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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Jun 06. 2018

[에세이] 나는 포졸 3이었다.

대학 시절에 참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군대 제대 후 캐드를 배우는 학원에서 만난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어느날 그가 일당이 좋은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는데 귀가 솔깃했다. 하루에 잘만 하면 10~12만원까지 벌 수 있다고 했다. 막노동 일당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확신이 들어서 무슨 아르바이트냐고 물어보았다.     


“드라마 단역 아르바이트야. 가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하네.”

“너 해 봤어?”

“아니! 그래도 돈 많이 준다고 하니 해보고 싶네.”    


그 당시에 돈을 제일 많이 주는 아르바이트가 소문으로 듣기에 죽은 사람 몸을 닦는 일이라고 했다. 제 정신에는 할 수가 없어 가기 전에 소주 한병은 먹고 가야 한다는 전설로만 들었던 일인데, 겁이 많은 나는 도저히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드라마 단역 아르바이트는 재미있을 거 같아서 친구의 말에 흔쾌히 허락하고 당장 신청했다. 며칠 뒤 드라마를 진행하는 진행 부장에게 갔더니 당장 들어가는 사극에 엑스트라로 출연할 것이고 조금 힘들텐데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뭐 젊어서 사서 고생도 하는데, 돈 주면서 고생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인 것 같아서 무조건 한다고 했다.     


일주일 뒤 진행부장이 말한 방송국 앞에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 친구와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지만 기대에 들떠서 잠도 오지 않았다. 몇 시간을 달려서 어느 지방 사극 촬영장 앞에 도착하였다. 민속촌처럼 똑같이 생긴 세트 앞에 내렸다. 그때가 늦은 가을이라 날씨가 많이 추웠다. 잠깐 대기하고 있는데 진행요원이 와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우리 말고도 50명 정도가 되는 많은 인원이었다. 진행요원은 10명에서 20명씩 무리를 나누어 배역을 나눌테니 줄을 서라고 했다. 나와 친구도 중간쯤 줄을 서서 어떤 배역이 올지 기다렸다. 다른 진행요원이 오더니 나와 친구가 있는 무리를 다른 세트로 끌고 갔다.     


“여러분은 이제 포졸입니다. 지금 나누어 주는 옷을 입고 다시 여기 앞으로 모이세요!”    


와...포졸! 얼른 포졸옷을 갈아입고, 짚신을 신었다. 그런데 날씨가 추운데 옷이 너무 얇고 짚신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곧 촬영을 하는걸로 생각했는데, 배우가 늦게 와서 3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냥 무슨 기와집 세트 밖에서 앉아 기다리는데 파카를 입고 있어도 하의가 너무 얇고, 짚신으로 바람이 들어와 얼어 죽는 줄 알았다. 그렇게 주연배우가 도착하여 촬영에 들어갔다. 주연배우가 사또였다. 그가 뛰면 뒤에서 같이 뛰는 것이 첫 촬영이었다. 1시간을 계속 뛰고 또 뛰었다. 발이 시렵고 얼어 붙는데 계속 뛰라고 해서 뛰었다.    

나는 이게 마지막 촬영이라고 생각했다. 3시간 기다리고 1시간 뛰고 12만원 벌었으면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촬영이 3개나 더 있다고 했다. 3개를 연달아 찍으면 금방 끝나겠지 했다. 그러나 진행요원이 와서 남은 촬영은 낮에 찍는 씬, 밤에 찍고 또 새벽에 찍는 씬이라고 설명했다.     


‘뭐라고!’    


와서 밥은 한번도 주지 않았는데, 벌써 시간은 오후 2시를 넘어갔다. 모두 허기져서 밥은 주냐고 했더니 안 그래도 지금 도시락을 가지고 온다고 했다. 와! 모두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배식 받은 도시락은 얼음이었다. 날씨가 추워서 아침에 가져왔던 음식이 다 식다 못해 영하 날씨에 얼어버렸다. 그래도 배가 고프니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먹었다. 눈물이 나왔다.     


낮에 찍는 씬은 사또가 목이 마르니 물을 가져다주는 씬이었다. 물을 가져다주는 포졸로 내가 낙점되었다. 주연배우가 물을 가져오라고 하고 나는 다행히 한번에 물을 잘 가져다줘서 엔지없이 촬영을 마쳤다. 진행요원이 포졸3번 잘했다고 칭찬해주는데 우쭐했다.     


그리고 4시간을 다시 밖에서 대기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발이 거의 동상에 걸릴 것 같았다. 친구는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먼저 자기가 소리쳤다.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런 걸 하려고 했는지.. 에이!”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고생이지만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서 괜찮다고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그러나 사실 너무 춥고 배고파서 속으로는 친구를 조금 원망했다. 그렇게 4시간을 기다리고 밤과 새벽에 다시 사또가 뛰어가면 뒤를 따라가는 씬을 찍고 마무리했다. 식사는 오후에 먹은 얼음 도시락과 밤늦게 먹은 분식이 다였다. 그렇게 23시간을 꼬박 채우고 촬영이 끝났다. 옷을 갈아입고 난 뒤 진행요원이 봉투를 하나씩 나눠준다.     


대기시간에 잠깐 잠을 잤지만 거의 하루를 꼬박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촬영하고 받은 댓가가 12만원이었다. 그래도 몸은 힘들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 엑스트라 아르바이트였다. 드라마 제목은 밝히지 않지만, 그 시기에 참 인기있는 드라마였다. 나중에 방송에는 편집으로 내가 물을 가져다 주는 씬은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다. 지금 다시 시간이 난다면 엑스트라로 한번 다른 시대극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하게 된다면 춥지 않은 날에 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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