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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먹고 싶었어요..

라면의 추억

by 황상열

군대 자대 배치를 받고 모든 게 낯설었다. 어디에서 새로 시작할 때는 뭐든지 어색하고 어리버리하다. 신병시절도 그랬다. 특히 방공포병 특기로 오다보니 다른 공군 특기보다 군기가 더 셌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통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방공포병 특기를 받으면 높은 산 꼭대기나 중턱에 있는 부대로 자대배치를 받는다. 다행히도 나는 방공포 무기 중 발칸포 담당 특기를 부여받아 청주에 있는 비행단에 배치가 되었다.

자대배치를 받고 선임병(고참)들의 갈굼과 얼차려를 견디며 하루하루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던 중이었다. 24시간을 기준으로 2시간씩 초소근무를 병장부터 신병까지 돌아가며 서야 했다. 특히 근무가 가장 힘든 자정~새벽2시와 새벽2시~4시 근무는 계급이 낮은 일병과 이병이 많이 배치가 되었다. 보통 2명이 같이 근무를 서게 되는데, 휴가자가 발생하면 한명이 서는 날도 많았다.

어느 날 선임병 한명이 휴가를 나가게 되어 나 혼자 새벽 2시~4시 근무를 서게 되었다. 자대배치 후 훈련소에서 컵라면을 일주일에 한번은 먹었는데, 자대배치 후 선임병들이 먹고 싶다 해서 끓여주기만 하고 먹지 못했다.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니네들만 입이냐. 나도 먹고 싶다고 속으로 참 많이 외쳤다. 근무를 준비하다가 문득 생라면이라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선임병 모두 자고 있다. 코까지 곤다. 몰래 소대 창고로 향했다. 안성탕면 한 봉지를 꺼내고 주머니에 넣고, 초소로 향했다. 그래! 생라면이라도 먹어보자.

그렇게 초소 안에 들어가서 다시 한번 밖을 쳐다보았다. 빛이 하나 없는 칠흑같은 어둠만 보인다. 아무도 없고, 나 혼자만 있다. 주머니에서 라면을 꺼냈다. 주먹으로 봉지를 치면서 라면을 조각조각 부수고, 봉지를 찢었다. 분말스프를 꺼내서 부서진 라면조각에 골고룰 뿌리고, 봉지를 잡고 흔들었다. 자! 이제 먹기만 하면 된다. 한 조각을 집어 한 입 넣으려고 할 찰나에.

내 눈 앞에 한 줄기 빛이 보인다. 그리고 소리가 들린다.

“야! 너 앉아서 뭐해?!" (아! 뭐지...X됐다.)
깜짝 놀란 나는 라면을 초소 안쪽으로 집어던지며 일어났다.

“이병 황상열, 근무 중 이상무입니다.”
가까이 보니 당직사관 00 중사였다. 가까이 오더니 군화로 내 발을 걷어찬다.

“야! 너 근무중에 뭐했어? 뭐 먹고 있냐?? 신병이 빠져가지고.”
“안 먹었습니다!”
“야! 너 입에 뭐 묻은 거 다 보이는데, 거짓말까지 해?” (아차 싶었다..)
“죄송합니다.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하나 먹었습니다.”(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이게 미쳤구나. 라면을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 이야기를 해야지! 일단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아 큰일났다..)

정말 너무 먹고 싶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거지? 난 이제 죽었다 생각하고 체념하고 근무를 마치고 뜬눈으로 밤을 샜다. 다음날 아침 선임병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다시 한번 얼차려를 받았다. 화장실에서 혼자 울다가 당직사관이 부른다는 말에 이제 정말 끝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중사에게 가보니 따라오라고 한다. 들어가니 끓인 라면과 김치가 보인다.

“야, 어여 먹어라. 얼마나 먹고 싶었겠냐?”

라면을 먹는 내 눈에는 눈물이 떨어진다. 정말 감사합니다. 00중사님!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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