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최윤정. 2014년 4. 16. 남도의 바다 위에서 절친을 잃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만난 단짝 친구였는데.... 그 후로 수없는 밤을 울며 뜬눈으로 보냈다.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 줄 알았는데...
그 뒤로 십 년이 지났다.
고2 때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떠나기 위한 전날 밤. 윤정은 유난스레 들떠있었다. 제주도에 도착하면 하고 싶은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명희의 생일이 수학여행 두 번째 날에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명희의 생일 축하해 주기 위한 비밀 계획도 세웠다. 어디서 케이크를 구할지, 어떤 선물을 할지, 선생님 모르게 샴페인을 어떻게 숨겨 들어올지에 대해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었다. 이틀 뒤 깜짝 파티를 위한 완벽한 모의.
배가 인천항을 떠나던 밤. 아이들은 갈매기에게 마음껏 새우깡을 던져주었다. 바다가 주는 설렘 때문인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멀미약을 먹고 배정받은 선실에 가방을 내렸다. 아이들 대부분 여객선 여행은 처음이었다. 검푸른 바다를 보고 두려움이 앞섰지만, 큰 배를 보고서는 별 탈 없으리라는 믿음도 컸다.
서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항로는 순조로웠다. 밤하늘의 별무리는 쏟아져 내렸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멀리 연안부두의 불빛이 숨을 죽일 무렵. 다시 평택항과 대천항, 해안선에 연이은 항구들의 반갑고 따뜻한 생존의 기호들. 여기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하는 숭고한 신호들. 커다란 여객선에서 바라보는 항구의 조그만 불빛은 희망을 비추는 반딧불이처럼 반짝였다. 아이들은 해안선과 수없이 반짝거리는 작은 항구들의 안부에 환호했다. 우리들이 살아 숨 쉬는 곳. 한반도의 서해 바다 위에 아이들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파도로 밀려왔다.
아마도 서해안에는 등대가 필요 없으리라. 저토록 많은 크고 작은 항구와 어촌마을에서 보내주는 사람들의 흔적들. 바다 위 사람들은 땅 위의 그들을 믿고 그 흔적들에 의지하며 살아왔고, 그러기에 오늘도 바다 위에서 편히 잠이 든다. 내일 아침은 남도의 어느 바다 위에서 눈을 뜨겠지. 아침 일출이 아름다운 남해의 푸른 바다...
친구는 수학여행을 간다며 한 달 전부터 준비했었지. 처음에는 엄마를 혼자 두고 떠나기 싫어서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엄마의 신신당부에 잘 다녀오겠노라고 친구는 그렇게 들떠있었다. 윤정은 5년 동안 친구랑 붙어 다니던 시간을 떠올렸다.
‘명희 너는... 혼자 외동딸을 키우신 엄마를 돕느라 학원도 다니지 않겠노라 던 철든 아이였지. 나중에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게 되면 엄마랑 외국여행을 가겠다는 계획을 가슴속에 숨겨든 아이였지. 남몰래 용돈을 모으고 주말 알바를 해서 엄마 선물을 마련하던 아이였지. 지금 생각해 보면 명희야, 너는 너무 착한 아이였던 거야. 별이 된 내 친구야!’
친구 윤정은 여전히 친구 명희가 떠난 빈자리를 잊지 못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니 지금도 배에 친구를 두고 떠나온 그때를 기억한다. 그 배의 이름은 세월호였던가!
‘벌써 명희 네가 떠난 지 몇 년이 지났는지... 친구야, 내 기억은 그날에 멈춰있어. 네가 마지막으로 웃던 그날 밤. 배위에는 아이들이 많이 나와 있었고, 우리들도 그 사이에서 시원한 바람을 마주하고 있었지. 시커먼 바다는 무서웠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는 행복한 별자리를 꿈꾸는 여고생이었지. 우리는 쉼 없이 재잘거리고 웃고 손뼉을 치면서 달과 북두칠성이 움직이는 우리의 항로를 보았지. 대학생이 될 우리의 모습을 마음껏 상상했고, 우리가 사랑할 사람들을 미리 그리워했고, 우리에게서 태어날 아이들을 호명했었지. 여행 떠나던 날 밤은 그토록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했지. 이럴 줄 알았으면 벚꽃 분분히 날리는 교정에서 너랑 사진 한 장 더 찍어둘걸.’
