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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Apr 14. 2019

지켜야 할 것

I've got one hand in my pocket

지훈아, 오래간만이야. 

그동안 전화도 하고 그러니까 굳이 뭔가 따로 해줄 말이 생각이 안나더라고. 이번에는 아빠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해.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는데 생각해 보니 아빠도 딱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인가... 장래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마음을 굳혔던 것 같아. 네가 지금 걷고 있는 것과 비슷한 길이었지. 그래서 한 번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구나.


아빠도 고등학교 시절 참 공부를 안 했어. 다만 시험에는 대처를 잘한 편이었을 뿐이지. 시험 전날 하루 공부하면 대충 평균 점수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 마저도 죽죽 내려가서 고2 후반기에는 아마 하위 70% 정도까지 등수가 내려갔을 거야. 대학에 안 가기로 마음먹으니까 아예 무관심해지더라고. 대학에 안 가기로 마음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을 하고 싶었거든.


그때는 수능이 아니라 '대학 입학학력고사'라고 불렀던 것 같아. 그때도 매년 제도가 바뀌고는 했어. 지금도 여전히 그런 편이지만... 그때 시험과목을 선택을 했었어. 그런데 조금 어려운 과목을 학생들이 선택을 잘 안 하니까 수업시간에 빼고 별도로 보충 수업을 했어. 세계사가 바로 그런 과목 중 하나였어. 60명 정도 됐으려나... 사람이 없다 보니 일부일에 한번 세계사를 선택한 학생들만 별도로 보충 수업을 했지. 그럼에도 잠자기 좋은 시간이어서 대부분의 수업 시간에는 잠을 잤어.


그러던 어느 날인가... 수업 시작하자마자 엎드려 잠을 잤는데, 일어나 보니 수업이 끝나 있더라. 수업 시간에 잠을 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런데 그 날은 머릿속에 뭔가 충격이 있더라. '이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인데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든 거야. 스스로 굉장히 부끄러웠어. 그리고 이 일은 내 삶에 많은 변화를 주었지.


그 뒤로 나는 적어도 나 자신과의 약속에 대해서는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어. 지금도 그래. 최소한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핑계나 사정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때로는 그게 무서워서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안 하기도 해. 어쩌면 이런 걸 '스스로 안주한다'라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지. 가령 살 좀 빼면 좋겠다고 생가하는 거랑, 내가 원해서 살을 빼겠다고 마음먹는 거랑 좀 다르다는 거지. 때로는 '뚱뚱해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안심 시키키 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 아빠가 지금껏 너에게 하고 싶은 것이 무언지 찾으라고 얘기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야.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지며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하지만 네가 원하고 네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것들 알아갔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때로는 힘든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도 네가 원하고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거지. 


광고 속에서 쉽게 보는 '나는 나야', '나답게 산다', '세상의 중심은 나'와 같은 것과는 좀 달라. 오히려 아빠는 그런 말들이나 생각을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자신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건 다른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니까...


늘 얘기하지만 네가 원하는 일이나 삶을 찾는 것은 이제 막 시작되는 긴 여정이야. 지금 당장 네가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당황하거나 의기소침해할 필요 없어. 그런 것을 찾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경험이니까... 다만 매 순간 크든 작든 네가 스스로 선택한 것들에 대해선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구나.


봄은 봄인데 여전히 한기가 가시질 않네. 그래도 이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겠지.

그리고 또 뜨거운 날들이 시작될 것이고... 몇십 년을 겪어도 늘 새롭네... 

너의 경험과 선택을 늘 응원할게. 건강하고~



Hand in my pocket (by Alanis Morissette): 3분 41초

작사/작곡: Alanis Morrissette, Glen Ballard

1995년 발매된 알라니스 모리셋(Alanis Morrissette)의 세 번째 앨범(이자 글로벌 시장 데뷔 앨범) 'Jagged Little Pill'의 네 번째 곡이며, 앨범에서 두 번째로 싱글 발매된 곡이다.

이 앨범은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앨범  목록에 제법 상위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뭔가 센세이셔널(예를 들면 새로운 음악 장르의 탄생이나 슈퍼스타의 등징이라던가 하는 음악 외적인 화제성 같은 거...)한 느낌은 없었지만, 워낙에 음악이 좋아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 않았나 싶다.

내 경우도 약간 과장 보태면 CD가 닳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지금도 가끔씩 앨범 전체를 듣고 있다.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전체 곡들이 뭔가 강력하게 호소하는 듯한 감정을 준다. 전체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느낌이다.

알라니스 모리셋은 캐나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며, 배우로도 활동을 했다. 이 앨범 이후의 활동은 그렇게 인장적이지는 못한 것 같지만 워낙에 초대작을 친 이 앨범 때문에... 이후의 활동은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앨범 발매가 많지 않은 데 어떤 면에서는 초기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지켜 나간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 많이 하는데 평생의 역작이 너무 일찍 나온 경우 이후의 삶이 그 그늘에 갇히는 경우를 안타까워하는 편이라...)

'Hand in my pocket'은 어떤 매체에서는 이 앨범을 상징하는 곡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밥 딜런의 곡을 생각나게 하는 편이다. 가사를 보면 '한 손을 주머니에 넣는다'는 것이 스스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표현한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한 손으로 하고 있는 행동에 주목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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