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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한 그릇

(feat. 인생의 즐거움이란?)

by 황상열

몇 달 전 주말 아침이다. 일찍 눈이 떠졌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배가 고팠다. 전날 밤 늦게까지 회사와 다른 일정으로 저녁을 조금 먹은 결과였다. 가족들이 지방에 내려가서 혼자 있게 되었다. 스스로 뭐라도 해 먹거나 사먹어야 할 판이다. 요알못(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인 내가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라면 끓이기다. 선반을 열었다. 몇 가지 라면이 보인다.


신라면과 진라면이 보인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이다. 그 옆에 이마트 자체 라면도 있다. 짜파게티도 보인다. 너구리가 없어서 짜파구리는 시도를 못할 듯 하다. 빠르게 내 눈은 라면을 스캔하고 있다. 한 라면에 멈추었다. 오늘의 선택은 바로 진라면이다.


라면 봉지를 뜯는다. 분말스프와 건더기 스프, 면을 분리한다. 면은 한 번에 넣기 애매해서 반으로 자른다. 냄비에 물을 붓는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냄비를 올린다. 물이 끓을때까지 기다린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건더기 스프와 면을 넣는다. 바로 분말스프를 같이 섞는다. 젓가락으로 잘 저어준다.


가스불을 줄여 몇 분 더 끓인다. 덜 익은 꼬들꼬들한 면을 좋아한다. 딱 적당하다고 판단되면 불을 끄고 식탁으로 냄비를 옮긴다. 김치를 꺼낸다. 젓가락으로 적당하게 면을 잡아 내 입으로 넣는다. 맛이 끝내준다. 와! 혼자 감탄사를 내뱉는다.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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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는 지인이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냐는 인사와 함께 요새 인생의 즐거움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갑자기 물어보니 떠오르지 않았다. 여전히 회사일과 개인적인 활동 등으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언제 즐거웠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지인이 나에게 글을 쓸 때가 그래도 즐겁지 않냐고 다시 묻는다. 글을 쓰는 순간이 즐겁지만, 힘들기도 하다고 하니 같이 웃는다.


거꾸로 지인에게 내가 물었다. 언제 즐겁냐고. 크게 웃으면서 그는 지금 나와 이야기하는 것도 즐겁고, 인생의 매 순간을 즐기면서 지낸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위에 라면을 먹을 때의 그 느낌이 떠올랐다. 인생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큰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라고 한다면 뭔가 타이틀을 붙이고 거창하게 하는 이벤트를 많이 생각할지 모른다. 근데 사실 더 많이 웃고 즐거운 순간을 찾아보면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누웠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수다떨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예능 프로그램을 생각없이 보면서 미친 듯이 웃을 때 등이다. 모두 소소한 일상에서 찾는 즐거움이다.


라면 한 그릇에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했다. 배가 부르니 졸립다. 다시 누웠다. 눈을 감는 순간도 즐겁고 행복했다. 다들 힘들고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잠깐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길 바란다. 오늘도 라면 한 사발 먹어볼까?

감사하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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