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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Nov 28. 2015

It's no sacrifice at all

희생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주변에 웨딩홀이 많아서 주말이면 여기저기서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받은 청첩장 갖고 스케줄 만들면 비는 주말이 별로 없을 만큼 많다. 다만 난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내가 지인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은 온전히 축하할만한 마음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아서다. 그래도 인생에 손꼽힐 만큼 좋은 날인데, 거기에다 저주를 퍼부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사람은  관계없지만, 여전히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내 삐뚤어진 마음을  바로잡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을 반대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고 할 뿐이다. 상대방의 모든 것을 받아 줄 자세가 되어 있을 때,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대방이 바람을 폈을 때도 받아 줄 수 있다는 마음을 준비하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대부분 반응은 부정적이긴 하다.


하지만 상대방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가?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만든 것에 내 책임은 없는가? 생각해 보면 그게 용서 못할 일은 전혀 아니다. 요즘엔 자주 사랑하는 것의 목적을 결혼에 두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사랑과 결혼은 별개의 문제다. 굳이 비유하자면 사랑은 직업을 선택하는 문제이고, 결혼은 직장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행동'과 '제도'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제도'로서의 결혼이지, '행위'로서의 결혼에 대해서는 아무 불만 없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우리 사랑하는 사이예요'라고 주변에 얘기하고 기념하는 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어차피 삶은 이벤트의 연속이다).


불행은  제도화된 결혼에서 시작한다. 제도로서의 결혼은 연인 관계를  소유관계로 바꾸어 놓는다. 지켜보는 일이 감시하는 일로 변한다(내 거니까!).  올해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가 미국에서 동성혼에 대한 합헌 결정이었지만, 난 조금 냉소적인 편인데, 동성혼이 불법이 아닌 들, 사회적으로 죄가 아니게 된들, 그게 그들의 사랑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생각하면 별로 달라질 건 없다고 본다.  늘어나는 건 이혼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왜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은 것일까? 의문이다.


내일 있을 아는 동생의 결혼식에는 참석할 것이다. 이미 그 친구는 나의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으니까, 최소한 결혼을 했다면 그만큼 자신을 희생할 자세는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도 다소 냉소적인 얼굴이어도 괜찮으니 이번에는 괜찮을 것 같다.


사랑은 선택할 수 없고, 저항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선택하는 것이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다.

선택했다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스스로 '희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Scrifice (by Elton John): 5분 11초

1989년 10월 발매(싱글)

엘튼 존의 22 번째 스튜디오 앨범 'Sleeping With The Past'의 7번째 수록곡이자, 첫 번째 싱글

작사/작곡:  Bernie Taupin, Elton John

버니 토핀 작사, 엘튼 존 작곡은 무조건 믿어도 되는 조합이다. 무조건 듣고 보면 손해 볼 일 없다. 1991년에 발매된 'Two Rooms: Celebrating The Songs Of Elton John & Bernie  Taupin"이라는 앨범은 새로운 장비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챙기는 앨범 중의 하나다.

그 앨범에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도 좋다. 시네이드 오코너... 역시 커버의 달인? (그냥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이다.)

영국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엘튼 존이 비틀스에도 밀릴 게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하곤 한다. 특히 버니 토핀(Bernie Taupin)과의 협업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데, 그만큼 상대방의 재능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덕분에 엘튼 존의 곡들은 가사도 잘 챙겨 보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작사/작곡자가 뻔히 있는 노래도 가수의 곡인 것처럼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좋지 않다. 가수가 곡비를 주었다 하더라도.... 창작자와 공연자의 역할은 다르다.

나의 경우는 엘튼 좀 얘기하면 조지 마이클(George Micheal)이 자동으로 연상된다. 자타 공인된 승계자라고 할까... 하지만 조지 마이클은 그가 가진 재능만큼 꽃피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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