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대학 졸업반 시절이다. 풍족하지 않아도 부족하지 않았던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IMF 사태 이후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었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퇴직했던 아버지는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여러 직장을 옮겨 다녔다. 수입이 1/3 수준으로 줄면서 어머니는 가계경제를 더 신경 쓰게 되었다.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빨리 졸업 후 취업해서 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실제 마음은 달랐다. 주변에 잘 사는 대학 동기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유학에 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 부러웠다. 그것을 넘어 질투와 시기심까지 들었다.
“와, 부럽다. 나도 100억이 있으면 저렇게 할 수 있는데.”
“나도 우리 집이 돈이 많았다면 대학원도 진학하고 유학도 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못해 주는 부모님이 야속했다. 어느 날 친구와 술을 잔뜩 먹고 취해서 들어와 부모님께 소리쳤다. 왜 나는 다른 친구처럼 대학원이나 유학도 가고 싶은데 못하냐고. 지원도 못 해주냐고. 지금 생각해도 참 불효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부모님께 계속 손을 벌릴 생각만 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는 벌긴 했지만, 왜 유학이나 대학원도 내가 일을 하면서 공부할 생각은 그 당시에는 하지 못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 친구도 본인이 낮에는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밤에 과외 하며 힘들게 돈을 벌어 유학했다고 들었다. 유학이라는 목표가 있어 2년 넘게 매일 그런 생활을 견뎠지만, 사실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 말을 듣자 내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힘들게 벌었던 돈으로 그저 편하게 유학가서 공부하고자 했으니. 너무 부끄러웠다.
올해로 20년째 직장생활 중이다. 한 직장에서 오래 있지 못했다. 여러 회사를 전전했다. 다행히 도시계획 엔지니어라는 같은 직군에서 옮기다 보니 버틸 수 있었다. 어느 날 한 후배가 전화가 왔다. 한 직장에서 오래 다닌 후배다. 너무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졌다. 이직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그 한마디에 그냥 이야기하고 옮기면 되는데, 그게 고민거리가 되냐고 물었다.
후배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두렵다고 했다. 형이 그래도 몇 번 이직한 경험이 있다고 들어서 바로 전화했다고 이야기했다. 웃으면서 잘했다고 대답했다. 전화로 이야기하면 길어지니 따로 약속잡고 만났다. 1시간 정도 그에게 그동안 지금까지 했던 내 경험과 노하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 들은 후배의 표정은 밝았다. 몇 달 뒤 새로운 회사에 합격했다고 소리치는 후배의 연락 받았다. 잦은 이직이 독이 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몇 번 해 봤다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니 기분이 좋았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주변 몇몇 사람이 손가락질했다. 글 쓴다고 인생이 달라지냐? 돈은 벌 수 있냐? 네가 하는 일이나 똑바로 해라. 등등 수많은 말을 들었다. 초반에는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나 고민했다. 그런데 생각하니 괘씸했다. 나를 응원해 주지는 못할망정 비아냥거리는 짓을 참을 수 없었다. 무시하고 계속 썼다. 결국 첫 책이 나오자 그들의 소리는 쑥 들어갔다. 물론 아직 지금까지 뭐라 하는 선배 하나는 남아 있다. 그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책 한 권 써보고 나서 타인에게 뭐라고 해도 하라고. 그래도 그는 듣지 않는다. 오늘도 그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찾아보는 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고집과 자존감을 버리지 못한다. 자신이 혼자서 외롭게 분투했던 시간이 없다 보니 실제 성과를 이루었던 사람의 가치를 모른다. 무엇이든 해보고 난 사람의 조언만 듣자. 주변에 이렇게 해보라고 말만 많은 사람은 피하자. 성인 정도 삶을 살았다면 그런 사람은 판단이 가능하다.
타인에게 뭐라고 조언하고 싶다면 반드시 해보고 성과가 있는 상태에서 하자. 실패한 경험도 좋다. 무엇이든 직접 해보고 난 후 거기에서 배우고 느낀 감정까지 가져봐야 그 분야에서 성과를 이룬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또 그 성과를 이루고 싶은 사람들에게 진짜로 알려줄 수 있다. 제발 해보지도 않았다면 그냥 가만히 있자. 열심히 사는 사람을 조용히 응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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