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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Oct 07. 2020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며칠 전 몇 년동안 연락이 없던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어떻게 지내는지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5년전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창업했다.

1년 동안 자리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사업을 본궤도를 올린 능력자다. 이후 서로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연락을 거의 하지 못했다. 간간히 다른 사람을 통해 사업규모가 더 커져 잘 나간다는 소식을 듣곤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그가 부럽기도 했지만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좋았다.
 
“상열씨, 나 어떡하면 좋아요? 사업이 망했네요. 이제 남은 게 없어요.”

술이 거하게 취한 듯한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아무런 안부인사 말도 없이 파산했다는 한마디만 던지고 아무런 말이 없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흑흑 울음소리만 공허하게 들린다. 그 소리만 들어도 그가 얼마나 힘든지 짐작이 되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잘 지냈지요? 요새 글쓰면서 책도 낸다고 하던데, 대단해요. 상열씨도 그 시기에 굉장히 힘들었자나요.”

5년전 어떤 모임에서 처음 만난 그는 호탕했다. 금융사를 다니면서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특히 돈에 대한 감각이 탁월했다. 당시 다니던 작은 시행사에서도 월급이 밀리면서 다녔던 나에게 그는 아무런 말없이 술을 사주면서 위로했다. 월급 이외에 다른 파이프라인을 만들라고 처음 이야기했던 사람도 그다. 덕분에 인세라도 벌어 보려고 책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도 확 바뀐 건 없지만 그 당시보단 그래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죠. 00씨 아니었으면 여전히 인생을 헤메고 다녔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괜찮으신 거에요?”
“안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괜찮은 척 며칠 해봤는데, 그게 더 힘들더라구요. 그냥 술 한잔 하다가 오랜만에 생각나서 전화했습니다. 오랜만인데도 잘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지금은 좀 쉬고 계신 건가요?”
“네. 사업은 망했지만 수중에 남은 게 그래도 집 하나는 있네요. 이거 하나 담보 잡아 다시 시작해야죠.”
“진짜 대단하세요. 그 멘탈은.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요. 안 괜찮다고 하면 어떻게 해줄건데요? 어줍짢은 위로 따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상처 하나쯤 없는 사람은 없자나요.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죠.”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했다. 아마 안으로 상처가 너무 커서 곪아터졌을지. 항상 남에게 당당한 모습만 보이던 그였기에 그런 약한 모습을 더 보여주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다보니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남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그런 아픔과 상처는 하나씩 가지고 있더라. 다만 내가 가진 상처가 남의 것보다 항상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더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듯 하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날개를 펴서 비상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다 아픈데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건 아닌지.

지인이 상처를 털고 다시 일어나길 다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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