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일주일 뒤, 무기정밀화학에서 다시 실무진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평범한 회사원들이 아닌 컴퓨터공학자 김종인 박사와 심리학자인 최명현 박사였다. 그들의 명함에는 무기정밀 연구소 선임연구원 직함이 적혀있었다. 이들은 실무진이라기보다는 생각나무와 협동연구에 참여할 연구진으로 보였다.
최근 뉴스에서는 국방부에서 강군육성이라는 기치아래 임전무퇴의 용감한 군인 만들기 프로젝트 계획에서 실행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보도됐다. 이 프로젝트는 국방연구소에서 다년간의 연구결과를 통해 모 방위산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적어도 이 프로젝트가 심사숙고한 계획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국방부의 발표를 보면 생각나무 주식회사와의 관련성은 전혀 언급이 없었다.
생각나무와 국방부의 양자 간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드웨어에 속하는 생각의 씨앗을 생각나무에서 제공하고 무기정밀화학에서는 그 씨앗의 내용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생각나무 측에서도 이처럼 이원화된 개발 방식이 무리가 없었다. 자신들의 제품처럼 그 내용에 대한 부담이 적었기 때문이다. 무기정밀화학 측의 전문가들도 이론과 실무를 겸비해서인지 서로의 대화도 원만했다. 그들이 연구한 실적을 최대한 공개했고, 씨앗이 될 수 있는 소스코드에 대한 고민도 솔직했다.
생각나무에서 프로젝트 중간 검토가 있는 날. 회의실에서 프로젝트 참여자들과 안대표는 역시나 커피와 크래커, 초콜릿을 나눠 먹고 마셨다. 카카오 85% 초콜릿도 커피랑 먹기에 좋은 간식이었다. 딱딱한 회의가 아닌 담소를 나누는 분위기인지라 편한 얘기들이 오갔다.
“역시나 커피향이 좋은데요. 원두가 최근 로스팅 된 거라 그런지....”
“그렇죠. 커피는 원두와 로스팅, 와인은 햇빛과 토양인 떼루아, 사람도 시간과 발효에서 그 힘이 나오죠.”
“그러니까요. 사람도 사물도 그 내력이 중요하죠.”
“특히나 생각 없는 사람들이 문제죠. 단순한 삶도 좋지만, 1차원적 삶에 매몰되는...”
회의실 분위기는 커피수다에서 자연스럽게 업무 이야기로 넘어갔다. 평소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자주 던지는 고팀장이 운을 땠다.
“그런데, 국방부에서는 왜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했을까요? 이십 대 초반의 청년들의 정신상태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특별한 차이가 있을까 싶은데요. 물론 그 시절을 안 살아봐서 몇십 년 전의 상황을 알기 어렵긴 하지만요. 저도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안 했었는데... 왜 굳이 국방부가 군인정신 강화를 목적으로 우리 쪽 기술을 활용하는지 의문이 들기는 하거든요!”
“그렇긴 하네요. 우리가 사업파트너로서 ‘왜’에 대한 의문이 실례가 될까 봐 그동안 본질적인 질문을 못하고 있었네요. 국방부나 위탁업체에서 이미 충분한 질문을 하였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깐요.”
경기도 북쪽의 한 산골에 있는 부대의 정훈장교로 전역한 김도윤 기획팀장이 말을 이었다. 김팀장은 산업특례요원이라는 편안한 길을 마다하고 학사장교를 지원했다고 한다.
“실제 대부분의 군인들은 정훈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신교육을 받거나 갖가지 훈련시간을 통해서 군인정신을 기르기도 할 텐데요. 저 군대 있을 때도 당나라 군대니 오합지졸이니 이런 얘기가 많았지만... 이런 외부의 자극을 통해서 군인정신을 길러야 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안대표가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개발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 무기정밀화학에서 오신 분들은 어떠신가요? 그분들 이력이 박사님들이라서 전문성은 확실하실 테고... 우리 연구실에서 같이 일하면서 대화하다 보면 이런저런 얘기도 나눌 텐데.”
“두 분 모두 입이 굉장히 무겁습니다. 서로 회의할 때나 프로세스 관련 대화할 때를 빼놓고는 거의 침묵하는 편이라서. 무언가 조심하는 기색이 보이기도 하고요. 식사할 때도 농담 몇 마디를 건네 봤지만, 조용히 미소만 띠셔서 아직까지는 성향 파악이 잘 안 되었네요.”
