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 물아일체, 왓칭 , 양자역학의 일맥상통
오래된 불교서적인 종용록 제 52칙 조산법신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조산이 덕상좌에게 물었다. 부처의 참 법신은 오히려 허공과도 같다. 사물에 응하여 형상을 나타내는 것은 마치 물속의 달과 같다. 고 했는데, 이 도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덕상좌가 답하였다. 마치 나귀가 우물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조산이 말했다. 말인즉, 기가 막힌 말이지만 그저 열에 여덟을 이루었을 뿐이다.
화상께서는 어떻습니까? 덕상좌가 묻자 조산이 답하였다.
우물이 나귀를 엿보는 것 같으니라.
MBC 의 기자이며 앵커인 김상운이 쓴 책 중 '왓칭' 이라는 책이 있다. 자신을 객관화 시켜 제 3의 눈으로 자신을바라보면 근심과 걱정을 떨치는데 도움이 된다. 정도로 한 줄 요약할 수 있겠다. 물론 책에는 더 좋은 내용과 한 줄로 설명되지 않는 심오한 내용의 글이 수록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현대 양자역학의 비밀 중 아직도 그 비밀이 풀리지 않는 여러가지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 라는 것이 있다.
1998년 양자물리학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원에서는 ‘이중슬릿실험(Double slit experiment)'을 실시했다. 이것은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에 대한 실험이었다. 관찰자가 바라보는 빛은 고체 알갱이처럼 움직이지만, 그렇지 않은 빛은 물결처럼 움직였다. 이것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빛의 존재가 관찰자의 생각에 따른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쉽게 설명하면 입자는 물질이나 실체로 이해하며, 물결은 파동으로서 실체없음 또는 비물질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이처럼 빛입자는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읽어내고 자신의 움직임을 관찰자의 생각에 따라 결정했다. 이 실험을 두고 세계적인 물리학 전문지 <물리학 세계(Physics World)>에서는 이 실험을 ‘인류 과학상 가장 아름다웠던 실험'으로 선정했다.
실험자가 빛의 입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입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바라보지 않으면 물결의 모습이 나타나는 현상을 양자물리학에서는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라고 부른다.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미립자, 소립자 등, 우주의 모든 것은 물질로서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파동의 형태로 우주 공간에 존재하다가 내가 어떤 의도를 품고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돌연 눈에 보이는 현실로 존재한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왜 양자역역에서의 입자들이 저와 같은 행태를 보이는지? 마치 관찰하면 존재하는 듯 모습을 드러내다가 관찰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지 어떤 물리학자도 아직까지 이유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위 세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바라봄이다. 더 나아가 바라봄이란 상호작용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즉,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봄의 대상인 객체간의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인간 또는 생명체의 바라봄만을 한정해서는 안된다. 즉 물질간의 존재의 알아차림도 바라봄 또는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중 슬릿실험에서 쓰였던 전자의 움직임은 일체의 외부자극을 배제한 밀폐된 공간에서의 실험이기 때문에 관찰하거나 관찰하지 않는 통제가 쉬웠다면, 좀 더 큰 원자나 분자 더 나아가 세포의 경우에는 그러한 통제가 어려워 일체의 관찰을 배제하기 더 어렵다.(가장 최근의 연구결과로는 원자 2000 개로 구성된 분자를 대상으로 간섭현장을 확인한 바 있다.)
만약 고양이와 같은 생명체를 일체의 자극(관찰됨)을 배제하고 우주의 모든 관찰(중력, 빛, 공기, 온도, 습도, 등등)을 통제하여 이중슬릿실험을 할 수 있다면(고양이를 총으로 쏘는 것과 같이) 아마도 관찰하면 두 줄이, 관찰하지 않으면 여러줄의 간섭무늬가 나타나리라 추측한다.
이 이야기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세상의 일체의 존재라고 여겨져왔던 모든 것이, 심지어 생물, 무생물 가릴것 없이 공기나 빛조차 실체가 없는 것이다 라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수천년 전 부처님은 과학적 실험이나 지식없이 깨달음 사고만으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나 보다. 부처님의 인연생기(因緣生起), 일체유심조 등은 이 모든 것을 헤아리는 말이었으리라.
그렇다면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아니하고 바라봄에 의해 존재한다. 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필연적인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은 이미 결론이 나와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삶이 고통이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겪는 마음의 상처들, 스트레스 등을 해소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 고통, 마음아픔 등은 모두 나로인해 생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존재함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목숨을 끊거나 시쳇말로 생을 마감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적인 방법은 잠시동안이나마 나를 잊는 것이다. 알고보니 빛이나 공기조차 바라봄 즉, 상호작용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진데 '나' 라는 존재가 어디 가당키나 한다 말인가? 이제 나 자신이라도 나의 존재를 잊어보고 나를 파동 다시말해서 존재하지 않음으로 느껴보자
가장 쉬운 방법은 나를 객관화시키고 나라는 존재를 마치 제 3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보고 나의 감정을 제 3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보는 방법이다.
지금 힘이드는가? 화가나있나? 슬픈가? 내가 힘이 들고 내가 화가 나있고 내가 슬픈것이 아니다.
마치 유체이탈하여 우주의 기운이 내 위에서 나를 바라보면서 아! 저 사람이 화가 나있군, 힘이 드는가 보군, 슬픈가 보군!! 하며 나의 밖 어딘가에서 나라는 존재를 무심하게 보자는 것이다.
본래의 나는 존재하지도 실체하지도 않는데 그로인해 생겨난 감정들이 뭐란 말인가? 한 번 바로 시도해보자. 효과는 금방 나타난다고 장담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지쳐있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 때문에 상처받아 있고 어떤 부정적인 마음에 사로잡혀 있거나 떨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지금 바로 시도해보라!!.
거창한 준비는 필요없다. 불안한 마음을 갖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당신을 머릿속으로 제 3자가 보듯이 볼 수있는 상상력만 있으면 된다. 일부러 떨쳐버리거나 외면할 필요는 없다. 부정적인 생각들, 지쳐있는 당신 모두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이 아니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단지 상상하며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
어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