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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Sep 11. 2020

문장 수집가의 책 일기 19

정확하지 않으니까 사람인 겁니다

어떤 때는 시간이 정말 빨리 갑니다. 시간에 상관없이 앉아서 혹은 밖에 나가서 계속 일하다 지치면 자고, 배고프면 뭔가 먹고 그러다 보니 벌써 열흘이나 지나있네요. 이럴 때는 제가 하는 일들은 밀리기 마련입니다. 사실 물리적인 시간을 따져보면 왜 그랬나? 싶은데... 글쎄 그게 정말 1분 1초의 여유도 없게 생각될 때가 있다니까요.. ㅎㅎ 당분간 이런 생활이 계속될 텐데... 1년 내내 이런 것도 아니라서... 우선은 지나가야지요.


그래서 매일매일의 흔적을 남겨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한번 놓게 되면 다시 잡기는 어렵거든요. 아무리 어려워도 하루에 혹은 2~3일 정도는 몰아서... 문장 수집을 계속하고는 있습니다. 정말 문제는 밖의 일이 아니라 내부의 일... 그러니까 문장 수집하는 일이 부족한 게 문제지만요.


이번 시리즈는 무려 15일 전에 그러니까 지난번 포스팅보다도 먼저 구상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생각은 훨씬 오래전에 생각한 전제이기도 하고요. 인간 혹은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기 쉬운 방법은 SF를 읽는 것입니다. 제가 SF는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유독 SF를 읽을 때면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린 '이해'는 당연하게 가장 영화화하기 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네 인생의 이야기'가 먼저 영화화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인데요, 이 작품은 저의 상상력으로는 전혀 엄두도 못 낼 내용이라서요... 개인적으로 영화에 좋은 점수를 주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읽은 지금에는 재평가해야 할 듯합니다. '이해'는 과학과 기술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바탕에 깔려 있어 훨씬 극적인 그리고 현실적(? 뭔가 이상하지만...)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비슷한 류의 SF영화도 많았던 것 같고요.


'이해'는 테드 창의 다른 작품보다는 훨씬 빨리 읽었습니다. 별로 밑줄 그을 만한 것도 없었고, 수집할만한 문장도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뽑은 단 하나의 문장입니다. 

따지고 보면 저는 원종우의 아주아주 오래된 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CD를 구입한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니까요. 그러다 소설까지 발견했는데, 아마도 이것도 몇 명 안 되는(CD보다는 많겠지요? ㅎ) 사람 중의 하나가 될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나는 쉬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라는 별로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슨 내용일 거라는 친절한 제목 덕분에... 올해 초의 여러 기획에서 원종우를 떠올렸던 기념으로 읽어 보았습니다. (뭐 추천할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원종우 님께는 죄송합니다. 뭐 돈 벌려고 소설 쓰신 거는 아니잖아요? ㅋㅋ 그래도 저는 구매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간의 조건에 가장 중요한 단어... '불합리'와 '불완전' 때문에 이 문장은 박제해야 마땅합니다. 저는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변화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진보(?)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저는 인간이 완벽한 혹은 완전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그 이후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숨]에 수록되어 있고요, 아주 짧은 소설입니다. 작품은 리벳 실험을 모티브로 하고 있고, 테드 창의 의도는 사실 자유의지와 리벳 실험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문장 "하지만 이제는 알아버렸습니다"도 사실 작품 내에서 보다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뽑아 놓은 겁니다.


가령 이런 것이지요. 제가 어떤 거짓말(혹은 가짜 뉴스)을 알고 있습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 얘기를 하면 돈이 생깁니다. 그것도 생각보다 꽤 많은 돈을 벌 수가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옆에서 이야기합니다. '야, 그냥 말해 버려. 쉽게 돈 버는 기회를 왜 날려? 땅 파봐라, 돈 나오나. 그냥 질러 버려!'


결국 저는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참 별거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신념이라는 게... 

왜 별거 없냐면 이 결말은 정 반대로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버렸습니다, " 쉽게 사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사람은 정확하지 않으니까요... 

위에서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를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뽑아 놓은 문장은 꽤 됩니다? ㅎㅎ 


앞서 말했던 사람이 완전한 상태에 이르면 변화가 없고, 진보가 멈출 거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는데, 원종우 작가님도 그런 생각을 했나 봅니다. 사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쉽게 다다를 수 있는 결론이기도 합니다. 그게 끝은 아니겠지만 논리적인 판단의 흐름은 사실 사람마다 차이 날 수가 없지요.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란 게 그런 거니까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사람이란 존재에 애정이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참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제가 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 있습니다. 삶에는 '희로애락'이 모두 있다. 그러니까 슬픈 일도 화나는 일도 다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화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마음속으로 더 원하는 것을 있을 수 있지만 어느 하나 빠지지 않습니다. 화날 때는 화내면 됩니다. 누군가 화내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게 삶이고 그래서 사람인 거죠.  

정이현 작가이 작품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는 전체적으로 고요한 풍경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는 그런 상태... 그래서 처음에 깊은 인상을 받지는 않았는데, 이게.... 잘 잊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꾸 찾아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균열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매력 있는 작품들입니다.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고요한 풍경은 견고해지고, 흔적은 선명해집니다. 쉽게 보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우 인간적인 작품들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전 짜증도 많이 났고, 화도 났고, 지금까지도 애초에 계획했던 것을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받아들입니다. 어제는 운이 좋았고, 피곤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더 잘 되었었습니다.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뭐.... 괜찮습니다. ^^; 

저는 사람입니다. 정확하지 않고, 완벽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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