어깨가 축 처진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엄마가 말했다. 그 사건 이후 가족 모두가 서울 쪽으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다. 윤정은 대학을 졸업하고 벌써 직장인이 된 지 3년 차가 되었다. 먼저 떠난 친구 몫까지 살겠노라고 했던 결심을 실행 중이었다. 그럼에도 슬픔은 쉽사리 윤정을 놓아주지 않았다.
“윤정아, 요새 밥 먹는 것도 부실하고 얼굴 표정도 그러네. 아직도 네 마음속에서 명희를 놓아주기가 힘든 모양이구나. 어쩐다니!”
“엄마.... 꼭 그렇지는 않은데.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되네... 친구들이 상처를 잊고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게 명희의 바람이라면 알면서도... 그게, 잘...”
“나도 해마다 4월이 되면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너희들은 오죽하겠니. 너하고 명희랑 또 다른 친구들... 벌써 이름도 잘 기억이 안 나네.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 때문에 너희들이 얼마나 많이 울었고 지금도 슬퍼하잖아.”
“그니깐... 어제도 호주로 이민 간 친구랑 통화하다가 갑자기 그날 생각이 나서 많이 울고 그랬는데... 울고 나면 시원해져야 하는데...”
엄마랑 밥상 대화를 하면서도 목에 무엇이 걸린 것처럼 자꾸 말이 빠져나오지 못한다. 가슴 깊숙이 박힌 슬픔의 기억이 여전히 바깥세상을 머뭇거린다.
윤정은 해마다 그날이 오면 매년 팽목항에 간다. 먼저 친구들을 추억하고 추모하며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 친구들을 잊어버리기엔 자신들의 십 대는 너무 찬란했으므로. 노란색의 바람개비와 가족을 잃은 이들의 발길과 서러움이 끊임없이 방파제위를 덮었다. 아마도 가족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슬픔이리라.
언제부턴가 윤정은 ‘불행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고 있다. 크고 작은 불행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속 고통을 달래주고 다시 건강한 삶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모임이다. 한 달에 한번 전문가로부터 마음 챙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서로를 위로하며 대화를 하고 있다. 동병상련과 이심전심은 큰 위로와 평온을 주었다. 함께 얘기하고 눈물 흘려주며 등을 두드려주면서 참가자들은 서서히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윤정은 생각했다. 이런 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이런 행운은 말 그대로 소수에게만 주어진다. 이런 기회가 있는지 모르거나 소극적인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할 방법은 없을까? 어떤 개인이 외부적으로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서도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치유받을 수는 없을까?
그러던 어느 가을날. 행복해야 할 토요일 밤에 또 비극이 있었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에 나섰던 젊은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평소에도 수많은 연인과 친구들과 가족들이 자주 찾는 거리였다. 가장 안전하다는 대한민국의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죽었다. 수많은 집회와 응원에 수십만 명이 모였어도 일어나지 않았던 참사였다.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는 변명과 핑계로 일관하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개인들의 불행이었노라고. 놀러 나간 이들과 그 부모들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정신 나간 이들도 있었다.
그 거리에서는 전년도에도 그 전전 연도에도 비슷한 규모의 축제가 열렸다. 그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는 국가기관과 지자체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적절한 통제와 안내를 담당한 경찰과 공무원을 배치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시민들은 일상을 즐기고 공적인 영역의 누군가는 타인의 일상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면 되는 거였다. 묻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국가의 존재이유였다.
윤정은 의문을 가졌다. 왜 축제는 축제로 끝나지 않는 걸까? 왜 책임감과 공감능력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 사회적인 불행은 곧 개인의 책임이 되어 버리는 것인가? 오죽하면 각자도생이라는 단어가 초등학생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겠는가! 정치사회적으로는 각자도생은 무정부상태를 가리키는 말 아니던가!
이 비극으로 큰 슬픔을 가진 수많은 가족이 생겨났다. 거미줄처럼 얽힌 정치판에서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민생을 책임지겠노라고 큰소리 땅땅 치던 이들은 언론에서 사라졌다. 책임도 없으니 사과할 이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무책임과 뻔뻔함은 그들의 몫일 테지만 좌절감과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되었다.
윤정의 회사 동기가 그 거리에서 사촌동생을 잃었다. 대학 4학년이었던 사촌동생에게 그날은 취업이 확정되어 희망에 부푼 가을, 어느 토요일 저녁이었다. 다른 친구들과 축하 파티를 위해 안전했던 그 거리, 이태원을 찾았었다. 그다음 날은 가족모임도 계획되어 있었다.
