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는 대학 동기들이 모인 단톡방이 있다. 평소엔 조용하다가 오랜만에 메시지가 뜬다. 나와 같은 계통에서 근무하는 동기가 자신이 맡게 된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한 학교 후배 이름을 거론했다. 이름은 낯이 익었지만, 꽤 오랫동안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 학교 다닐 때도 열정적으로 놀았던 후배로 기억한다. 기술자로 살 것 같지 않았는데, 전공을 살려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 놀란 사실은 기술자라면 가장 최고 등급 자격으로 기술사를 꼽는다. 특히 기술사 중 어렵다는 도시계획기술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우직하게 이쪽 분야에서 20년 동안 묵묵히 일하면서 최고 자격까지 갖춘 사람이 되었다니 참 대단해 보였다. 20년이면 참으로 긴 시간이다. 우리 업계 일이 전혀 쉽지 않은데, 잘 참고 견디면서 한 분야에서 성과를 이루었다.
내 주변을 봐도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꾸준하게 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타이밍이나 운이 맞아 결과가 좋아진 것이 대부분이다. 하다가 잘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그런 환경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 일에만 몰두했다. 그 성과가 좋지 않아 잠시 절망하고 실패의 쓴맛을 맛보지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그 후배를 보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같은 업계에 있지만, 조금만 일이 힘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망갔다. 물론 월급이 밀리거나 희망퇴직을 당하는 등의 사유도 있지만,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판 경험이 많지 않다.
물론 잦은 이직을 했지만, 근무할 때 만큼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 일했다. 여러 회사를 전전하면서도 꾸준하게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나름대로 우공이산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을 지나 한 걸음씩 계속 오다보니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2015년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5줄 이상 쓰지 못했다. 개의치 않고 매일 썼다. 후배들에게 나처럼 오락가락 살지 말라는 의미에서 첫 책 <모멘텀> 초고를 쓰면서 블로그에 일상이나 책 서평 등을 병행하면서 썼다. 그 당시 같은 꿈을 꾸던 많은 사람과 서로 응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같이 쓰던 사람들은 많이 사라졌다. 꾸준하게 쓰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여전히 부족한 글쓰기 실력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한 우물만 파면서 쓰다 보니 한 주제를 주면 막힘없이 분량을 채우는 수준은 되었다. 한 우물만 계속 판다는 뜻의 사자성어가 바로 ‘우공이산’이다.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한 우물을 계속 파기 위해 노력을 향상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명확하고 점진적인 목표를 설정한다. 처음부터 너무 큰 목표를 설정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실행 분량을 정한다. 작게 정하면 더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다. 이렇게 매일 하나의 작은 계획을 실행하다 보면 장기적인 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둘째, 일상에서 루틴을 만든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몇 시에 조금씩이라도 할 수 있도록 습관이 될 수 있게 노력한다. 정기적인 일정을 설정하는 것이다. 바쁘더라도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일관성 있게 오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셋째,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한다. 한 가지 방식으로 하다 보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때 멈추면 안 된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도한다. 피드백을 통해 계속 개선해 나가면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
세상이 바뀌면서 여러 가지 일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 되었다. N잡러가 대세가 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한 가지 일을 묵묵히 끝까지 잘 수행하는 사람들이 끌고 간다. 나를 포함해서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끝까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계속 가다 보면 생각보다 더 근사한 성과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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