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썼던 글에 예능계의 대부 이경규를 소개한 바 있다. 내가 어릴 적 기억하는 이경규 아저씨는 커다란 눈을 계속 돌리면서 버럭하는 모습이 웃긴 게 아니라 무서웠다. 그러다 <몰래카메라>의 성공으로 인기 개그맨 반열에 올랐다. 그렇게 30년이 지났는데, 그는 여전히 최정상의 개그맨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에게 예림이란 딸이 하나 있다. <몰래 카메라> 시절에 어린 예림이의 소식도 간간이 들려왔다. 5살 예림이가 한번 카메라에 잡히자 온 국민이 또 관심을 가졌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어울리는 귀여운 아이였다. 그때 이경규는 한 매체와 인터뷰를 했는데, 한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예림이가 지금 5살인데 중학생 될 때까지 방송을 할 거에요.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개그맨으로 성공해서 사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아이에게 내가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어요.”
이제 그 예림이가 커서 축구선수에게 시집을 간다고 한다. 세월이 참 빠르다. 이젠 아빠와 술 한잔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경규의 유튜브 채널에서 부녀가 만나서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참 보기가 좋았다. 서로 티격태격 하다가 마지막에 이경규가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아빠는 말이야. 언덕이야. 비빌 수 있는 언덕이야. 그러니까 마음껏 비벼라. 소나 양 떼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살아가는 거다. 그게 남편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너의 비빌 언덕은 아빠였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는데 왜 내 마음이 찡해지는지.
사춘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참 많이 대들고 반항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불효자다. 나이가 들어서야 나에게도 비빌 언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참으로 철부지였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열심히 일을 하시는 이유가 나와 동생이 사회에서 자리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애쓰신 결과인데. 말은 못했지만 나에게도 아버지는 비빌 언덕이었다. 아버지의 헌신과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온전하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이경규라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보니 참으로 멋지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로 변함없이 살아온 그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다. 특히 딸 예림이가 언제든지 힘들면 기댈 수 있게 자신을 언덕이라고 표현 자체가 무심하지만 진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마흔이 넘어서도 철부지 같은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 아이들이 커서 자리잡을 때까지 힘들고 어렵겠지만 나도 그들의 언덕이 되고 싶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들의 인생에 지치고 어려울 때마다 나를 찾아 비비고 기댈 수 있는 그런 언덕.
나이가 드니 부모님, 아버지,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가 이제 부모님의 언덕이 되어 드려야 하는데, 왜 이리 그게 잘 되지 않을까? 여전한 불효자는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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