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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Aug 09. 2020

엄마 잘못했어요!


어제 오후 경북 칠곡군에 있는 케렌시아 카페에서 저자 강연회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랫폼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는데 점점 빗줄기가 굵어진다. 오랜만에 세차게 비가 오는 소리가 소음처럼 내 귀를 때린다.      


스마트폰을 켜고 톡방이나 뉴스에 온통 폭우로 인해 하천이 범람하여 집들이 침수되어 피해가 우려된다는 소식뿐이다. 비 피해가 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기차를 타고 밖을 바라보는데 하천물이 많이 불어난 모습이 보인다. 우연히 30년전 기억이 떠올랐다.      


30년전 나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다. 아직 서울 학교로 전학가기 전이다. 광명에 있는 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를 다니는 시절이다. 등교하는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늘상 있는 장마철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산을 쓰고 학교에 잘 갔지만, 수업을 듣는 도중 교감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학생 여러분, 지금 엄청난 폭우로 인해 도로에 물이 차고, 낮은 지대에 있는 집들이 침수되고 있어요. 어서 자기 짐 정리해서 하교하세요. 얼른!”     


이게 무슨 일인가? 13년 생애 살면서 범람한 걸 본 적이 없었는데. 담임 선생님의 지시대로 빨리 책과 노트를 가방에 싸서 학교 밖을 나왔다. 내 눈 앞에 보이는 건 물뿐이었다. 이미 도로에 물이 차고 있었다. 그나마 아직 물의 높이가 발목까지 오지 않았다. 양말을 벗고 친구와 함께 물을 헤치고 집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도중 친구에게 물었다.      


“00야. 수업도 일찍 끝났잖아. 오락실에 갔다가 집에 가자.” 

“응. 그래! 안 그래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아뿔사!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의기투합한 우리는 오락실을 향했다. 그 당시 오락실이 두 개 있었는데, 한 개는 지대가 높고 내리막길에 있는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점점 더 세지는 빗줄기를 뚫고 오락실에 도착했다. 비가 오지만 내리막길로 물이 다 내려가고 있어 그 오락실에는 피해가 없었다.      


나 말고 많은 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몇 명이 오락을 하면 대부분이 서서 구경하고 있다. 둘러보다가 친구와 빈 자리에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1~2시간 정도 아무 생각없이 게임에 취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락실 문을 나섰다.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다행히 지대가 높은 내리막길이라 그곳은 침수되지 않아 아직 안전했다. 그리고 내가 그당시 살았던 저층 아파트도 높은 곳에 위치하여 비 피해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초인종을 눌렀다. 갑자기 이모 아들 사촌형이 나오더니 화를 내며 한 대 친다.  


“야! 너 어디 갔다오는거야? 비가 이렇게 오는데. 학교에서 아까 끝나서 집에 갔다고 선생님이 연락이 왔는데, 너는 안 와서 어떻게 된 지 알았잖아. 니네 엄마가 너 안 보여서 지금 너 찾으러 침수된 물에 스티로폼 타고 다시 학교 갔어. 임마!”     


이미 선생님이 집에 연락했고, 아까 집에 왔어야 할 내가 보이지 않으니 어머니는 불안했던 것이다. 동생은 이미 집에 와 있었다. 이제 난 죽었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물에 젖은 어머니가 집에 돌아왔다.      


“황상열! 너 어디 갔다 왔어! 집에 바로 안 오고. 엄마 걱정하는 것 보고 싶어?!!”     

이미 내 두 눈엔 눈물이 한 가득이다.      


“엄마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게임이 너무 하고 싶어 오락실에 다녀왔어요.”

“제 정신이야. 게임 못해서 환장했어? 비가 이렇게 오는데 어떻게 된지 알았잖아!”

“잘못했어요. 엉엉.”     


그날 밤 인근 빌라에 살다가 침수되어 잠깐 대피한 이모네 가족과 퇴근한 아버지에게 까지 엄청나게 혼났다. 내 눈물샘은 마를새가 없었다.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피식거리다 보니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하고 있다. 기차에서 내리니 빗줄기가 여전히 세다. 집으로 돌아와 게임에 빠져있는 7살 둘째아들이 보인다.      


“게임 좀 그만해.”     

앞으로 더 비가 온다고 하는데, 비 피해가 크게 없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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