호기심 많고 정보검색 능력이 탁월한 고팀장이 재차 의문을 던졌다.
“제가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니까요. 심리학 전공하신 최명현 박사가 독일에서 학위를 하신 분인데.. 그분 이력을 구글링 하다 보니 독일에 아주 유명한 심리학자 밑에서 조수역할도 하면서 학위를 받았더라고요. 특이한 게 칼 슈미트라는 교수인데... 동명이인이 결단주의적 헌법관을 가진 헌법학자로도 유명하죠. 또 다른 슈미트란 분이 고명하긴 하지만, 인종개조론과 의식개조론에 심취해 있어서 독일 학계에서도 논란이 많았던 분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신나치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도 했던 이력도 있고...”
고팀장의 의문에 귀를 쫑긋 듣고 있던 안대표가 말을 이었다.
“아! 최박사에게 그런 이력이 있었나요? 저도 심리학 쪽 공부를 해서 칼 슈미트 교수 이론을 어느 정도는 알거든요. 그분의 의식진화론이 심리학계에서는 나름 알아주기는 합니다. 그런데 의식개조론이나 인종개조론까지 그 이론이 맥이 닿아있다는 것은 저도 알아봐야겠네요. 인종개조론은 과거 히틀러 나치 일당의 주장이어서 독일에서도 금기시하는 이론이거든요....”
여러 사람이 모여 자신들의 의문과 일처리 과정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다음 해야 할 일들이 차곡차곡 정리되기 시작했다. 안대표는 기획팀장, 고팀장과 눈을 맞춘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네, 그렇다고 국가에서 추진하는 일을 섣불리 의혹을 가져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일단은 우리 쪽 일정도 살펴보시면서 오늘 얘기했던 의문도 함께 풀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협업관계에 있는 업체나 박사님이랑 애초 계획대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광고회사에서 여러 사람들과 대형 프로젝트를 많이 해온 민수경 마케팅 팀장이 말을 이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워낙에 큰 프로젝트이고 우리 회사에도 굉장히 좋은 기회라서 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표님 말씀대로 의문도 갖고 국가적 사업에도 공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우리처럼 독점적 지위에 있는 회사들은 평판 유지가 중요하거든요. 한번 얻은 명성은 오래 가지만 말도 안 되는 구설수에 휘말려 추락하는 것도 한순간이거든요.”
생각나무 내부에서는 뭔가 의문의 씨앗이 커지기 시작했다. 용감한 군인 프로젝트 자체의 모호함도 그렇고, 무기정밀화학의 은밀한 움직임도 그렇고, 국방부의 신속한 입장표명도 그렇고. 저마다 물음표 하나씩을 품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건은 뜻밖의 상황에서 터졌다. 치정에 얽힌 아침 드라마를 하던 공중파에서 긴급 속보라는 이름으로 방송이 중단됐다. TV에서는 국방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모 시민단체에서 양심선언을 한다는 내용의 자막이 계속 흘러나왔다. 정리가 안 된 화면에서는 카메라 방송기자들과 언론사 기자들 수십여 명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연단 옆에 사회자로 보이는 한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예, 저는 오늘 양심선언의 사회를 맡은 실천시민연대 간사 소현희 변호사입니다. 저희는 국가정책과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오늘과 같은 공익제보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는 최근 국방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용감한 군인 프로젝트 관련해서 국방연구소 연구원인 안종근 님이 국민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안종근 님을 소개합니다."
