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ke Apr 27. 2017

Rest our heads upon the grass

And listen to it grows

랜들 먼로의 what if(한글판 제목: 위험한 과학책)에 보면 운명의 짝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다. 확률적으로 계산해 보면 한없이 0에 가깝다(당연함에도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음악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음악은 있어 왔고,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노래는 셀 수도 없다. 또한 들을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나에게 완벽한 곡을 만나는 것은 객관적으로는 어렵다. 그저 주관적인 판단 그리고 자기 세상, 자기 경험 안의 일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안 좋은 노래는 별로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 곡들만 나오는지.... 한 순간은 '그래서? 내가 나의 송 리스트를 만들어 가는 게 의미가 있나?'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가질 때도 많다. 때로는(아니, 대부분) 좋긴 하지만 왠지 정이 안 가는 곡들도 있다. 좋은 노래라는 것은 인정. 누군가 그 곡을 좋아한다는 것도 인정. 하지만 나는 아니다! 때문에 지금껏 이만큼(혹은 겨우 요만큼) 했는데도 이제 슬슬 꼽을 만한 노래가 없다. 그렇다고 일일이 다 찾아볼 수도 없고.... 그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최고다.


며칠 전에 춘천을 갔다 왔다. 의암호 주변을 걷고, 김유정 마을에도 들러서 바람에 나뭇가지가 산들산들 흔들리는 풍경도 마음껏 들이마셨다. 그러고 다시 돌아오는 길. 서울 근처에 들어섰을 때쯤, 라디오에서 한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신기하게도 (영어) 가사가 들리는 것 아닌가? 딱 지금의 내 마음을 노래하는 가 싶더니 간주에 차이코프스키의 피나오 협주곡 1번의 1악장 테마가 흐른다. (이 곡도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이라서..)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곡 명을 들으려고 기다리는데, 차는 터널로 접어들었고, 라디오는 수신이 잘 안되었다. 빨리 터널을 빠져나가면 좋겠는데, 하필 터널은 왜 이렇게 긴지...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곡명을 들을 수 있었고, 그날 밤은 핑크 마티니, 그리고 'Splendor in the grass'에 취할 수 있었다. '왜 이제야 나타났니? 그동안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데...'하면서, 마침내 터져버린 그리움을 부여 안고 듣고 또 들었다. 가사 한 줄 한 줄, 뮤직 비디오를 장면 장면, 곡의 소리 하나하나 어루만지다... 그렇게 잠들었다.


어랏? 이건.... 사랑?! 그래, 이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한눈에 빠진다거나, 운명의 상대라거나 하는 것들을 이성적(혹은 과학적)으로 믿기는 어렵지만... 언제 어떻게 올진 모르지만... 이런 순간은 드문드문 온다. 그리고 계속 온다. 결국 이렇다. 사랑 같은 건 없다고 믿어 온 지 오래지만, 이런 식으로 잊었던 그 오래된 감정을 다시 깨워본다. '그래, 사랑이란 이런 거였어' 


(후일담) 이 곡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회환, 귀향, 화해 등등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이 곡과 처음 만난 그 날을 기록하고 싶었다. 사랑이었기에...


Splendor in the grass (by Pink Martini): 3분 40초

작사/작곡: Alex Marashian, Thomas Lauderdale

2009년 발매된 핑크 마티니(Pink Martini)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앨범에는 세 번째 수록되어 있다.

핑크 마티니(Pink Martini)는 피아니스트인 Thomas Lauderdale이 이끄는 밴드(라고 하기에는 좀 크지만)다. 1994년에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하고, 1997년에 음반 데뷔를 했다.

그 계기가 재미있는데, 토마스가 정치 지망생으로 한창 정치 행사에 다녔는데, 그때 음악이 한마디로 재이도 없고, 의미도 없어서 새로운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충분히 그 심정 이해한다.)

그래서 인종, 세대, 이념 등이 달라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음악을 해왔다. 주로 클래식과 라틴, 재즈, 팝을 아우르는 크로스오버 음악을 주 레퍼토리로 하고 있으며, 밴드 구성원도 지리적 혹은 생리적으로 다양하고, 보컬을 담당하는 China Foebes는 지금까지 15개 이상의 언어로 곡을 불렀다고 한다.

네이버에서 관련 정보를 찾아보면 박웅현 씨의 "책은 도끼다"에 이 곡이 언급되어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더 이상은 그분의 책을 읽지는 않지만, 나와 비슷한 취향인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동명의 제목으로 유명한 TV 드라마가 있다. 미국판 전원일기라고 할 수 있는 '초원의 빛'이 영어로 'Splendor in the grass'다. 그리고 같은 제목으로 William Wordsworth의 시도 있다. 

지금까지 선곡된 곡들을 보면 쉽게 눈치챌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재즈는 잘 듣지 않는 편이다. 일단 '노래'라고 한정 지을 때 선뜻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물론 가끔 듣기는 하지만, 특별히 애정 하는 곡은 많이 없고, 가끔은 장르 음악으로서의 재즈에 의문을 가질 때도 있다. 재즈 아래의 서브 장르를 생각해 보면 재즈는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일부 재즈 마니아의 태도에 약간 거부감도 있고....

왜 앞에서 재즈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구구절절 읊어 놓았냐 하면... 지금껏 핑크 마티니를 들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이랄까... 일반적으로는 재즈 장르로 구분하는 것 같은데, 실상 어떤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라틴 음악 향이 많이 난다. 

앞으로 한동안 라틴 음악을 들어 보아야겠다. 라틴 음악에서 느껴지는 낙관과 삶에 대한 달관(?) 혹은 관조 같은 것이 좋다. 물론 본격적으로 들으면 다른 부분들도 많겠지만, 최소한 '행복한 음악'이라 할 때, 라틴음악은 무척 잘 어울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If I didn't have your lov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