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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Feb 20. 2018

초벌번역에 대한 짧은 추억

2015년 다니던 회사에서 월급이 삭감되고 그마저도 몇 개월 밀리게 되었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을 하면서 다른 회사로 이직준비를 하면서 투잡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찾아보게 되었다. 그때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이메일을 확인하던 중 눈에 띄는 메일이 있었다. 지금 보면 스팸메일로 바로 넣었을텐데 그날따라 그 메일이 나에게 중요하게 느껴진 것 같다.

    

“초벌번역가를 구합니다!”   

 

예전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잘은 못하지만 번역하고 영작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 상황이 돈은 벌어야 해서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되지 못했다. 무작정 메일에 나와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했다. 담당자와 통화하면서 초벌번역이 무엇이고 자격이 어떻게 되는지 듣게 되었다. 담당자는 일단 테스트를 받고 결과에 따라 개인의 번역료가 결정되고, 일단 교육비 68만원을 내면 관리를 해준다고 했다. 지금 한푼이 급한데 68만원은 왜 내냐고 했더니 그 돈으로 번역가들을 관리하는 데 쓰는 돈이라고 해서 미리 내는 거라고 한다.     

나는 차라리 그 돈 안내고 내가 번역한 글에서 장당 얼마씩 떼가고 나머지를 달라고 했더니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다. 일단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조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회사홍보는 무수히 하는데 먼저 돈부터 내라고 하니 다단계 수법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구글등 검색엔진으로 초벌번역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초벌번역으로 월 수입 300을 벌었다는 후기도 있고, 이건 정말 사기다라는 글도 보였다. 몇 개를 찾아서 읽다가 68만원을 사기당했어요라는 글을 보고 이런 식으로 번역가가 되고 싶다거나 투잡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사람의 꿈을 날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어떻게라도 생활비라도 보탬이 될까해서 시작해볼까 했는데, 아마 더 간절하고 급했으면 68만원을 내고 시작했을지 모르겠다.    

 

지난주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초벌번역가 모집 메일을 보았다. 업체 이름이 달라서 한번 소개된 연락처로 전화를 해 보았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익숙하다. 그때 받았던 그 담당자 목소리다. 이름이 같은 게 기억이 났다.     


“아직도 68만원 내야 하나요?”

먼저 물어봤더니 움찔한다. 그래도 대답은 한다.    

“70만원입니다...”

“2만원 올랐네요. 돈이 없어서 이번에도 못할 거 같네요..”

“왜 전화하셨어요?”

“그냥요..오늘도 사기치지 마세요!”   

 

초벌번역! 당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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