실내에 가득하게 큰 박수소리가 났다. 종로에 있는 한 빌딩에서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과 변호사, 시민단체의 인사들이 모여서 용감한 연구원의 공익제보를 기다렸다. 주인공은 긴장되는지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생수병의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마이크를 들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국방연구소 연구원인 안종근입니다. 음... 저도 처음에는 이런 프로젝트를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용감한 군인 만들기 프로젝트는 정확히 말씀드리면... 인간병기를 만들자는 계획입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감정을 소거하고 적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불러일으켜서 전투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계획과 더불어 국방연구소에서 또 하나의 계획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이미 진행 중인 인간 병기 만들기에 필요한 약물과 신체강화훈련 프로그램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흔히 복용하는 단백질보충제나 건강강화제가 아닌 신체능력을 세배에서 다섯 배 정도 배가시키는 엄청난 약물입니다. 이 약물의 치명적인 부작용은 감각상실입니다. 외부 자극이나 상처가 있어도 통증이나 고통이 없다 보니 두려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잠깐 물 좀 마시겠습니다..... 네,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육체강화 훈련은 현재의 특수전 부대 훈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강도의 체력강화 및 인간병기 훈련을 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일당 백 정도의 전투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계획은 평화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국방안보가 아닌 실제 전쟁을 준비하는 수준의 나쁜 음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원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쯤에 이르자, 듣고 있던 사람들은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라는 수없는 혼잣말이 메아리처럼 들렸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뱉어낸 놀라움과 탄식이 한꺼번에 돌출되었기 때문이다. 실내는 기자들의 질문소리와 데스크와 통화하는 소리, 서로 당황해하는 모습 때문에 더없이 소란스러웠다. 사회를 보는 소변호사가 조용히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잠시 소란에 물을 한 모금 마신 연구원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물론 처음에 국방부의 계획은 강군육성을 위한 방어능력 계획이었습니다. 저희 연구소 쪽에서도 정권이 바뀌고 나서 1년 전부터 그 사업 쪽에 중점을 두고 인력과 예산을 집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방어능력 강화사업이 인간병기 프로젝트로 180도 바뀌어버린 겁니다. 제가 전해 듣기에는 대통령실과 국방부 간에 특별한 교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국방부에서 저희 연구소는 기본 계획과 무기체계에 대한 분야를 맡고, 방위산업체에서는 소프트웨어 쪽을 맡는 것으로 정리를 했었습니다. 특히 국방부는 무기정밀화학에 이 부분을 위탁하고 실제 실행계획과 예산집행 모두를 그쪽에 일임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쪽에서 아주 유명한 인공지능 업체에 의뢰해서 비밀리에 인간병기를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를 이미 준비 중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 연구에서 크고 작은 반발이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이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이런 일까지! 다시 탄식이 합창이 되었다. 용감한 군인 만들기 프로젝트의 숨겨진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기자들은 그 기업체가 어딘가를 서로 묻고 궁금해했다. 국방부에서는 사전에 강군육성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이런 무모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각종 뉴스에 알려진 바로는 연구원의 폭탄선언을 예측할 수 있는 어떤 기미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연구원의 폭탄선언이 터지자 국방부에서는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해당 연구원을 국가보안법 및 공무상비밀유지의무 위반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여러 시민단체와 민변에서는 용감한 연구원을 공익제보자 신분으로 신변을 보호하기로 결정했다. 고소를 받은 서울중앙지검은 신속하게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일반 사건과 달리 일련의 절차가 번개처럼 진행되었고, 그 경과는 실시간으로 뉴스 속보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판사는 다섯 시간여 검토 끝에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 기각 사유는 ‘압수수색 필요성이 없음’이었다. 무슨 일인지 검찰 측에서는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와 영장담당 판사의 정치성향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심지어 그 판사가 대학교 때 대학신문에 썼던 글까지 공개했다. 특정한 정치성향을 가지고 국가안보에 관련된 위기 상황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뉴스에는 댓글과 대댓글로 정치적 코드와 원색적 비난이 어지럽게 얽혔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냉전시대에서도 있을법한 생각을 하느냐’부터 ‘전쟁 시에 그런 용감한 군인들이 나라를 구할 것’이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견해들이 꽃을 피웠다. 극우 유투버의 채널에서는 간첩들에 의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광기 어린 독설이 오갔다. 다른 채널에서는 극우세력이 전쟁을 부르고 나라를 망친다는 열띤 토론이 있었다.
세계적인 인권단체에서는 인간병기는 실험은 물론 의도조차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언문까지 채택했다. 세계 유수의 언론에서는 한국 국방부의 파격적인 계획에 대해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기사 말미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도하다 인권시비 때문에 중단되었던 프로젝트가 위기의 한반도에서 다시 재개될 뻔했다는 코멘트를 붙였다.
사태는 워낙에 전방위적으로 퍼져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이 소식을 들은 안대표는 즉시 긴급회의를 통해 이 프로젝트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계약파기까지 고려하기로 했다. 변호사인 고팀장은 안대표와 대화를 통해 무기정밀화학과의 계약 건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튿날부터 무기정밀화학에서 파견된 박사 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기획팀에서 무기정밀화학의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그쪽 모두 연락두절 상태였다. 갑자기 신기루처럼 증발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뒤숭숭한 다음날 오전. 검정색 정장과 선글라스를 낀 건강한 남자 여러 명이 생각나무에 들이닥쳐 파견된 박사들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갔다. 박사들과 협업을 했던 직원들의 PC 하드웨어까지 리셋시켰다. 깜짝 놀란 직원들은 무슨 영문인지를 궁금해했으나, 그들은 국가안보라는 짧은 한마디만 해주고 떠나버렸다. 이게 무슨 영화 같은 상황인가!
