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상열 May 04. 2023

물건과 사람을 사지 말고 인생을 사자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이 없는 날을 일찍 집에 귀가했다. 집에 오면 아무도 없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닌 시절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여동생과는 현실 남매처럼 데면데면했던 터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마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화를 즐겨봤다. 비디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비디오 가게에 가서 어머니가 준 용돈 한도 내에서 잔뜩 보고 싶은 영화를 빌려왔다.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에 빙의되어 그들의 삶을 같이 공유했다. 아마도 처음으로 느낀 사춘기 시절의 외로움을 영화로 채웠다. 1시간 30분 ~ 2시간 남짓 하는 러닝 타임동안 빠져들 때는 행복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갑자기 우울해졌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웠다. 쓸쓸한 게 정말 싫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매일 사람을 찾아다녔다. 선천적으로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다. 처음 보는 누구와도 쉽게 친해진다. 술 한잔 오가면서 즐겁게 이야기하다 보면 이미 오랜 우정을 나눈 사람들 같다. 취하고 나서 끝이 좋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 친해지더라도 오래 유지를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특유의 설레임과 자극이 좋았다. 예전보단 덜하지만 지금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그 자극을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면 저녁마다 약속을 잡았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의 연락처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시간이 되냐고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냈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오케이 하는 순간 퇴근 후 술파티는 시작되었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사람과 술을 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만큼은 행복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늘 즐거웠다. 뭔가 위로와 치유가 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꼭 그 술자리가 끝나서 나서 마무리가 좋지 않다 보니 더 허무함을 느꼈다.      


즐겁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스트레스도 풀었으면 그만인데, 항상 정도가 지나쳤다. 술도 잘 마시지 못하면서 과음했다.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취해서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당연히 관계도 많이 끊어졌다. 외로움과 공허함을 잊기 위해 만났던 술자리가 오히려 나에겐 더 큰 우울증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런 술자리에 참으로 돈을 많이 썼다. 다른 물건에는 욕심이 없었지만 시계 만큼은 또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비싼 것을 하나씩 구입했다. 집에 가면 고장난 시계가 꽤 있는데, 그것만 팔아도 아마 족히 몇 십만원은 될 듯 하다. 단지 힘들고 괴로운 인생을 잊기 위해 물건과 사람을 샀다. 근본적인 마음 치유는 하지 않은 채 자꾸 쓸데없는 것으로 채워서 잠깐이나마 도망갈 궁리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인생이 더 피폐해졌다. 잠깐 사람들과 만나고 물건을 살 때만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 또 허무하고 외로웠다. 마흔 즈음에 독서와 글쓰기를 만났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조금씩 나의 내면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진짜 인생에 대해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과 물건보다 내 인생을 사고 있다. 인생에 투자하니까 돈도 시간도 아깝지 않다. 앞으로 더 내 인생에 가까이 있는 것들에 더 투자하고 싶다. 가족, 많지 않지만 소중한 지인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독서와 글쓰기, 걷기, 사색 등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눈에 보이는 물건과 사람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에 투자하여 내면을 채워보자. 그것이 남은 인생을 더 값지게 사는 길이 아닐까 한다.      

#물건 #소유 #공유  #감사 #독서 #글쓰기 #글쓰기 #자이언트라이팅코치 #닥치고글쓰기 #돈 #인생 #현실 #삶 #라이팅 #인문학 #마흔의인문학 #마흔이처음이라 #자기계발 #에세이 #단상 #황상열 #황상열작가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인 중독을 아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