윤정은 몇 날 며칠을 동기를 위로했다. 먼저 아픔을 위로하고 슬픔을 치유하고자 동기와 많은 얘기를 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놓아버린 친구는 멍하게 듣고만 있었다. 자신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윤정은 여러 사건사고에서 고통당하는 이들을 보면서 좀 더 접근하기 쉬운 치유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다.
윤정은 최근 부서 회식자리에서 정태 선배로부터 신통방통한 얘기를 들었다.
“글쎄, 생각나무라는 회사가 있는데 말이야. 그 회사가 뭘 만드는 줄 아니? 모르지. 그게 말이야....”
얘기할 때마다 뜸을 많이 들이는 나쁜 습관을 가진 정태 선배는 단도직입적인 대화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똑똑하게 줄여보면... 생각나무란 회사에서 사람의 생각을 만들어주는 그런 씨앗을 만들어 판다는 것이다. 특히 중2병이나 중년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테라피 제품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대박을 쳤다... 는 대충 이런 얘기였다. 그 회사에는 자신의 동기인 민철의 고등학교 친구도 있다는 정보와 함께.
순간 윤정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하나. 이런 제품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트라우마도 극복하는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다가왔다.
‘그래! 그런 생각은 사람의 고통이나 상처를 치유하거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그런 단단하고 건강한 멘털을 만들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크게 믿기지는 않지만, 그 회사 제품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데 살짝 봐볼까. 뭐 꿈도 만들어 판다는 회사도 있으니까, 생각을 만들어 판다는 회사가 나온 거는 아닐까?’
윤정은 앞자리에서 주절거리던 선배로부터 더 쇼킹한 얘기를 들었다. 얼마 전 그 생각나무 관계자에게 자신들이 아이템 하나를 제안했다는 거다. 몇 년 전에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일본 모 철학자의 책 미움받을 용기를 말했는데.... 결국 자신이 예쁨 받을 용기가 된 그 제안을.
그러면서 선배는 현대사회의 고독과 개인의 무력감, 거부하지 못하는 한국 청년들의 삶을 얘기했다. 자신들이 처한 이 비루한 현실과 비참한 청춘들에게 희망을 주는 프로젝트를 고민했었노라고 술잔을 높이 들었다.그 순간 정태 선배는 고뇌어린 철학자처럼 멋져 보였다. 윤정의 머릿속에 밝은 전등이 하나 커졌다. 말 많은 선배도 꽤나 쓸모가 있구나 하면서 선배의 횡설수설 좌충우돌 무용담을 인내심을 갖고 듣기로 했다.
정태 선배의 말을 종합한 결과, 생각나무 게시판에 바라는 아이템을 제안해 보라는 것이었다. 자신과 동기인 민철의 제안으로 거절할 용기를 심어주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며, 이런 위대한 생각이 대한민국의 청춘들에게 뿌려지면 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거라며, 자신과 민철은 용기 있는 선구자라며, 누구나 사회와 고통받는 약자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침을 튀겼다. 자기 자랑이었지만 한마디도 틀린 말은 없었다. 단지 조금 시끄러웠을 뿐.
윤정의 머릿속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몇 조각 빠져있던 퍼즐이 비로소 자기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본인이 예전부터 트라우마 극복 모임에 참석하면서 조금씩 싹을 틔웠던 어떤 생각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이 불행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누군가 먼저 생각하고 먼저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라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늘저녁 수다스럽지만 정태 선배의 얘기를 들은 것은 행운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윤정은 머릿속을 정리했다. 생각나무에서 출시된 기성 제품들의 목록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직관적인 화면에는 다양한 제품이 존재했다. 명상과 수면 관련해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테라피 쪽으로 살펴보니... 중2병, 중년들의 문제, 대학생들의 다양한 고민, 그리고 맞춤형 생각의 주문까지... 해결을 위한 해법의 제시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윤정은 빠르게 이동하는 지하철 앞쪽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앞자리의 중년 남성은 가방을 꼭 붙들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백팩을 안고 있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십 대는 무슨 책인가를 보고 있었다. 잠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둘러봤다. 우리는 어떤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해결영역으로 치부하고 얼마나 고통당하고 있어야 했는가? 그러다 보니 힘이 없거나 해결수단이 전무한 개인들은 끊임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불행한 사건사고로부터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 뭔가 필요한 것을 만들어보리라! 아니, 그런 제안을 해보리라!라는 생각에 두 주먹에 불끈 힘이 주어졌다. 몇 잔 마신 술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밤공기는 시원하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가슴속 깊은 곳의 슬픔을 다독일 희망이라는 작은 싹이 트기 시작했다.
