 안위나 일신의 편안함을 추구했다면 저런 문제의식을 갖거나 소정의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조직 내부와 외부의 거센 비난에도 아이들을 위해 깨끗한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이들의 소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아이들의 교실과 급식실에서 부조리한 단면과 매일 마주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업무추진과정은 험난했지만, 그들이 뿌려놓은 선순환의 씨앗은 지금도 싹트고 있다. 물론 이들의 성과는 아이들이 맛있는 점심을 먹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는데 작은 부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다만, 역시나 명확한 것은 이런 생각과 실천력을 가진 공무원들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의 교실과 급식실, 부모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을 것이란 거다.



우리 부모들이 현재나 미래의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이들에게는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2016년도 경기도교육청 감사관과 감사담당자들에게서 그 희망의 싹을 볼 수 있다. 업무에서 오는 막중한 책임감을 회피하지 않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들의 용기와 헌신에서 참된 모범의 증거를 찾고 싶다.  


공무원의 존재 의의는 수혜자인 국민에게  있다. 교육행정도 서비스의 귀속자인 아이들을 위한 정책과 행정지원이 최우선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하물며 공공의 구성원들이 서비스 공급자들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당연한 명제를 무시하고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고 있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정의로웠을까?


교육청의 조직도를 보면 국가 위에 국민이 존재하듯이 최상위에 학생이 다. 이런 조직이 학생들보다 그들을 위해 도구적으로 작용해야 할 학교나 유치원 측의 입장을 대변하였다면 타당했을까. 헌법 규정에만 국민이 존재하고, 조직도에만 학생이 존재하는 우리의 어설픈 현실에서 오는 불편함은 누구의 잘못일까?


공무원으로서 진정 두려운 것은 부조리의 저항이 아니라 타성에 젖은 자신의 모습과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이다. 최적의 조건과 시간을 두고도 의지 부족으로 실패하는 정책과 사람을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코로나로 인해 교육환경이 변화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의 사고와 태도로 접근할 때 수요자인 아이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 수업과 비대면 교육환경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보다 적은 후회를 남길 수 있도록 더 철저히 준비하고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까?


많은 것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문제의식과 변화의 의지가 있는 주체만이 우리 아이들을 바람직한 교육환경으로 이끌 수 있다.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정치적 이념이나 시장논리에 내팽개치지 않고, 국가가 위임한 신성한 권한을 아이들과 부모들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 사용하는 이들이어야 한다.   


배의 크기가 클수록 그 배의 순항 가능성은 선장과 항해사의 능력에 달려있다. 다년간의 경험, 승객과 배를 보호하고자 하는 그들의 능력과 의지에 우리의 안전과 행복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나 지자체 교육자치단체를 막론하고 리더의 경험이나 철학이 중요한 이유다. 절체절명의 위기시에 배와 승객을 버리고 떠났던 세월호의 선장에게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었던가. 능력과 경험, 개선의 의지마저도 없는 이들에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없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교육현장에 이러한 선장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희망하는 바가 있다면. 우리의 교육행정이란 커다란 배에 <2016년도 경기도교육청의 감사관실> 같은 책임감 강한 이들이 선장과 항해사가 되어 키를 잡는다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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