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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Jul 14. 2023

아이의 인생까지 망치지 말자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이다. 밥을 먹고 오늘도 어김없이 인터넷 뉴스를 검색중이다. 제목을 보다가 한 기사에 시선이 머문다.      


“용인 아파트서 30대 엄마·미취학 자녀 2명 극단적 선택, 모두 사망…엄마는 동탄 거주”     


아파트 상층부에서 엄마가 5~6살 아이 2명을 데리고 같이 아래로 떨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그 자리에서 모두 사망해서 경찰과 소방관 등이 시신을 수습했다고 짤막하게 기사는 마무리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 입장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의문점이 하나 들었다. 사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죄없는 아이까지 같이 데려갔을까? 자신이 죽으면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같이 죽자는 건가? 자신의 뱃속에서 힘들게 낳은 아이를. 그 아이들의 인생은 이렇게 어이없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끝난 건가?’     


계속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엄마가 데려간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뭔가 해보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없더라도 아빠가 그들을 키울 수도 있다. 아니면 힘들겠지만 고아원에 보내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도와주는 방법도 있다. 사는 것이 힘들어서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허무하게 같이 세상을 하직한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살이가 참 힘들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결혼한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고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책임이 생긴다. 나조차도 사실 두려울 때가 많다. 밤늦게 퇴근해서 이미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끝까지 책임지고 잘 키울 수 있을까? 매번 고생만 시키는 아내에게도 미안하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어깨에 짊어진 그런 짐들이 버겁더라도 아이들을 데려가서 같이 죽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일가족 모두가 자살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심지어 고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와 같이 이 세상을 하직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제는 자아가 형성된 나이라 그들도 하고 싶고 되고 싶은 목표가 있었을 텐데 부모의 강압으로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했다. 제발 아이들의 인생까지 망치지 말자.      


마흔 중반이 넘어가니 부모님의 심정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존경심마저 든다. 내가 지금 이렇게 인간 구실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된 것은 다 부모님이 희생하고 뒷바라지해준 덕분이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지금의 내 나이였던 아버지는 IMF 여파로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시면서 나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했는지 몰랐다. 나중에 의료보험 기록을 보고 나서야 온갖 잡다한 일을 하시면서 내 뒷바라지를 하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날 저녁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었다면 그 아이들이 잘 자라서 이 세상에 잘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부모의 몫이다.     


혹시 지금 사는 것이 힘들고 괴로운 아빠나 엄마가 있다면 자신들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위해서 다시 한번 힘내서 살아갈 의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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