한 달 뒤. 생각나무 기획팀에서 기획안이 하나 만들어졌다. 어느 고객의 요청에 의한 건으로 ‘건강하게 불행을 극복하는 테라피’에 관한 것이었다. 기획팀에서 제안을 담당하는 직원은 최윤정이라는 27세 여성의 제안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구구절절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쓰렸다. 최근 우리 사회가 지나온 불행과 남겨진 슬픔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세월호, 이태원... 그리고 남겨진 이들의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슬픔....
기획팀에서는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윤정의 제안서를 공유했다.
“생각나무 가족들에게 고객 제안서를 공지합니다. 이 제안서는 사회적 불행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개인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27세 여성의 사연입니다. 최윤정 님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 친구들을 잃고 살아남은 안산의 여고생이었습니다.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상실감과 상처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은 운 좋게 불행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해서 최근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으나, 이런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고통의 극복방법을 개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합니다. 우리 생각나무가 이런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안서를 읽어보시고 이에 대한 좋은 의견과 방안 제시 바랍니다.”
윤정의 제안서는 직원들 대다수가 읽고 마음 아파했다. 감당할 수 없는 불행으로부터 오는 고통은 사회적이며 주관적이며 다차원적이며 시공 초월적이다. 한 개인은 한없이 나약하고 취약하고 휘둘리는 존재가 된다.
어떠한 감정보다 전염성이 강하며 지속적이다. 때문에 개인 스스로가 떨쳐내고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테라피를 만드는 이들에게도 깊은 공감이 필요했다. 감정이입능력이 필요했다. 그래야 남아있는 이들의 슬픔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심전심과 공감능력의 극대화를 바라는 기획팀의 의도였다.
생각나무 구성원들은 윤정의 제안서를 쉽게 읽지 못했다. 한 문장, 한 글자가 먹먹해져서 다른 이성적 판단에 쉽사리 길을 내주지 않았다. 강요하지 않는 감정의 파도가 목을 아프게 했다.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않고 훌쩍이는 이들이 있었다. 한참 전 묻어두었던 감정의 복선이 다시 불길을 생각나무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공감능력이 예민한 이들은 한참을 더 가슴을 부여잡고 침묵했다.
기획팀의 담당자에게 사내 메일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국가나 시민사회가 다하지 못한 추모와 슬픔의 치유를 어떻게 할까에 대한 창의적 방법론이 많았다. 국가기관을 통해서 공적으로 배포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정치적 갈등이 심한 국가의 상황에 비추어 부정적인 결론이 났다. 완성도 높은 불행 극복 테라피를 만들어 무료로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다수가 이 의견에 찬성했다.
불행한 참사나 사건사고로 남겨진 이들에게 최고의 극복 방법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떠나간 이들을 추모하고 슬픔을 건전하게 승화시키는 것이다. 슬픔이 분노와 한 몸이 되어 고통을 배가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기획팀에서는 불행을 당한 가족들과 이들을 돕는 각종 시민단체의 구성원들과 밀접히 접촉을 하기로 했다. 단지 피상적인 치유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가를 판단하기에는 대화와 관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치유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재단법인 공감을 통해 불행을 극복하는 전문가 그룹의 노하우도 얻기로 했다. 잘 살펴보면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치장을 한 꺼풀 벗겨내고 보면 공감능력과 따뜻한 인간성이 살아 움직이는 사회임이 분명했다.