생각나무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다양한 셈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해당 프로젝트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는 없다는 입장, 어차피 알려질 수밖에 없다면 먼저 선수를 치자는 의견, 아직은 계약단계라 우리도 선의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는 견해 등이 오갔다.
고민정 팀장은 답답한 마음에 개발팀의 사무실로 배지형 팀장을 찾아갔다. 개발팀은 진행 중인 개발과정이 중단된 터라 심란한 표정이 떠돌고 있었다. 고팀장은 배팀장의 자리에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팀장님, 혹시 지금까지 그 용감한 군인 계획이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나요?”
“아, 우리가 소스코드에 국방부의 이미지를 탑재하려는 과정까지 이르렀죠. 아직 제품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어중간하죠.... 그런데 그것마저도 검정 선글라스들이 몽땅 가져가서.”
고팀장은 오마이 갓 하며 두 손을 올리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시 배팀장과 빙 둘러선 팀원들에게 얘기했다. 고민정의 눈이 예사롭지 않게 반짝였다.
“그러면 그 정도 상태에서 실험적으로 이미지 테스팅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국방부나 무기정밀화학 쪽의 의도를 너무 모르고 있어서... 결과치를 판단해 보면 공익제보자의 의견을 검증해 볼 수도 있잖아요. 지금 상황으로 보면 증거가 없어서 제보가 허위나 모함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거든요. 사람들의 증언만으로는 그쪽 사람들을 깨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죠. 우리 쪽에서 그 결과치를 대략이라도 알게 되면 큰 반전을 가져올 수도 있잖아요. 요것 봐라. 너희들이 벌인 끔찍한 일의 흔적을...”
배팀장은 고팀장의 얘기를 듣더니 벌떡 일어나서 한발 앞으로 다가왔다. 자신은 온통 개발에 신경쓰느라 이런 부분에 아무런 생각이 없던터였다.
“음..... 아! 그게 그렇게 연결될 수도 있겠네요. 우리 고팀장님이 법조인이라서 그 분야에서만 해박하실 줄 알았더니만, 이런 모호한 상황에서 감각이 예리하신데요.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국방부나 그 관련자들은 딱 잡아떼겠죠. 모조리 삭제하고 숨겨버리고, 우리 말고 추가로 다른 증언이 없다면... 결국 사건은 유야무야 흐지부지하다가 잊히는 쪽으로 진행되겠죠. 계약은 취소하거나 철회하면 끝날 테고요. 늘 그런식이잖아요. 그런데 어쩌죠. 우리한테도 아무것도 남은게 없어서...”
옆에서 얘기를 듣던 개발팀 박형철 연구원이 두 팀장에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박형철은 선임 연구원으로 인공지능개발에 상당히 실력 있는 박사급 직원이었다. 동시에 명령제공자인 자연과학과 응용과학 파트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역할까지 겸하고 있었다.
“팀장님, 어쩌죠. 제가 사고 하나를 처버렸네요. 원래는 정밀화학 박사 두 분이 관리하는 자료에는 접근해서는 안 되지만... 일주일 전에 한분한테 받은 시험자료를 돌려주지 않고 개인 파일에 저장해 놓은 게 있거든요. 그때 미리 계획을 땡겨볼까 하고 우리 소스에 한번 살짝 실어본 건데....혹시 그거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다행히 그 파일은 선글라스 맨들이 젼혀 손대지 못한 제 개인 노트북에 있거든요. 헤헤헤.”
박형철은 뜻밖의 상황을 말하고는 두손은 들었다. 고팀장과 배팀장은 뜻밖의 상황에 서로 마주 보며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다. 개발팀에서는 개인당 업무용 PC 2~3 대에 개인 노트북까지 여러대 사용하고 있었다.
선글라스맨들이 그것까지 생각해서 자료를 삭제할 수는 없었다. 시간도 촉박했고, 박사 두사람의 연구상황을 신뢰했을 터였다. 뭔가 진척이 있는 듯한 팀장들의 표정에 박형철은 한마디를 더했다.
