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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Mar 18. 2020

따뜻한 말 한마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평범한 일상이 깨졌다. 장기화될 조짐이 보인다. 학교도 언제 수업이 재개될지 모른다. 가게에 손님이 없고 거리가 한산해지다 보니 경제도 올스톱이다. 여기저기서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다. 웃고 즐겁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나도 회사와 집을 오가는 단순한 생활을 몇 주째 지속하고 있다. 퇴근길에 오른 지하철은 인산인해다. 마스크를 낀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한숨을 쉬는 사람들도 몇몇 보인다.      


“다음에 내릴 역은 건대입구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매일 출퇴근시 언제나 듣는 익숙한 멘트다 보니 신경쓰지 않는다. 잘 들리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그 뒤에 나오는 기관사의 멘트에 내 귀가 벌써 집중하고 있다. 가끔 이런 따뜻한 멘트를 날려주는 감성 기관사들이 있다.     


“요새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타는 승객 여러분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이네요. 저도 지인들이 많이 힘들다고 해서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아직 밖의 날씨는 춥지만 따뜻한 봄이 시작되듯이 이 어려움도 곧 지나갈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하신 승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돌아가는 목적지까지 조심히 들어가세요. 마스크 꼭 하시고 건강 잘 챙기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따라 이 멘트가 유독 마음에 콕 박혔다. 기관사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위로가 된다. 승객들의 힘든 마음을 같이 공감하며 어루만져 주는 느낌이다. 내 앞에 앉아 있던 한 할머니는 옆에 앉아 계신 지인에게 기관사가 참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마스크 뒤로 보이는 입은 아마 미소를 지었을 듯.      

내 뒤에 서 있던 한 젊은이는 애인과 통화중인가 보다. 본인 집 안방에서 통화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아주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다.      


“기관사 아저씨가 오늘 좀 갬성적인 듯. 갑자기 버터 바르는 멘트를 날리는데 닭살이 돋았어. 하하하.”

“젊은이 지하철 전세냈어? 왜 그리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거야? 시끄러워!”

젊은이의 목소리가 못마땅했던 어느 할아버지가 호통쳤다.     


“할아버지가 뭔 상관이에요? 내 전화로 내가 전화하는데. 아. 미안! 어떤 미친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네. 하하하” 

“뭐?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당장 전화 안 끊어?”

“자기야. 잠깐 끊자. 아 진짜 짜증나게 하네. 할아버지 왜 자꾸 참견하세요? XX!"      


그는 할아버지 앞에서 욕을 했다. 차가운 말 한마디에 내 기분까지 좋지 않다. 한 마디 거들까 하는 찰나에 젋은이가 목적지에 왔는지 그냥 재수없다는 한마디를 던지고 나서 하차했다. 지하철에 남은 할아버지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모양새다. 요새 애들은 정말 싸가지가 없다고 하며 한숨 쉰다. 기관사의 따뜻한 말로 기분이 좋았는데, 두 사람의 폭언으로 내가 타고 있던 지하철 내부 전체 분위기가 싸했다. 그 할아버지도 따뜻하게 “젊은이, 전화하는 것은 괜찮은데 좀 목소리를 낮추어서 통화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라고 했다면 오히려 젊은이가 더 미안해하지 않았을지. 기분이 좋지 않다고 감정을 앞세워 말하기보단 한번 가라앉히고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이렇게 다짐하고 잘 알고 있지만 나도 잘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7살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타이르는 것보다 벌써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본다. 오늘만큼은 아들에게 따뜻한 말로 좋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이가 어떤 장난을 치고 말을 듣지 않아도 웃으면서 따스하게 말을 던지니 다른 날보다도 유독 말을 잘 듣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동안 나도 너무 윽박지르면서 차갑게만 대했나 싶었다.      


말은 그 사람의 행동을 보여주는 거울이라 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나의 현재를 보여준다. 오늘 하루 수고한 가족이나 지인, 친구에게 한번 수고했다고 따뜻하게 말 한마디를 전달해보자. 직접 전하지 못했다면 문자나 카톡 메시지라도 보내보자. 지금 당신이 건넨 그 한마디에 어떤 사람은 정말 위로받고 힘낼 수 있다. 오늘 나도 그 기관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계속 생각나는 밤이다.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구에겐 큰 힘과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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