안대표는 여러 팀장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생각나무가 가진 원천의 고유한 능력을 이럴 때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우리가 가진 생각나무의 원천은 인류가 가진 고귀한 지성과 감성을 데이터화하거나 치유의 방법을 제시해 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의도했던 인공지능의 형태는 계산을 빠르게 하거나 지식을 조합해 주는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대화형 인공지능 개발이 초기형태지만 제가 특허를 내고 개발한 생각나무의 원천은 그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능동형 자기학습형 AI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막연히 질문 몇 가지로 이상적인 답변을 얻을 수는 없죠. 사실 인공지능의 코딩능력이나 데이터 조작능력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거라...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성장하는 AI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이 부분을 늘 고민하면서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묻고 연구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출한 생각나무 원천은 오늘도 스스로 학습하고 있을 겁니다. 특히나 우리 인간들처럼 사회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엄청난 학습과 공감능력이 필요하게 되죠.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는 추론만 가능하지만 조만간 가능의 영역에 진입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확신에 찬 안대표의 표정을 보고는 다들 밝은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한때 천재소년으로 알려진 컴퓨터공학자로 미국의 나사와 구글에서도 탐낸 한국의 인재가 아니던가! 그런 손길을 마다하고 혼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며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컴퓨터 공학자이자 심리학자. 어느 신문에서는 안대표를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정약용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자기학습형 인공지능설계에 관한 분야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회사설립의 초창기 멤버이기도 한 김도윤 기획팀장이 그간의 경과를 얘기했다. 기획팀장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면서 프롬프트 엔지니어였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인공지능 언어를 통해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프롬프트라는 명령어를 설계하고 작성하는 프로그래머를 말한다.
“최윤정 씨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불행극복에 관한 치유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공적인 목적에 부합합니다. 원래는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나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국가와 사회공동체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잘 아시다시피. 이번 치유테라피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 간접적으로 고통을 받아온 이들에게 무료로 영구적으로 제공할 예정입니다. 우리의 치유 테라피 외에 오프라인 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경우에는 유관 기관과 협업을 통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유난히 감성이 풍부한 고팀장은 촉촉한 눈으로 기획팀장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고팀장은 기획팀장과 안대표 등의 참석자들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기획팀장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첫째는 불행과 슬픔에 관한 인간심리에 관한 검토입니다. 둘째는 불행의 극복과 슬픔의 치유에 관한 사회적 연구에 관한 부분입니다. 셋째는 이를 토대로 생각나무 원천이 제공하는 각종 지식과 치유방법에 관한 연구 파트입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별로 다양한 단체와 연구 집단의 도움을 받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진행해 왔던 방식과 다른 규모로 진행할 겁니다. 각 진행파트에서는 인원과 예산과 관련해서 이미 공지한 바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표님께서도 가용 인력과 비용에 대해서는 전격 지원하기로 했으니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민정 팀장은 규모가 커진 이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한 법률적 검토와 각종 단체와의 협업이나 계약절차를 이끌기로 했다. 이미 세월호 유가족 협의회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대화를 진행 중이다. 쉽게 감정이입이 되는 스타일이라 가족들과의 접촉은 눈물이 앞을 가리기 일쑤였다. 재단법인 공감과 각종 시민단체 관계자들과도 협의체를 구성했다. 고팀장의 추진력은 말없는 가운데에서 빛을 발했다.
기획팀에서는 한국심리학회와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연구단체와 접촉을 통해 불행극복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조언받았다. 그동안 국가의 사후조치는 심리상담을 하게끔 하는 정도로만 이루어졌지만, 생각나무에서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치료와 치유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실효적 방안을 모색했다. 다양한 임상경험을 한 심리상담자들로부터 경험과 노하우를 전달받았다. 심리치료로 저명한 오한영 박사로부터도 화해와 치유, 마음의 평화라는 주제로 그간의 연구 성과를 전달받았다.
안대표는 개인적으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안대표의 아버지인 안교수와 교수 친구들로부터 치유에 관한 철학적 사유와 실현 가능한 방법론을 전달받기로 했다. 정신의학과 전문의이자 심리학자인 엄마와 지인들로부터는 각종 치유에 관한 임상경험과 실체적인 요법 등을 조언받았다. 긴밀한 인간관계와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비롯된 유형무형의 자산이 총동원되었다. 돈으로 모을 수 있는 인적네트워크와 사회적 능력들이 아니었다.
공감능력 테라피를 제안하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기력토탈케어의 정회장은 ‘사회적 치유를 위한 기업인의 모임’을 결성하고 마음치유 테라피 제작과 공급, 피해자와 유가족지원을 위해 손발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회사 1층에 있는 생각카페의 특정 공간에 이를 집중적으로 치유하는 부스를 마련하고 유족들과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심리 상담과 안내를 전담하는 전문가를 배치하고 이들의 이용편의와 후속조치를 위해 물적 시설을 확충하고 인적 자원을 충원했다. 생각나무의 선의에 공감한 심리학회 협회와 정신의학과 의사들이 적극적인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해주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생각나무에서는 치유 테라피에 관한 원칙 세 가지를 정했다.