“제가 소스코드에 탑재한 이미지를 재생해보지는 않았지만....음, 지금까지는 관심이 없었지만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하는데요. 한번 같이 재생 결과물을 봐볼까요? 저쪽 개발팀의 이미지 재생실로 가시죠?”
배팀장은 박형철의 어깨를 붙잡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두 팀장과 개발팀 대여섯 명이 이미지 재생실로 향했다. 이미지 재생실은 개발팀에서 개발한 제품의 결과를 살펴보기 위해 AI가 만든 가상인간의 뇌를 자극하고 그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 데이터를 추출하는 장소로 오직 생각나무만 가진 가상정보화 실험실이다. 최첨단 기기로 구축된 이곳은 생각의 원천 시스템과 더불어 생각나무의 핵심 전력이었다. 재생 결과 데이터는 필요에 따라 영상과 기록으로 뽑아낼 수 있었다. 박형철 연구원은 몇 가지 시스템 조작을 통해 용감한 군인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로 보이는 데이터를 화면에 띄웠다.
“사실 이것은 아직 파일럿 시제품에 불과해서 100% 정확한 데이터는 아니라는 걸 말씀드립니다. 먼저 화면에 보이는 것들이 이용자들의 머릿속에서 이미지화되는 영상과 주입문구들입니다. 미디어 툴을 통해 재생되는 저 영상과 문장들을 보면 국방부 쪽에서 상당히 공을 들인 흔적이 보입니다. 이게 하루아침에 만들 수는 없어서... 다음 화면을 보시면 가상 이용자들이 이미지를 통해 자극받은 결과에 대해 예측 프로그램이 내놓은 결과입니다.... 음... 가상인간 A의 데이터를 보시면, 이게 그러니까...”
박연구원이 화면을 바꾸면서 동작을 멈췄다. 서서히 떠오른 내용을 보면서 다들 입을 다물었다. 지켜보는 눈동자들이 한꺼번에 커졌다. 갑작스레 다가온 침묵이 재생실 안에 꽤나 오랫동안 머물렀다. 고팀장은 자기도 모르게 팔짱을 풀고 두 손을 꼭 잡았다. 배팀장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몇 사람 사이에서깊은 한숨이 돌았다. 휴우... 화면에 무슨 내용이 떠올랐길래.
고팀장은 배팀장과 함께 급히 안대표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동안에 박연구원은 안대표의 사무실로 재생결과 데이터를 보냈다. 최팀장과 인원충원 관련 협의를 하던 안대표는 갑자기 들이닥친 두 사람 때문에 깜짝 놀랐다. 고팀장은 급하게 안대표에게 개발팀에서 보낸 데이터를 확인하라고 요청했다. 안대표는 생각나무망을 열어 박형철이 올린 데이터를 벽에 걸린 대형 PC에 띄웠다.
가상인간 A의 활성화 데이터 : A의 머릿속에서 이미지화된 데이터는 인간으로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보통의 인간보다 3~5배 정도 강한 체력의 군인을 만들어내는 자극입니다. 여기에 적절한 약물 주입과 체력강화 훈련을 통한다면 군사형 로봇에 버금가는 인간병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극이 일정시간 일정 강도 이상 주입되면 자극받은 인간의 뇌는 극히 단순화되어 명령에 충실한 군인의 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자극을 통한 교육훈련은 도덕적 판단력과 인간의 감수성을 최소화시켜 윤리적 갈등을 겪지 않습니다. 이와 유사한 감정훈련은 이미 세계 2차 대전에서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에서도 시험적으로 실행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 데이터는 자폭전술로 유명한 가미카제의 전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된 인간병기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계 각국의 특수전 부대에서도 인간성 말살이라는 이유로 금지된 군사훈련 프로그램입니다.
이미지 재생실에서 보내온 용감한 군인 프로젝트의 결과를 보고는 안대표 또한 침묵했다. 조용히 전화를 들어 박연구원과 기획팀장까지 불러들였다. 뜻하지 않게 생각나무의 팀장급 긴급회의가 열렸다. 평온한 표정의 안대표는 건조하게 말문을 열었다.
“이런! 재생 데이터가 생각보다 심각하네요.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어 용감한 군인 만들기라고 포장했을까요? 참... 인간병기 프로젝트를 국방부에서 추진한다는 것은 너무 끔찍하지 않나요.... 개발팀장님, 혹시 정밀무기화학이나 국방부 쪽에서 우리에게 이런 자료나 데이터가 있는 줄 알까요?”
