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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부끄러움까지 기록해야 하는 이유

by 황상열

“내가 쓴 글을 어떻게 타인에게 보여줘요. 그냥 저 혼자 쓰고 읽겠습니다.”

“그럼 제가 지금까지 했던 강의는 어떻게 들으셨어요?”

“독자를 위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은 아는데요. 그래도 보여주는 게 좀 그러네요.”

“그러면 계속 일기장에 혼자 쓰세요. 그렇게 계속 쓰시는 것도 좋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한 수강생이 후기 소감 중에 나눈 대화다. 처음 백화점 문화센터나 공공기관, 도서관 등에 글쓰기 강의 때 저런 말을 하는 수강생이 적지 않았다. 분명히 나는 이제 타인에게 보여주는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의가 끝나면 내 이야기를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창피하여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다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굳이 나의 단점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다. 우리는 대개 글을 쓸 때 자랑할 수 있는 성과, 성취나 따뜻한 감정 등을 남기고 싶어한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겠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거울 앞에 서는 용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실패, 후회, 아쉬움, 창피했던 일 등이 더 많다. 사람 심리상 이런 감정은 감추는 게 당연하다. 나도 그랬다. 참으로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살면서 더 많았다. 여전히 어머니는 이런 나의 좋지 않은 과거를 굳이 드러내어 글로 표현하는 점에 대해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영역이자 지점이다. 그 지점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사실 고통스럽지만, 글로 쓰면서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기록하면서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 보고 다시 만나는 일이자, 독자와 소통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특히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내야 독자가 작가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나도 올해 여름이나 가을에 나올 “관계”에 대한 에세이까지 포함하면 13권의 개인저서를 썼다. 새로운 원고도 조금씩 쓰고 있다. 쓸 때마다 나를 꺼내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감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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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위 조절은 필요하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를 시시콜콜 다 꺼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쓰는 책 주제에 맞게 각색하거나 필요한 부분만 가져와서 진정성 있게 쓰면 된다. 부끄러움까지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나의 아름답고 멋진 추억이나 경험담을 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 모습은 어찌 보면 스스로 편집한 자아다. 나의 부끄러움과 실수 등을 기록할 때 비로소 내 안에 있는 어둠, 미성숙함 등을 만날 수 있다. 진짜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둘째, 공감의 깊이를 확장 시켜 준다. 사람은 너무 완벽하고 성공한 이야기는 감탄은 할 수 있지만, 공감은 못한다. 오히려 멀게 느껴진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작가의 진심을 공감한다. 옆에 있는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면서 같은 마음으로 연결된다.


셋째, 기억은 미화되지만 기록은 진실을 붙잡는다. 그 당시 부끄러움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진다. 내 자존심이 그 기억을 미화하고 덮는다. 하지만 기록하면 그 순간 감정과 흔들림이 남는다. 그 기록이 진짜 나의 서사를 놓치지 않게 한다. 나도 실수나 실패 등하게 되면 힘들어도 다이어리에 사실과 감정을 짧게 적는다. 왜곡되지 않도록.


넷째. 시간이 지난 후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너무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몇 년 후 “그 당시 일이 나를 이렇게 성장시켰어.” 라고 되돌아보게 된다. 성장은 고난과 창피함에서 시작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부끄러운 일이라도 기록하면 반드시 나중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타인에게 내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보여주기 싫다면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래도 자신의 부끄러움을 글로 옮기는 순간 좀 더 근사한 나를 만날 수 있다. 타인은 나의 인생에 관심 없다. 그저 필요할 때 내 부끄러움을 글로 옮기면 된다.


매일 쓰는 사람이 진짜 작가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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