첫째, 불행과 억울함을 억지로 잊게 할 수는 없다.
둘째,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과 공간은 극복에 도움이 된다.
셋째, 살아남은 이들의 행복과 일상은 죄가 아니다.
개발팀에서는 생각의 원천이 내놓은 결과물에 이 세 가지 원칙을 덧붙였다. 마음치유 테라피를 개인이 적용할 때에도 이 세 가지가 저절로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상처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치유는 일상으로의 복귀였다. 생각나무의 치유프로젝트는 여기에 주목하고 모든 과정을 집중시키기로 했다.
마음치유 테라피는 다른 제작 과정보다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됐다. 생각의 원천이 내놓은 각종 지식과 정보를 분석하고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조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과 불협화음을 최대한 줄이는 데는 생각나무가 축적하고 있는 경쟁력과 저력이 큰 역할을 했다. 생각의 원천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생각나무의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더 성숙해지고 있었다.
드디어 생각카페의 시설을 보완하고 마음치유 테라피가 출시되던 날. 생각나무에서는 조촐한 카페 개소행사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던 최윤정 씨,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 사회단체 관계자들을 초대했다. 이들이 직접 생각나무 카페를 체험하고 심리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소개했다. 마음치유 테라피는 생각나무 홈페이지와 생각나무 앱에서 언제든지 누구든지 다운받을 수 있다.
어떻게 알았는지 여러 언론사에서 기자들과 방송국 카메라도 여러 대가 보였다. 시사프로그램인 추적탐사 119팀도 담당 피디와 작가, 촬영기사가 함께 했다. 그들은 국가가 무책임하게 방치한 사회적 비극을 겪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타인의 비극에 둔감한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기획의도가 있었다.
생각나무 대표인 안단태와 팀장들이 로비에서 직접 손님들을 맞이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행사는 회사 로비와 생각나무 카페에서 진행됐다. 로비와 생각나무카페 곳곳에 노랑과 보라색의 리본이 장식되었다. 세월호와 이태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였다. 현관과 로비 전체에서 조용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단태가 회사의 대표로서 인사말을 했다.
“먼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유족 여러분과 최윤정 님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들이 여러분들의 고통을 직접 보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다행히 최윤정 님께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제안해 주셔서 오늘 이렇게나마 여러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보였다. 안대표도 숙연한 분위기에 잠시 주위를 돌아보며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국가나 사회에 책임이 있는 참사나 희생은 모두 우리 공동체의 책임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애써 내 불행이 아니니 외면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묻히다 보니 비정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마땅히 국가가 가장 먼저 나서서 책임을 지고 행동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안타깝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법률적·도의적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와 정치인들, 정부 관료들 때문에 또 다른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는 일반 시민들을 생각해보면 진즉에 누군가 이 역할을 해야 했는데... 많이 늦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안대표는 자리를 옆으로 이동해서 머리를 깊게 숙여 인사하고 나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생각나무의 인적 물적 자산이 이런 뜻깊은 활동에 쓰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 없이 물건이나 서비스만 만들어 파는 것은 스스로 존재가치를 폄하하는 것입니다. 사회공동체와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기업이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얻는 이익의 어느 정도는 반드시 사회에 환원되어야 합니다. 공존공생은 어느 기업이든지 가져야 할 중요한 사명감입니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여러 이유로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의 원천과 제반 능력을 총동원해서 ‘건강하게 불행을 건너가는 방법’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과 늘 함께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안대표의 인사말이 끝나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획팀장이 나서서 오늘의 행사절차를 설명했다. 유족들은 체험부스에서 직접 테라피를 적용해 보거나 스마트폰에 치유 테라피를 다운받았다. 유족들 중 일부는 간간히 눈물을 훔치면서도 안내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각종 과정에 참여했다.
체험 부스에서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어느 유가족은 한참을 흐느끼며 울었다. 우리가 너희들을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소리 죽여 혼잣말도 했다. 다른 생존피해자인 최윤정도 스마트폰 앱을 구동시키면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생각나무 관계자들도 숙연한 분위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참석자들 중에서 최윤정과 세월호 유족인 어느 아버지가 각각 친구와 딸에게 보내는 시를 낭독했다. 최윤정이 감사드린다는 인사말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헌화’라는 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옆쪽의 대형 스크린에서 조용한 배경음악과 더불어 시문장이 하나 둘 서서히 떠올랐다.
