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저,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그렇다고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하루에 한두 번 '뜨거운 아메리카노' 주문해서 마시던 것이 전부였다.
'그래요? 아쉽네요. 또 안 오시는 거예요? 내년에 또 오세요~'
진짜로 섭섭한 듯 아쉬움을 담아 말을 건네는 아주머니(어쩌면 또래일지도 모르고..) 제한된 공간이라 꽤 많은 손님과 안면이 있을 텐데... 어쩌면 의례적인 말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이 또한 이별의 한 종류다 싶었다.
헤어짐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에 어떤 조건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도 일주일 이상은 함께 생활한다던지, 매일 얼굴을 마주친다든지 하는 어떤 행동의 결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왠지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거꾸로 생각하면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아쉬운 감정이 생길 때, 그걸 이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헤어짐의 무게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함께 한 시간의 양은 다른 어떤 조건 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아도 단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으로 설명 못할 동질감이 생긴다. 한 달 이상은 확실히 어떤 감정이 생기기에 충분한 시간인 것 같다. 단단하지는 않아도 말랑말랑한 감정의 뭉침이 일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때로는 좋아하지 않아도 그런 시간의 무게만으로도 헤어짐은 충분히 아쉽다.
시간과는 별개로 호감은 시간의 체감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처럼 단 하루의 시간이라도 호감(호기심과 감정? ㅎㅎ)이 있으면 함께 오랜 시간을 쌓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 헤어짐의 무게는 물리 법칙을 벗어나 버린다. 실체가 없으면서도 느껴지는 그 무게감은 때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시간과 감정이 이별의 무게를 결정하는 두 가지라고 정리하고 나니 몇 가지 설명 안 되는 것이 있어 고민해 본다. 머리 속에 뭔가 맴돌지만 쉽게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이 있다. 하나의 단어로 부르기 어려운 그 무엇.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어영부영 미루다 결국 끝마치게 되는 것.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예를 들면,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하고 싶지만, 내일도 볼 거고, 모레도 볼 거니 더 좋은 때를 기다려보자고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면...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을 수 있어도 왠지 쉽게 떨쳐 버리기 힘든 그런 이별... 결국 '아쉬움'이라 이름 부를 수밖에 없다.
결국 헤어짐의 무게는 아쉬움의 크기가 결정한다.
비 오는 이 밤... 헤어짐에 대해 떠들고는 있지만,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시 만남'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나라 (by 시인과 촌장): 5분 12초
작사/작곡: 하덕규
1988년 발매된 '시인과 촌장' 3집의 B면 세 번째 곡이다.
내 브런치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앨범이다.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시간이 흐르면서 2집 앨범을 더 좋아하게 되었지만, 당시에 이 앨범은 죽을 때까지 갖고 간다고 마음먹을 만큼 내 생애 최고의 앨범이다.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순간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난 후, 마지막 곡인 '숲'이 끝나감과 동시에 온 몸이 서늘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지금은 오히려 A면의 곡들의 진가를 느껴가면서.... 참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친구 같은... 나의 인생 음반이다.
후에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사연을 들었는데, 하늘나라로 가신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담담한 내용이어서 처음에는 그 내용인 줄 몰랐는데, 사연이 끝나고 이 노래가 나오자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화해, 사별 아니면 정치적인 메시지까지 포괄할 수 있는 가사 내용이라, 아무 이야기나 갖다 대도 잘 어울린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곳에서 만난다면 서로 하고프던 말한 마디 하지 못하고 그냥 마주 보고 좋아서 웃기만 할 거예요.' 글로서만 표현 가능한 아름다운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