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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Jan 26. 2024

자신이 돌아올 장소 하나 정도는 만들자

자세하게 보진 못했지만,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가 있으면 유튜브 편집 영상을 자주 보는 편이다. 출퇴근 시간이 좀 더 길어지다 보니 책을 읽기도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얼마 전 끝난 잔잔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웰컴 투 삼달리>를 재미있게 보았다. 특히 드라마 남녀 주인공으로 나온 지창욱 배우와 신혜선 배우의 투 샷이 너무 아름다웠다. 선남선녀가 따로 없는 두 사람인데, 극 중 커플 역할도 잘 어울렸다.      


드라마는 잘 나가는 사진작가 조은혜(신혜선 분)가 후배에게 갑질을 했다는 기사 하나로 모든 것을 잃고 고향 제주도 삼달리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뭔가 일이 잘못되었지만, 이제 다시 서울로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알고 보니 후배가 일부러 일을 꾸며서 조은혜를 모함했다. 그래도 돌아온 고향에서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조용필(지차욱 분)과 고향 친구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상처를 치유한다. 드라마는 이런 나레이션으로 막을 내렸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건, 우리를 얼마나 안심하게 하는지.”     


결국 인생의 힘든 일을 겪었지만, 조은혜 아니 원래 본명 조삼달(신혜선 분)은 자신이 자랐던 고향에서 위기를 극복했다.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조용필(지창욱 분)과의 사랑도 다시 되찾았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은 참 크나큰 선물이다.      

12년 전 처음으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탁하고, 위로를 청해보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술만 퍼마셨다. 세상을 원망했다. 아무도 믿지 못했다. 철저하게 사람이 망가지면 말로만 괜찮다고 하고, 시간이 지나면 내 곁에 남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세상이 냉혹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 주체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열고 연락처 목록을 보는데, 허심탄회하게 말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겨우 한 명을 찾아 전화했다. 어머니였다. 아내와 아이가 있었지만, 내색하기 싫었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동안 참았던 감정이 모두 무너졌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꺼이꺼이 소리 내어 목 놓아 울었다. 한참 내가 우는 소리를 듣던 어머니도 감정이 복잡한지 듣고만 계시다가 한마디 했다.      


“언제든지 힘들면 돌아와라. 엄마가 살아있는 한 도와줄게.”      


참으로 나약했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가 다시 한번 힘을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도 돌아갈 장소는 하나 정도는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 뒤로 여러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마다 가끔 부모님에게 연락드리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 좀 마음이 안심이 되었으니까.      


자신의 목숨을 끊는 소식을 자주 뉴스나 주위에서 듣기도 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런 선택을 하지? 라고 젊은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왜 그랬는지 조금씩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자신이 돌아갈 장소가 없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나에게 돌아올 장소를 하나 꼽으라고 하면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가족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생의 문제가 생기면 혼자서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족에게 솔직하게 내 감정과 현실에 대해 공유했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책을 펼치고 읽었다. 그것을 정리해서 글을 썼다. 이제는 사람에게 기대는 것보다 읽고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있다.    

  

혹시 장소가 아니라면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단 한 사람도 좋다. 아마 나도 그런 사람이나 장소가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지금 인생이 힘들다면 자신이 돌아올 사람이나 장소 하나 정도는 만들어 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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