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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Aug 06. 2018

손을 베었다.

도시계획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처음에 배운 업무가 서류에 들어가는 도면을 접는 일이었다. 업무 특성상 야근과 철야근무의 연속이다. 또 책상에 앉아 일을 하는 시간보다 회의실에 있는 테이블에서 서류를 만들고 도면을 접느라 대부분 서서 일했다. 무슨 인쇄소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학교에서 전문분야를 공부하여 취업했는데, 하는 일은 상사나 회사 선배들이 출력하는 도면과 서류를 취합하는 일만 하니 회의감도 조금 든 것은 사실이다. 어느 직종이나 신입사원 시절은 복사부터 시작하는 걸음마 단계로 지나다 보면 일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날도 역시 지자체 관련부서 협의도서를 30부나 만들어야 해서 출력하는 도면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1부에 들어가는 도면이 토지이용계획도등 10장이 넘었으니 족히 약 300장의 도면을 접어야 했다. 흔히 우리가 서류를 출력하는 종이 사이즈 크기는 일반 A4 크기이나, 도면은 최소 A1이상의 종이가 필요하다. 즉 A4 용지를 약 8-10장 정도를 합쳐야 하는 크기라고 보면 된다. 일반 프린터로 뽑지 못하고 플로터라고 하는 도면 전용 프린터로 뽑아야 한다. 
   
그렇게 출력을 하면서 나오는 도면은 회의실 테이블로 옮겨 자르고 서류에 맞게 접는 작업을 계속한다. 단순작업이다 보니 손에 좀 익을수록 작업진도는 빨라진다. 그렇게 하루를 넘겨 꼬박 3시간을 자고 계속 도면을 자르고 접는 작업의 연속이다. 잠을 못잤더니 눈이 풀리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그러나 작업 스케줄상 빨리 마쳐야 했기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계속 일했다. 
   
“아아아악!! 피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서 내가 자른 도면을 같이 접고 있던 여자 동료가 소리쳤다. 나도 깜짝 놀랐다. 그 동료가 다시 외친다. 
   
“상열씨 손에서 피가 엄청 흘러요...”
   
내가 아닌줄 알고, 다른 사람을 쳐다봤는데... 다시 내 왼쪽 세 번째 손가락을 보니 살점이 거의 떨어져 나간 채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때까지 난 통증도 못 느끼고 있었다. 알고보니 잠깐 졸고 있는 상태에서 도면을 자른다는 것이 실수로 내 손에 칼이 올라가 있었다. 너무 심하게 베이다 보니 금방 지혈이 되지 않아 동료의 부축을 받으면서 결국 인근 병원 응급실로 급히 뛰어갔다. 이제야 아픈 통증을 느꼈다. 아프니까 잠도 깬다. 비도 오는 여름날이라 옷은 땀에 쩔어서 손가락의 피냄새가 섞여 이상한 냄새가 났다. 또 지혈하기 위해서 심장 위로 손가락을 들고 가야 한다고 했는데, 하필 다친 손가락이 세 번째다 보니 들고 가는데 이상한 포즈가 잡힌다. (Fxxx Yxx 자세..)
   
병원에 가서 바로 소독하고 여섯바늘을 꼬맸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붕대를 해야 했다. 가운데 손가락에 붕대를 하고 들고 다니니 나를 보는 모든 사람이 지금 시비거냐고 물었다.일주일 뒤 붕대를 풀고 꼬맨 상처는 아물었다. 벌써 10여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내 왼쪽 세 번째 왼쪽손가락에 꼬맨 흔적은 아직 남아있다. 이후 종이나 도면을 자를때는 정신 바짝 차리고 조심스럽게 자르다 보니 다친 적은 없었다. 모두 종이 자를 때 칼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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