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의 이름은 Daniel이 아니다
이 녀석, 세상 편하게 자고 있다. 내 잠자리를 차지하고서...
못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보니 예쁘다. 익숙해지는 건가? 게다가 얌전하다. 예전엔 말썽만 피우는 줄 알았는데, 그저 건강한 것이었을 뿐이었나 보다. 고맙게도 여전히 건강한 것 같다. 그런데 매우 조용하다.
누웠다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한다. 그중에 뒷다리를 곧게 뻗는 자세가 우아하다. 한쪽만 뻗는 데 그게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는 모르겠다. 담에 볼 때 자세히 봐야겠다. 양 쪽 다 하는지도.
똥오줌을 가리는 게 문제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정해진 배변판 아니면, 화장실에다 일을 본다. 몇 번 제대로 일 보면 간식을 주었더니, 어제부터는 일 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온다. 마치 맡겨 놓은 거 찾으러 오는 듯한 표정과 자세다. 원래 다 이런가?
다 큰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놀아 주나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녀석 나에게는 관심 없다. 하루 두 번 밥 먹을 시간에만 슬며시 다가와서 아양을 떤다. 그것도 잠시, 모른 척하면 슬슬 성질을 낸다. 그래, 나의 쓸모는 그저 먹을 거지. 스스로 찾아 먹게 만들고 싶은데, 그러면 하루 종일 먹을 것 같다.
서로에게 관심 없는 듯 시크한 게 나와는 잘 맞는다. 그 점은 마음에 든다. 시도 때도 없이 놀아 달라고 징징거리면 나도 짜증 날 것 같다. 내가 누워 있으면 살짝 살을 대기도 한다. 또 맘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볼을 핥기도 한다. 진짜 마지못해 한번 건드려 준다는 표정... 그렇다고 내가 애원한 것도 아닌데 조금 기분 나쁘다.
한 번은 실수로 내 옆에서 자는 줄 모르고 일어나면서 건드렸는데, 성질을 낸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구먼 꽤나 찰지게 성질을 내지 좀 서운하다. 세 가지 정도 성질내는 포인트가 있는 데, 자는 거 방해하는 거 외엔 잘 모르겠다.
잠 안 잘 때는 방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다닌다. 청소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 같다. 청소 잘 안되어 있다고 오줌이라도 싸면 내가 성질을 낼 것이다.
산책을 하면 내 옆에 딱 달라붙어 걷는다. 목줄이 필요 없을 정도다. 다른 녀석들은 길 옆 나무나 전봇대 같은 데에 관심을 보이곤 하던데, 이 녀석은 온전히 걷는데만 집중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다른 개들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다. 내 다리만 바라보고 걷는 것 같다. 한참을 걷다 보면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도 꿋꿋하게 걷는다. 오기를 부리는 것인가?
노래 불러주면 잘 들어준다. 그건 고맙다(음치인 줄 모르는 것 같다).
별로 교감하고 싶지는 않다. 이 녀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저 서로의 존재를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이미, 뭔가, 분명히, 달라져 있다.
Daniel (by Elton John): 3분 54초
작사/작곡: Bernie Taupin/Elton John
1973년 엘튼 존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를 통해 발표된 곡. 곡의 길이 때문에 가사 한 단락이 삭제되었다. 그리고 레코드사에서는 반대했지만 엘튼 존이 우겨서 싱글 발매를 했고, 별 프로모션 없이도 곡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8년에 미국에서는 더블 플래티넘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버니 토핀이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작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마지막에 잘린 부분이 다시 고향에 돌아온 이야기라고 하니... 스페인으로 향하는 장면은 전장으로 가는 중간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도 같다. 이 곡은 가사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노래다.(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버니 토핀/엔튼 존 콤비의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본인들이 가장 아끼는 곡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뭐랄까 좀 슬픈 가사인데, 멜로디나 연주는 아기자기한 느낌까지 든다. 가사를 자세히 보기 전까지는 그냥 멀리 떨어져 있는 연인들의 노래인 줄 알았다. 아주 가끔 밋밋한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사랑하는 엔튼 존의 곡이다.
두 번의 버니 토핀과 엘튼 존 콤비의 트리뷰트에서 각각 윌슨 필립스(Wilson Phillips)와 샘 스미스(Sam Smith)가 커버했는데, 전자는 엘튼 존의 원곡보다 조금 더 좋아한다. 샘 스미스가 부른 버전은... 글쎄, 이런 스타일이 요즘의 트렌드 일지는 모르겠는데, 완전 안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이 곡은 그 밋밋할 정도의 담백함이 최대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강아지 얘기에 왜 이 곡을 선곡했는가? 혹은 이 곡에 왜 강아지 이야기를 하는가? 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그냥 이 녀석과 같이 듣는 노래여서 그렇다. (녀석이 이름은 다니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