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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Jul 10. 2023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2008~2009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전에 다니던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도시계획부 대리로 근무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어 회식을 하기로 했다. 각 관련 분야 부서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다.      


어떤 직업이든 분야를 막론하고 일을 하는 과정은 괴로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가 어떤 형태로든 끝나면 시원섭섭하거나 후련한 마음이 든다. 이번 프로젝트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잘 마무리되어 기분이 좋았다. 회식 메뉴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돼지고기 삽겹살로 정해졌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삼삼 오오 각 부서 임직원이 모였다.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었다. 다 모이니 30명 남짓 되었다. 술잔을 채우고 사장님께서 모두 고생했다고 전체 건배를 시작으로 시끌벅적한 회식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팀장님의 애환, 동료의 한숨, 후배의 애교 등이 오고 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젖어든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서 고생했던 환경부 과장과 계속 술잔을 부딪히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마치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나에게만 말했다. 10년 넘게 한 회사에 있다보니 계속 고인물이 되는 느낌이 들어 이직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그러나 새로운 회사로 가서 적응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냥 계속 있는 게 맞는 건지 나에게 물어보고 싶단다. 하긴 이미 그때 나는 사회생활 한지 5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회사를 세 번이나 이직했다. 나는 그만두는 것도 이직해서 새로 적응하는 것도 일단 부딪히면 두려움은 사라진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두 눈을 보니 이미 많이 충혈되었다. 테이블에 널브러진 술병이 이미 5병이 넘었다.      


12시가 돼서야 회식 자리가 끝났다. 시끄러웠던 자리가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겨우 택시타고 집에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스마트폰 진동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비몽사몽에 나도 모르게 받았는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비보가 들려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환경부 과장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아직 빈소가 차리기 전이라 좀 더 눈을 붙이고 출근했다. 사무실 전체가 비통하다. 사인을 알아보니 아파트 문 앞에서 자다가 동사했다고 한다.      


날씨가 춥고 피곤하다 보니 집 안에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밖에서 잠들어 일어난 사고였다. 같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나누면서 서로 응원까지 했는데, 한 순간에 그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허무했다. 그 날 이후로 하루하루 매 순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지만 환경부 과장도 자신이 그렇게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났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30대 중반이었는데. 하늘은 왜 그리 성격 좋고 착실한 사람을 빨리 데려갔을까?      


30대 초반에 이런 일을 처음 겪고 나니 인생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 책을 보고 인터넷 사이트에 “죽음”, “앞으로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을까?” 등을 검색했다. 그 이후로 철학과 인문학에 관심이 생겨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그 문제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한 번 태어난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언젠가는 죽는다. 담담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이기에 지금 오늘 매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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