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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Jul 26. 2017

막말의 시대, 상처는 누구의 몫인가?  

Don't tell my heart achy breaky heart

요즘에는 툭하면 '막말 논쟁'이다. 기존 언론뿐만 아니라, SNS 등 소통 공간 어디서나 난리다. 아마도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시대를 규정한다면 '막말의 시대'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도대체 막말은 어떻게 생겨나고 유통되는 것일까? 처음에는 이런저런 막말 뉴스가 나올 때마다 화가 났지만, 한 발 떨어져 보니 나름 정리를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막말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보면 "1.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 
2. 뒤에 여유를 두지 않고 잘라서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로 정의된다. 2번 항목은 일종의 기술적인 부분을 설명하는 정의라고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내뱉는다'라고 생각했는데, 사전적 정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먼저 대표적으로 이언주 의원의 막말. "그 아줌마들이 뭔데? 그냥 동네 아줌마거든요, 그냥. 사실 옛날 같으면 그냥 아줌마들 이렇게 해 가지고 조금만 교육시켜서, 시키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돈 좀 주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건데…." 실제로 비속어나 욕설 등이 사용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내용 전체를 보면 심각하게 비하하는 내용이다. 이 건은 제대로 막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사례를 보자. "그 무슨 세월호부터 그렇고, 이상한 우리 국민들이 이상한 이런 저기 그... 제가 봤을 때는 이 뭐 레밍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레밍" 개인적으로 국민을 설치류 혹은 쥐에 비유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때 문제가 되는 건 앞에 세월호가 들어갔다는 것. 그러니까 전체적인 맥락은 국민 혹은 여론에 대해서 이성적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막말이 아니다. 말하는 사람의 지극히 일관된 철학이 깔려 있는 말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막말 논란'이 아니라 '자질' 문제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언주 '아줌마'의 사례도 자질의 문제는 깔려 있다.)


내가 주목했던 사례가 하나 더 있는데, 황교익 씨의 '자폐' 발언이다. 방송 중에 '혼밥' 현상을 평가하면서 '자폐'라는 단어가 나왔고, 진행자의 첨언이 더해져 '사회적 자폐'가 되었다. 그리고 이게 언론으로 확장되면서 '사회적 자폐아'가 되었다. 일단 전체 맥락을 보자. 밥을 먹는 행위 자체가 다른 사람과의 교류라는 전제하에서 혼밥이 일종의 '자폐'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잘못(혹은 오류)이 없다. 사회적인 교류를 피하고 스스로 갇혀 있으니 '자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자폐'가 비속어이거나, 사회적인 비하의 의미를 가진 말인가?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자폐'와 '자폐아'는 다른 말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데 다른 의견이 등장했다. 혼밥을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적인 교류를 닫은 것은 아니다. 당연히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혼밥 하는 사람=사회적 자폐아'라고 전제를 깔아 놓고 '나는 자폐아가 아니다'라고 말해 버린다. 일차적으로 논리적인 비약이 일어났고, 이차적으로 감정이 개입되었다. 한 순간에 토론이 싸움이 되어 버린다. (뭐 '논쟁'도 일종의 전쟁이라면.... ㅎ) 


많은 경우 막말 논쟁은 전체적인 맥락이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면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본다. 그다지 반가운 현상은 아니다. 이렇게 된 원인으로 수준 낮은 정치와 그와 비슷한 수준의 언론을 의심해 본다. 전체 내용이 아닌 단어 하나 가지고 시비를 걸던 역사가 그리 짧지도 않다. 그들의 입장에서 '막말 논쟁'은 상대방 흠집 내기에 좋은 기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는 그들만의 몫일까?


아니다. 결국 상처는 모두가 받는다. 별로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연관되고, 또 화도 내게 되고 그런다. 일상에서 악의 없이 사용하던 말도 어느 날 갑자기 금기어가 돼버리고, 별 뜻 없이 내뱉던 말(사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 막말인데..)이 부메랑이 되어 나를 다치게 한다. 글을 쓰던 말을 하던 풍부하고 다양한 표현의 기회는 점점 더 사라져 간다. 막말을 하지 않으면 깨끗하고, 순수한 사회가 될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 사람이 서식하기는 힘들 것이다. 막말 논쟁이 계속되면 될수록 사회는 의도치 않게 획일화되어 갈 것이다. '막말' 자체에 분노하지 말고, 그 뒤에 숨겨진 철학과 소양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요약하면 '사람은 미워하되, 말은 미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Achy Breaky Heart (by Billy Ray Cyrus): 3분 23초

작사, 작곡: Don Von Press

1992년 발매. Billy Ray Cyrus의 데뷔 앨범 'Some Gave All'의 두 번째 수록곡

 이보다 앞서 The Marcy Brothers라는 컨트리 밴드가 1991년에 'Don't tell my heart'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Billy Ray Cyrus가 제목을 바꾸어 다시 발매를 했고, 이 곡은 그의 시그니처 송이 되어 버렸다. 90년대의 대표적인 컨트리 곡이다.

또 하나의 숨겨진 에피소드가 있는데,  원래는 The Oak Ridge Boys라는 그룹이 리코딩을 하게 되었는데 그 그룹의 리드보컬이 'achy breaky'라는 말을 싫어해서 결국 녹음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곡을 알기 전엔 Billy Ray Cyrus라는 가수를 몰라서... One hit wonder 사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가.. 자료를 찾아보니 그의 데뷔 앨범 'Some Gave All'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7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한 것 외에 상당히 많은 기록을 갖고 있다. 미국에의 컨트리 음악은 역시 쉽게 봐선 안된다. 그중에는 2006년 Q라는 잡지의 최악의 앨범 50선에 33위를 차지한 것도 있다. 앨범뿐만 아니라 이 곡도 최악의 곡으로 자주 꼽히는 곡이다. 

개인적으로 이 곡의 뮤직 비디오를 좋아하는데, 미국판 '응답하라 1994'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라인 댄스를 메인 스트림으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수로 꼭짓점 댄스와 비슷한 스타일과 현상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가사도 재미있고... 그렇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동네 선술집에 모여 함께 즐기는 그런 분위기의 곡이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다 보면 Billy Ray Cyrus와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 - 한 때, 미국의 국민 여동생)가 같이 무대에 선 동영상을 제법 볼 수 있다. 성이 같길래 '혹시 뭐가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맡다. 마일리 사이러스의 아버지다. 둘이 함께 디즈니의 'Hannah Montana'라는 뮤지컬 드라마에 출연했었다. (이 분 미국의 '태진아'쯤 되는 것 같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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