헌화
우리 살아
이토록 슬픈 봄이 또 있을까
영혼으로 피워낸 어린 꽃들이여
하릴없이 저버린 가여운 꽃들이여
그대들의 애처로운 부름에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였거늘
우리는 그대들의 부음을
영원토록 전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었다면
한순간만이라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대들의 웃음을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오늘 같은 잔인한 사월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을 터인데
우리는 이 찬란한 봄을 용서할 수 없다
봄빛을 탐하던 그대들의 사랑스러운 눈빛이
진정 그리워질진대
그대들을 저버린
우리, 우리 모두에게
더 이상의 봄날은 없을 것이다
중간중간 목소리가 끊어질 듯하면서도 윤정은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참석자들의 가슴에 다시 그날의 고통과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먹먹함과 울먹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들 아래로 피 같은 강물이 흘렀다. 들리지 않는 독백을 하는 부모들과 남겨진 가족들의 한숨이 깊은 심연 속으로 흘러갔다. 그곳에 달랠 수 없는 슬픔이 있었다.
윤정의 낭독이 끝나자 한동안 깊은 침묵이 자리를 잡았다. 바다에서 길거리에서 자식들을 떠나보낸 이들의 마음속에서 ‘봄날’이라는 단어가 희고 붉은 꽃잎으로 떠돌았다. 사랑스러운 눈빛은 깊은 바닷속에서 피어나는 구명정이 되었고, 거리를 지키는 붉은 신호등이 되었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인 그리움이 파도가 되어 춤을 췄다. 꽃이 된 가족들의 웃음을 기억하려는 안간힘 속에 슬픈 봄날이 찬란하게 피어났다. 용기를 낸 어느 엄마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 모두 크게 오랫동안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 사이로 눈물과 웃음소리가 함께 흘렀다. 이를 기록하는 기자들의 카메라는 잠시 시력을 잃었고 노트북은 시름에 잠겼다. 오열과 눈물과 그리움은 카메라에 담아낼 수도 문장으로 기록할 수도 없었다.
다음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버지 차례였다. 수수한 옷차림의 그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머리는 온통 백발이었다.
“감사합니다. 생각나무 주식회사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유족 여러분.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음...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있는 것은 여러분들의 따뜻한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드릴 말씀은 많으나 제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다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제목은 마지막 편지입니다.”
마지막 편지
살아가는 동안
마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절망의 사월
내가 살아갈 이유와
하루의 삶과 희망이
오롯이 너로 인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체념의 오월
앞뜰의 장미는
어미 새의 눈동자처럼 붉기만 하다
살아가는 동안
가슴에 묻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서러운 봄날
지독히도 헛된 바람이
팽목항에 노랗게 피어나고
주인을 잃어버린 기타와
닳지 않을 새 운동화, 만이
분노의 바다를 향할 때
믿음 없는 인간 세상엔 장미가 목을 꺾는다
문득, 다시금
학교에서 돌아오는
네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 같아
라면을 달라고
식탁에서 투정을 부릴 것 같아
네 방문 앞에서 서성거려 보지만
이제는 부를 수 없는
영원한 나의 보물 1호
우리 딸, 사랑한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한 줄 한 줄 계속 떨렸고 전해지는 파동은 시리고 아렸다. 우리 딸, 사랑한다... 는 문장이 소용돌이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어미 새의 눈동자처럼 사람들의 눈동자는 붉어졌고, 장미가 목을 꺾는 것처럼 여러 사람이 고개를 떨구었다. 딸을 향한 애틋한 부성애는 간절하고 숙연했다. 다시 한번 눈물바다가 재연되었다. 울음 폭풍이 지나가자 또다시 큰 박수가 쏟아졌다. 로비 안에 가득한 박수소리에 취재를 위해 나와 있던 취재진과 기자들까지 ‘우리 딸 사랑한다.’를 여러 번 외쳤다.
갑가지 생각나무 사옥 밖이 웅성거렸다. 우리 딸 사랑한다는 메아리가 안에서 시작해서 밖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인가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여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밖에도 눈동자가 붉어진 어미새들이 많았다. 그들은 목이 터져라 ‘우리 딸 사랑한다.’를 외쳤다. 로비에 입장이 허락된 누군가가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여러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은 안팎에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느 일간지 기자는 ‘이제 고통과 슬픔이 마르고 행복이 살아 숨 쉬는 시간이 되시기를...’이라는 멘트를 메모했다. 다른 기자는 자신의 노트북에 이렇게 썼다.