“음, 어떻게 말씀드리는 게 좋을까요. 그쪽 박사 한분이 시험용으로 건넨 자료라서 그분이 얘기하면 당연히 알 것 같고요. 깜박했거나 그러면 모를 수도 있습니다. 워낙에 선글라스맨들이 털고 가서, 우리 박형철 연구원도 자기한테 있다는 것조차 까먹고 있다가... 우리가 대화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그 자료의 존재를 안거죠. 그래서 이 데이터가 나온 거구요.”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고민정 팀장이 끼어들었다.
“만약에 박연구원님한테 그러게 있다는 걸 그쪽에서 알았다면... 어제 그 건장하고 비밀스런 선글라스맨들이 다 뒤지고 갔겠죠. 제가 볼 때는 아직 국방부나 무기정밀화학에서는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박연구원이 개발팀장을 바라보며 뭔가 생각나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실험실에서 자기 자료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거든요. 특히나 여기 오신 박사분들 이력을 보면 그분들이 그런 걸 까먹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요. 오히려 우리한테 무언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억지로 남겨놓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처음 계약방식으로는 이 자료를 저한테 넘겨줄 필요가 없었거든요. 같이 작업하든가 아니면 우리를 지켜보다가 수거하든가 했을 거 같거든요. 특히나 이 정도 중차대한 결론이 나올 자료라면요...”
박형철의 논리적인 발언에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안대표도 가만히 화면을 응시하더니 박연구원의 말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잠시 안경을 벗고 고민하더니 고팀장에게 물었다.
“고팀장님, 지금 상황에서 처음에 했던 쌍방의 계약은 어떻게 되나요? 우리가 일방적으로 계약사항 위반을 이유로 취소하거나 해지할 수 있나요?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네, 일단 법적으로 보면 우리 쪽에서는 얼마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계약하면서 특약으로 넣었던 조항들이 있어서... 그쪽에서는 할 말이 없을 거거든요. 거기에다가 이런 제품개발이나 조달 계약은 위약금 조항이 있어서 그 부분까지 살펴보면 우리가 손해 볼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그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펴본 다음에 우리의 행동을 정해도 늦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이 사안이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소란을 일으키고 있어서... 아마도 그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철저한 비밀유지를 조건으로요. 그럼 우리는 해지의 불편함도 없고, 위약금도 쉽게 받아낼 수 있어서 일거양득입니다.”
고팀장의 명료한 분석과 혜안에 안대표나 여러 팀장들은 좀 더 여유로운 표정으로 변해갔다. 기획팀장이 날카로운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런데 국방부나 정밀무기화학에서도 생각나무가 어떤 식으로든지 결과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터인데... 이런 식으로 계약을 진행하고 언론플레이까지 했다는 게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획팀장의 얘기를 듣고는 모두 또다시 고민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국방부나 군수업체 사람들이 그 정도까지 엉성하지는 않을 텐데.... 하는 표정들이었다. 고팀장이 좌우 눈치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음... 혹시나 하는 제 가설인데요. 처음 이 프로젝트 소개를 지금 여당 쪽 핵심인사가 우리를 극찬을 해서 시작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좌충우돌 VIP의 성급한 오더가 있었고, 문제는 그걸 빨리 실행할만한 업체를 찾기가 어렵다는 건데. 그 순간에 우연히 우리 생각나무가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거겠죠. 우리 생각나무의 능력을 아는 누군가의 소개로요.”
