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눈을 뜨면 자동적으로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한다. 세수를 하고 입 주위로 크림을 바르고 거울을 본다. 면도기를 한 손에 들고 작업에 들어간다.
슥슥.. 슥슥.. 아아아악!
입 아래로 피가 주르륵 흐른다. 날이 또 상했나? 너무 세게 밀었나? 나는 오늘도 수염을 깎는다. 면도하다가 가끔 살을 베기도 한다.
면도를 처음 하게 된 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다. 2차 성징이후 앳된 얼굴에서 아재상으로 바뀌면서 수염도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세수하다 처음 수염난 걸 보고 신기해 한 적 있다. 조금씩 있을때는 괜찮았는데, 수염이 계속 자라게 되자 좀 보기 흉해졌다. 부모님은 이제 면도를 해야된다고 하셨다. 그 당시 40대 중반이셨던 아버지는 일본에서 사온 전기 면도기를 사용했다. 일단 그걸로 아버지께 사용법을 배워 처음 면도를 시도했다.
너무 세게 밀었는지 수염은 깎였는데 입주위 피부가 새빨개지고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서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입술이 부르트고 피부가 가렵기 시작했다. 하교 후 아버지께 여쭈어보니 니 피부가 약해서 트러블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날 밤 입 주위 피부 전체 염증이 생겨 결국 다음날 마스크를 쓰고 등교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다시는 전기 면도기를 쓰지 않는다.
이후로 일회용 면도기로 수염을 깎았는데, 피부 트러블이 거의 없었다. 만족도도 최상이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은 박지성과 손흥민이 광고를 하여 유명한 질레트 사의 6단짜리 면도기이다. 나는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한다. 출근 전에 깎고 가도 저녁이 되면 이상하게 수염이 많이 자라 있다.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나 수염도 금방 자란다고 하는데...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우리 아들도 시간이 지나 자라면 수염이 나고 면도를 시작하겠지? 그만큼 나도 나이가 먹어가면서 이제는 익숙해졌다. 예전의 아버지가 처음 면도했던 나를 보면서 웃었던 그 모습이 어제 같은데 이제 내가 그럴 때가 되어간다. 거울을 보니 또 새카맣다. 교회에 가기 전 나는 오늘도 수염을 깎는다.
#나는오늘도수염을깎는다 #면도 #수염 #에세이 #황상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