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ke Aug 20. 2017

헤어짐의 무게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저,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그렇다고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에 한두 번 '뜨거운 아메리카노' 주문해서 마시던 것이 전부였다.

'그래요? 아쉽네요. 또 안 오시는 거예요? 내년에 또 오세요~'

진짜로 섭섭한 듯 아쉬움을 담아 말을 건네는 아주머니(어쩌면 또래일지도 모르고..) 제한된 공간이라 꽤 많은 손님과 안면이 있을 텐데... 어쩌면 의례적인 말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이 또한 이별의 한 종류다 싶었다. 


헤어짐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에 어떤 조건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도 일주일 이상은 함께 생활한다던지, 매일 얼굴을 마주친다든지 하는 어떤 행동의 결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왠지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거꾸로 생각하면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아쉬운 감정이 생길 때, 그걸 이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헤어짐의 무게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함께 한 시간의 양은 다른 어떤 조건 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아도 단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으로 설명 못할 동질감이 생긴다. 한 달 이상은 확실히 어떤 감정이 생기기에 충분한 시간인 것 같다. 단단하지는 않아도 말랑말랑한 감정의 뭉침이 일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때로는 좋아하지 않아도 그런 시간의 무게만으로도 헤어짐은 충분히 아쉽다.


시간과는 별개로 호감은 시간의 체감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처럼 단 하루의 시간이라도 호감(호기심과 감정? ㅎㅎ)이 있으면 함께 오랜 시간을 쌓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 헤어짐의 무게는 물리 법칙을 벗어나 버린다. 실체가 없으면서도 느껴지는 그 무게감은 때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시간과 감정이 이별의 무게를 결정하는 두 가지라고 정리하고 나니 몇 가지 설명 안 되는 것이 있어 고민해 본다. 머리 속에 뭔가 맴돌지만 쉽게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이 있다. 하나의 단어로 부르기 어려운 그 무엇.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어영부영 미루다 결국 끝마치게 되는 것.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예를 들면,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하고 싶지만, 내일도 볼 거고, 모레도 볼 거니 더 좋은 때를 기다려보자고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면...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을 수 있어도 왠지 쉽게 떨쳐 버리기 힘든 그런 이별... 결국 '아쉬움'이라 이름 부를 수밖에 없다.


결국 헤어짐의 무게는 아쉬움의 크기가 결정한다.


비 오는 이 밤... 헤어짐에 대해 떠들고는 있지만,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시 만남'일지도 모르겠다. 


2번째로 올라가는 앨범 커버

좋은 나라 (by 시인과 촌장): 5분 12초

작사/작곡: 하덕규

1988년 발매된 '시인과 촌장' 3집의 B면 세 번째 곡이다.

내 브런치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앨범이다.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시간이 흐르면서 2집 앨범을 더 좋아하게 되었지만, 당시에 이 앨범은 죽을 때까지 갖고 간다고 마음먹을 만큼 내 생애 최고의 앨범이다.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순간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난 후, 마지막 곡인 '숲'이 끝나감과 동시에 온 몸이 서늘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지금은 오히려 A면의 곡들의 진가를 느껴가면서.... 참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친구 같은... 나의 인생 음반이다.

후에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연을 들었는데, 하늘나라로 가신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담담한 내용이어서 처음에는 그 내용인 줄 몰랐는데, 사연이 끝나고 이 노래가 나오자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화해, 사별 아니면 정치적인 메시지까지 포괄할 수 있는 가사 내용이라, 아무 이야기나 갖다 대도 잘 어울린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서로 하고프던 말한 마디 하지 못하고 그냥 마주 보고 좋아서 웃기만 할 거예요.' 글로서만 표현 가능한 아름다운 그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Rest our heads upon the gras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