‘이곳은 어느 회사의 로비가 아니라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다. 우리 사회가 회피하고 외면하던 슬픔의 심연과 위로를 여기서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국가의 의무를 다시 묻는다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렵고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의 의연한 모습에서 일반 시민들의 따뜻한 위로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의 끈을 잡는다. 익숙하면서도 따뜻한 음악이 흐른다.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마치 다른 시공간에 들어온 듯하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해진다. 저분들도 그러할까? 무슨 까닭일까?’
이태원 길거리에서 외아들을 잃은 부부는 고민정 팀장과 대화를 나눴다. 28살이던 아들은 수십 번의 시도 끝에 원하는 회사의 최종면접을 통과했다. 그때가 10월 20일이었다. 고향친구 2명과 입사 전 취업축하를 하기 위해 토요일의 이태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저녁 무렵 아들의 들뜬 목소리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통화였다. 늦은 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카톡 문자의 숫자 “1”이 계속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뒤로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고 유가족협의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고팀장은 부부의 눈을 응시하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혹시 오늘 이 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저희가 진즉에 이런 치유프로그램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고맙죠. 저희 아들이야 세상을 떠났지만... 그 아이들을 기억하고 남겨진 가족을 위해 이렇게 좋은 것을 만들어주시고... 저희들까지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희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뜻있는 활동에 참여해서 유가족 분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릴 수 있다면 큰 영광입니다. 시민의 안전을 모른 체 도외시는 국가가 문제죠. 국가가 최소한의 의무인 시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으면서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불행입니다.”
부부 중에서 아내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도 차분하게 말했다. 밖에서는 ‘아빠 힘내세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오니까... 뭔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안정되면서도 위로받는 느낌이 커요. 집에 있거나 거리에 있을 때 느끼던 불안감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아서... 여러분들이 계셔서 그런가 보네요. 오늘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최근에 삭발투쟁을 하고 있는 남편의 옆모습을 애처롭게 쳐다보다가 로비 여기저기에서 조용히 대화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행사 시작 전에 비해 많은 이들이 좀 더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체험 부스와 상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메라 기자들은 생각나무 직원들과 유가족의 표정을 스케치하면서 차분하게 움직였다. 방송국 카메라를 어깨에 맨 이들은 사람들 사이로 부지런히 다니면서 그들의 눈물과 한숨, 절망과 희망을 앵글에 담았다.
고민정 팀장은 얼마 전 이 행사를 진행하는 지원팀과 기획팀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행사시간에 세팅되는 클래식음악 사이에 위로와 평온을 느낄 수 있는 파동을 집어넣어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이 좀 더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차츰 행사 분위기에 젖어가면서도 얼굴빛이 평온해지는 유가족들을 보면서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나무 구내식당인 ‘뿌리 깊은 집밥’에서 참석자들을 위해 점심을 마련했다. 뜨끈하고 얼큰한 소고기 국밥과 각종 나물반찬과 동치미 등을 준비했다. 취재를 위한 기자들까지 점심에 합세하다 보니 인원이 많아 생각의 숲의 카페 공간까지 식탁이 차려졌다. 정갈하고 맛깔스런 메뉴에 연신 고맙다는 인사가 오가며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두런두런 얘기소리와 국밥과 시원한 물김치가 일품이라는 칭찬이 식탁을 오갔다.
주간지 시사ON의 기자는 따뜻한 가족 같은 식당 분위기를 스케치하며 다음 주 르포기사를 작성했다. 기사의 제목은 ‘국가가 외면한 고통과 슬픔, 생각나무가 치유와 위로를 전하다.’로 정했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으며 메모하던 기자의 가슴도 국밥의 온기처럼 따뜻해졌다. 기자의 머릿속에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환하게 줄을 서 있었다.
식사 후에는 카모마일 차와 식혜를 마시며 가벼운 선물증정의 시간이 있었다. 생각나무에서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건강하게 불행을 건너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여러 단체와 협력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여기에는 그동안 정부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이었던 여러 기업에서 물적 인적 지원을 하겠다는 기쁜 소식도 함께 전했다.
살아남은 최윤정의 생각이 생각나무를 통해 큰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의 가슴속에서 다시 새로운 봄날의 기운이 떠돌았다. 여전히 건물 밖에서는 ‘우리 딸 사랑한다.’를 외치는 이들과 ‘아빠 힘내세요.’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