고팀장은 목이 마른 듯 자신의 생각에 쫓기면서도 얼른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게 사전에 충분히 계획된 프로젝트가 아니고... 힘있는 말 한마디에 아마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이 되었을 거 같아요. 당연히 무슨 사전 검증이나 위험성 그런 거를 심사숙고할 여지도 없었겠죠. 국방부는 자기들 플랜 짜느라 바쁘고 무기정밀화학은 박사들 동원해서 무식한 군인 만들 프로젝트 짜느라 바쁘고... 그러다 보니 생각나무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냥 돈만 주면 일을 잘 해내는 그런 기업 정도로 알지 않았을까요? 잘못되면 쉽게 억누를 수 있는 기업 정도로 생각했을 수도 있구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전례가 많이 있잖아요. 권력이 기업을 쉽게 생각하는... 그런 까닭에 서로 치밀하지 못하다 보니 결국 허점과 구멍이 많은 프로젝트가 됐고, 결국 국방연구소에서 플랜을 짜던 안연구원인가 하는 그분이 양심고백을 해버린 거죠. 그래서 우왕좌왕하다가 지금 이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까요... 하하하”
고팀장의 분석은 급조한 논리였지만 뭔가 명쾌하고 합리적인 구석 또한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지켜보던 최지민 지원팀장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고팀장님 얘기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데요. 사실 언론의 기사들을 보면 여러 가지 국정사안이 충동적인 데가 많잖아요. 아마추어들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오늘 한다고 했다가 내일 취소하고, 오늘 동의했다가 내일 욕하고 끌어내리는 사안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국가기관에서 이런 상황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숙고할 일들을 빨리 하려다 보니 안이한 판단이 눈을 가리게 된 거죠. 말도 탈도 많은 지금처럼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리려다 말았는데, 그 박사 한분이 남겨놓은 자료도 알고 보면 마지막 양심의 흔적이 아닐까 싶네요.”
최팀장의 ‘양심의 흔적’이란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분명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 어딘 가에도 최소한의 양심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데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대화의 진행방향이 고팀장의 의견대로 정리되자, 안대표가 차분해진 말투로 긴급회의를 마무리했다.
“여러분들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가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좀 더 지켜보면 우리의 추론이 맞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무기정밀화학하고의 계약이나 국방부의 대처는 며칠 내에 결론이 나오겠죠. 해외 언론에서조차 관심을 갖고 있어서 정부에서도 꼬리 자르기가 쉽지 않을 거 같거든요. 아무튼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볼까요. 하하하.”
며칠 뒤. 거짓말처럼 무기정밀화학의 전무와 변호사가 생각나무로 찾아왔다. 계약해지 건을 논의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안대표와 지원팀장, 고팀장의 법무팀이 회의실에서 이들을 마주 했다. 고팀장은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위약금은 어떻게 하시게요?’를 물었다. 그쪽에서도 이 상황을 이미 준비한 듯 그쪽 변호사가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이번 계약은 저희 쪽에서 계약사항을 위반해서 해지당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생각나무 여러분들께 계약해지에 대한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위약금에 대해서는 계약사항 위반과 더불어 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하다 좌초된 것까지 감안해서 충분히 사례하기로 했습니다. 애당초 계약이행 약정금액의 30% 정도를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변호사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전무가 고개를 숙이며 신중하게 당부했다.
“다만, 저희가 생각나무 주식회사에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것은 지금까지 우리 회사랑 있었던 계약 자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조건을 꼭 지켜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국가안보와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랑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지켜보는 눈들이 많아 꼭 비밀유지를 부탁드립니다.”
고민정 팀장은 안대표에게 슬쩍 윙크를 보내며, 전무에게 넌지시 한마디를 던졌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전무님, 저희 쪽에서도 부탁하나 드릴까 한데요. 혹시라도 국방부나 외부기관에서 이 사안과 관련해서 우리 쪽에 어떠한 관심도 갖지 말아주셔야 합니다.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엉뚱하게 검찰이나 수사기관, 언론에서 우리 회사에 엉뚱한 질문이 오지 않도록 전무님께서 각별히 신경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충분히 해주실 수 있으시죠. 하하하”
산전수전 다 겪은 표정의 전무는 노련한 고팀장 부탁에 의미 있는 미소를 보였다. 양쪽은 몇 가지 사항을 더 얘기 나누고는 악수를 끝으로 헤어졌다.
그날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는 큰 소동이 있었다. 야당은 인간병기라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인권침해사태와 전쟁준비를 통한 민주주의 위기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여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으나 몸싸움이 일어날 정도로 격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친정부파 의원들과 당사수파 의원들 간에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며 취재차 참석했던 기자들이 모두 내쫓김을 당했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이 상황을 보도한 기자는 보수의 핵분열이 눈앞에 도래했다는 논지의 기사를 전했다.
용감한 군인 프로젝트가 무산되는 것으로 대충 마무리되자, 안대표는 긴장이 풀렸다. 생각나무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누구랑 이 해방감을 같이 누릴까? 생각하다가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에게 윙크를 날린 사람. 어디로 가볼까. 시원한 생맥주 아니면 분위기 있는 칵테일 바, 또 아니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상상의 나래는 이미 술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민정 팀장의 미소를 떠올리며 전화기를 들었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